석면으로 제조된 슬레이트지붕이 암을 발병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판명된 지 상당한 시일이 흘렀지만, 아직도 시골농가 대부분은 슬레이트지붕을 이고 살고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추위와 더위를 적절히 조절해주던 초가지붕이 주택개량이라는 미명하에 슬레이트지붕으로 교체되면서 결과야 어쨌든 초기에는 획기적 지붕제재로 각광받았던 게 사실입니다.

장년이상의 어른들이라면 아마도 깨진 슬레이트 한 조각을 불 위에 얹고 삼겹살을 구워먹으면서 최고의 불판이라고 엄지를 세웠던 추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이렇듯 무지한 상태에서 슬레이트를 최고의 건축자재로 이용했더라도 더 이상 그로 인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여타 친환경 지붕재제로 신속히 교체해주는 게 마땅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지역에 따라 혹은 지자체의 성향에 따라 가구별 슬레이트지붕 교체 작업은 아마도 백년하세월이 걸릴 사업일지 모릅니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시군단위 교체용 예산이 극히 미미한 액수여서 농가들이 신청한다하더라도 언제 자기 차례가 올지 알 수 없다니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이러니 좀 여유가 있는 이들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아연강판이나 기타 다른 친환경 제재로 교체하지만, 이게 경비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대략 20평 내외의 농가주택 지붕을 뜯어내는데 5백만 원 내외라니 현실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지자체 지원만 바라고 있자니 매일 밤 슬레이트지붕 밑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의 심정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계약기간 만료가 목전이고 재계약 여부가 확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를 가야 할지 말지 몰라 일단 답사여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수도권 일원이나 남쪽이라도 서울과 좀 가까운 지역을 다녔지만, 천만 단위 주택은 예외 없이 슬레이트지붕이니 선택하기가 점점 더 어렵습니다. 인터넷이나 여타 공공기관 사이트를 찾아볼 때 사진 상으로는 멀쩡하게 컬러강판으로 지붕을 개량한 집이건만, 실제 방문해서 꼼꼼히 살펴보면 대개는 슬레이트지붕을 걷어내지 않고 그 위에 컬러강판을 덧씌운 곳이 태반입니다.

공공기관의 예산이 투입되었든 혹은 자비로 했건, 이런 식의 지붕개량은 오히려 안하니만도 못한 꼼수에 불과합니다. 슬레이트 주성분인 암면이 세월이 흐르면 점점 강도가 약해져 암면가루가 흩날리게 되고, 이것이 암 발생의 원인이라는데 이미 몇 십 년이나 사용했던 슬레이트 위에 다시 컬러강판을 얹고는 오히려 집이 따뜻해진다고 주장한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는 이들은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관계기관이 이런 개량사업에 예산을 지원했다면 이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민들의 건강이 최우선일진데 그저 실적이나 올리자는 안이한 생각이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토양입니다. 차라리 컬러강판을 덧씌우지 않았으면 공사하기도 편할 텐데 이미 개량을 마친 지붕을 다시 뜯어내고 재시공을 해야 하니 참 한심스럽습니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건강은 담보될 수 없는 이런 사업도 언제 순서가 올지 몰라 지원되길 학수고대하는 현실에서 연로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저 이렇게 살아왔으니 놔두라고 체념어린 한숨만 내 쉴 뿐입니다.

어찌어찌 본채는 개량사업을 했더라도 창고나 축사 등은 여전히 슬레이트 지붕이니 이게 과연 효과나 있는지 의구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충청도 어느 지역에서는 일 년에 단 두 집만 지원할 수 있는 예산밖에 없다고 하니 이곳에서 거주하는 이들은 자비로 하거나, 아님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뜰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워낙 오지였던 탓에 슬레이트를 실어 나를 자동차도로가 없어 집을 질 때 지게로 나를 수 있는 자재가 함석뿐이라 아직까지 동네 전체가 슬레이트로 지붕을 이은 집은 없습니다. 이러니 괜한 생각으로 돌아다니며 돈 낭비 말고 이것도 복이려니 하고 주저앉아야 되나 갈등은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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