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가 13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외환위기로 대규모 부도사태를 겪으며 실업자가 급증했던 1999년 8월의 136만4천여 명 이후 최대치로 기록된다. 통계청이 15일에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률이 마침내 5.0퍼센트를 찍었다. 졸업시즌인 2월에 구직 청년층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실업률이 5퍼센트에 이른 것은 2010년 이후 7년만이란다.

심각한 것은 체감실업률이다. 공식 실업률에 견주면 실재하는 현실이 상대적으로 잘 반영된 통계가 체감실업률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식통계 상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등 취업준비생은 비경제활동인구에 속하기 때문에 실업자나 취업자로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구직과정에 있으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경우는 취업자로 분류된다. 취업준비생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을 실질적인 실업자로 계산하는 체감실업률은 12.3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실업률 추이를 보면 단지 청년실업만 문제라고 할 수 없다. 20대 초반, 30대의 실업률도 늘었지만 60대 이상의 실업률이 같이 늘었다는 점에서 이제는 ‘노인실업’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는 양상이다. 사실 한국사회는 단숨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농촌은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전체인구의 20퍼센트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오래다. 경제발전과 의학발달에 힘입어 기대수명이 한참 늘어나면서 ‘인생 이모작’이 공공연한 현실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최근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거 은퇴도 노인실업률 상승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청년실업과 노인실업이 동시에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왕성한 경제활동을 통해 전체사회를 떠받쳐야 할 젊은 층이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청년층의 불완전한 고용과 경제적 빈곤은 그들이 부양해야 할 취약계층, 노인세대 등 비경제활동인구에게까지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부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결국 고령자들마저 취업일선에 나서야하는 상황에 몰리는 것이다. 부양자, 피부양자가 동시에 실업과 빈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에 진입한 것이 아닐까 우려하는 대목이다. 그러니 악순환의 핵심고리인 실업문제를 하루빨리 끊어내야 할 일이다.

북유럽 등 ‘복지 선진국’이랄 수 있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탄탄한 노인복지제도에 있다. 대개 노령연금제도 등 사회보장장치가 국가 혹은 정부를 중심으로 잘 돌아간다. 더 나아가 전 국민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도까지 실험적으로 도입한 상태다. 이러한 보편적 복지, 넉넉한 혜택은 재정확보를 전제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고율의 기업 법인세, 자산과 소득이 많을수록 누진해 폭증하는 부유세 등은 국가재정의 근간이 된다. 거시적으로는 경제활동의 큰 축인 청년이 많은 재화를 창출하고, 그 재화의 상당부분을 사회보장제도에 투입해 노인과 취약계층을 포함한 전체국민을 대상으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셈이다.

고용한파가 지속되면서 대통령선거 예비주자들의 일자리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각을 나타내는 여당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공약 첫머리에 일자리 창출을 두는 양상이다. 경기침체와 장기불황, 위험수위에 도달한 실업률, 압박이 거세지는 대외무역 여건 등 나라경제와 국민생활이 핍진해지면서 일자리정책이 최대 관심사가 된 것이다.

정책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법정노동시간을 준수해 일자리 수십만 개를 창출하고, 중소기업 취업자 혹은 근로자의 임금을 한시적이나마 대기업의 80퍼센트 수준까지 지원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최저임금과 실업급여를 인상하는 등 실현가능성을 뒷전에 미룬 공약들이다. 로봇자동화 등 가까운 미래까지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해도 일자리문제는 앞으로 상습적인 사회문제가 될 것이 빤하다.

‘세대 간 도둑질’이라는 낱말이 있다. 현 세대가 복지혜택을 더 누릴수록 후세는 훨씬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재화가 될 수 있고, 환경 또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다음 세대가 누릴 것을 미리 가져다 쓴다는 점에서 도둑질이라고 표현한다. 화석연료를 남용하면서 가속화하는 지구온난화, 점차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 사막화와 물 부족,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섬나라 소멸 등은 모두 ‘세대 간 도둑질’의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독일은 ‘세대 간 형평성 위원회’를 두고 예산편성이나 정책수립에 관여케 한다고 한다. 위원회가 제시하는 유력한 방안 중 하나가 노인일자리 정책이라고 하니 참고할 만하다.

독일의 노인일자리 하면 개인적으로 대학등록금이 떠오른다. 독일은 현재 대학등록금을 개인이 따로 내지 않고 있다. 경과는 이렇다. 재정난에 봉착한 일부 대학들이 수업료 부과를 주장했고, 기독교민주당 등이 집권한 몇몇 주에서 2006년 겨울학기부터 500유로, 한화 약 65만원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대대적인 반대시위가 일었다. 이들은 누구라도 경제적 이유로 교육수혜권리를 침해당할 수 없다며 대학과 정책당국의 수업료 부과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2009년 선거를 통해 의회에 대거 진출한 이들은 결국 수업료 철폐를 관철한다.

감명 깊은 것은 이 시위에 적잖은 노인들이 동참했다는 점이다. 노인을 부양하는 이들은 결국 젊은이들이며, 젊은이들이 걱정 없이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더 많은 재화를 창출하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편안히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시위동참자들의 논리였다. 세대 간 도둑질이 아니라 세대 간 부조 혹은 협력인 셈이다. 일자리와 복지에 새겨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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