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다. 입춘방을 써 붙인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니 조만간 들녘은 새 생명이 꿈틀거리는 만물생동의 현장이 되리라. 요즘 농사야 겨울에도 바삐 돌아가다 보니 딱히 농한기라고 할 것이 없다. 그나마 벼농사는 절기 따라 갈아엎어 볍씨 뿌리고, 물 대 가꿔 키우고, 거둬들여 방아 찧기까지 천체운동과 기후에 충실하다.

몇몇 지역이 모내기를 앞당겨 ‘첫째’라는 타이틀에 경쟁적으로 달라붙기는 하지만 대개 벼농사는 절기를 외면하지 않는다.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오고, 가을에 거둬 겨울에 갈무리하는 일이 짜임새 있는 농경사회의 일면이었을 터, 한래서왕 추수동장이라는 대구가 천자문 세 번째에 옴직하다.

봄이 온다. 아직 바람이 차고 흙이 딱딱하지만 햇볕 따뜻한 낮이 서서히 길어지고 있다. 태양이 하늘 길을 따라 조금씩 솟구치니 동장군의 그림자는 짧아진다. 농부의 봄은 다른 이에 견줘 썩 이르다. 부지런한 농부는 눈석임물이 살얼음 아래서 재잘거릴 때 힘줄 퍼런 팔뚝을 드러낸다. 땅을 뒤집어엎어 부드러운 속살을 끄집어내고, 볍씨 틔어 연푸른 모를 창조하고, 첨벙첨벙 무논에 써레질해 모내기하기까지 농부의 봄은 퍽 길다. 그러니 다른 이보다 먼저 봄을 준비하고, 그보다 먼저 들판에 선다. 다시 들판에 선다.

걷이 끝난 들판에 누군가 서서 / 눈물 뿌리지 않는다면 / 새 봄에 돋는 싹이 어찌 / 사랑일 수 있으랴 // 수수깡 빈 대궁인 채 바람에 날리며 / 잿빛 산등성이 등지고 기인 그림자 끄는 / 네 몸뚱이, 죽어 / 또 죽어 땅에 몸 눕히면 / 구름만 덮일 뿐 모두 다 떠나가는데 // 계절의 끄트머리에 누군가 서서 / 함께 비 젖지 않는다면 / 어찌 / 썩어 다시 생명일 수 있으랴

박형진 시인의 ‘다시 들판에 서서 2’라는 제목의 시 전문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 <다시 들판에 서서>에 수록된 71편 시 가운데 하나다. 다시 들판에 서는 농부의 심정을, 다시 봄을 맞이한 이의 마음가짐을 이처럼 절절하게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몹시 부러울 따름이다. 계간지 <창작과 비평> 1992년 봄호로 등단한 박 시인은 첫 시집 <바구니 속 감자 싹은 시들어가고>에 이어 2001년 <다시 들판에 서서>를 냈다. 이후 시간이 꽤 흐른 2011년이 되어서야 세 번째 시집 <콩밭에서>가 나왔다. 등단 20돌에 비로서 ‘셋째’로 탄생한 이 시집은 ‘가난한 농사꾼의 노래’란 부제를 달았다.

그는 천생 농사꾼이자 글쟁이임에 틀림없다.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시집뿐 아니라 <호박국에 밥 말아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변산 바다 주꾸미 통신>,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 등 산문집도 수두룩하다. 그는 지상파 방송에 손님으로 출연하거나 이비에스 교육방송에서 문학을 강의한 이력도 있는데, 무엇보다 <농업인신문>과 <여성농업인신문>에 다년간 게재된 ‘박형진 시인의 감성편지’란 고정칼럼을 통해 농업인 독자들로부터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해찰한 듯하다. 박형진 시인에서 들판으로 돌아온다. 다시 들판에 선다는 것은 거듭 혹은 반복을 함의하기도 하지만 순환, 갱생의 의미가 더 크다 할 것이다. 물론 순환반복이나 부활갱생이 동떨어진 개념은 아닐 터, 방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경중이 갈릴 뿐이다. 다시 들판에 서고, 다시 봄을 맞이하는 행위가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면 왠지 피로감에 젖어들 것만 같다. 반면 아픔과 희생을 거름 삼아 새 생명이 움트는 시공의 순환을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하는 태도로 들판에 선다면 눈물 뿌려 봄에 돋는 싹이 사랑임을, 썩어서 다시 생명임을 깨닫지 않을까 싶다.

파괴와 건설은 동시에 이뤄지는가, 공존할 수 있는가 따져볼 일이다. 적어도 단절하지 않고 연결돼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겨울왕국이 녹아내리면 봄의 여왕이 즉위하듯, 파괴가 곧 건설의 단초인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파괴와 건설은 동일선상에 있을뿐더러 동시에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씨앗을 뿌리기 위해 굳은 땅을 갈아엎는 일이 기존체제를 허물어뜨리는 일이요 새 생명을 키우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인 것이다. 겨울 끄트머리에 가장 먼저 들판에 서는 농부가 얼마나 위대한 자인지, 허물을 뜯어내고 생명을 창조해내는 농사가 얼마나 신성한 일인지 깊이 새겨봄직하다.

삼월이다. 봄이 온다. 우리는 다시 들판에 선다. 파괴 직전이다. 새 생명이, 새 판이 시작할 조짐이다. 농부의 심정으로 시민들이 들판에 선다. 대한민국은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대통령 탄핵정국이라는 혼돈의 겨울이 끝맺음을 향해 치닫고 있다. 조만간 이 혼란이 끝난다. 그 끝에 새 봄이 있고 건설은 시작한다. 그것이 재건이 될지, 갱생이 될지, 부활이 될지 현재로서는 알 길 없으나 파괴는 확실하게 이뤄질 것이다. 그러니 두려움을 걷어내고 반역의 피로감을 훌훌 털어버릴 일이다. 갱생이든 재건이든, 부활이건 창조이건 새로운 봄이요 새 생명 움트는 들판에 서서 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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