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곳이 시지역이라 이장이 없어 다행이란 생각이 가끔 듭니다. 일전 생협모임에서 군 지역에 거주하는 이가 동네 이장선거를 둘러싼 진흙탕 싸움 얘기를 하는데 참 이장이란 직책이 그리 대단한건 지 고개를 설레설레 짓게 만드니까 말입니다.

시골에서 리라는 단위는 때론 도시처럼 바로 둘러볼 수 있는 범위가 아닌 곳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리라고 일컫는 곳이 때론 차로 한참이나 달려야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고, 이런 곳은 보통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눠져 서로 자기마을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패거리들은 이렇게 작은 마을단위부터 시작돼 점차 커다란 패거리로 변해 사회를 분열시키고,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사회갈등의 원인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되기도 하는 단초를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장도 임기가 있기 마련이고 2016년까지 이장으로서 직책을 잘 수행했던 이가 이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사단은 일어난 모양입니다. 보통 전임 이장이 물러날 때쯤이면 마을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져 특정한 이를 추천해서 형식적인 선출과정을 거치는 게 상례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미 합의를 거쳐 신임이장으로 추천된 이가 있었음에도 갑자기 또 다른 이가 이장이 되겠다고 나섰다는데 있었다는 겁니다. 하기야 선거란 것이 단독입후보만 해서야 재미는 없겠지요. 그렇다고 어쨌든 마을 유지들의 합의도 일종의 사회적 합의였음에도 불쑥 튀어나와 이장직에 도전한 이가 바로 이장으로 선출되도록 합의된 이의 동네후배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도회지에서 어려움을 겪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배를 따뜻하게 맞아 농사기술은 물론, 금전적 도움까지도 줬던 선배를 꺾겠다고 막후에서 운동을 했다니 그 선배의 마음이 어떠했으리라는 건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여서 이 얘기를 전하는 이도 하도 기가 막혀 선출을 위한 회의장에서 얼굴을 붉히면서 큰 소리로 부당함을 토로했다고는 하더군요.

전임 이장이 아랫마을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고, 또 합의된 인물이 아랫마을 사람이라 윗마을 사람들이 은근히 대안이 있길 바랐다고 하는데 그 후배가 바로 윗마을 사람이었던 겁니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합의 추천된 이가 선출되리라고 믿고 오히려 회의장에 많이 참석하지 않아 단 한 표 차이로 후배에게 고배를 마셨다니 이게 선거제도의 맹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 결과야 그 과정이 어찌됐던 승복하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마을이 아래위로 갈라져 영 딴 동네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으니 그 후유증을 치료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일단 그 선배와 후배는 불구대천지원수가 될 게 뻔하고 사사건건 대립될 테니 마을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기가 쉽진 않겠지요.

모든 선거판은 이기는 자만의 승자독식 구조니 진 사람은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조용하고 겸손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봉사활동도 열심인 이가 선거에서 지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돈이라는 변수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선배에 대한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이의 최대 장점이 농협이나 군청을 상대로 각종 지원 자금을 잘 따온다는 거였답니다.

이러니 윗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자기 입에 들어올 확률이 높은 이의 달콤한 유혹에 안 넘어갈 재주가 없었던 거지요. 실상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그 무언가에 대한 기대가 미안함을 이기기 마련이니까요.

제일 작은 단위의 선거판도 이 모양이고, 그 결과는 오늘날 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자기 고집만 주장하고 동네사람들과의 합의마저 멋대로 내팽개치던 이가 오직 돈을 잘 따온다는 이유로 마을을 대표하는 이장으로 선출됐으니 그 결과가 어떠하든 선출한 이들이 안고 가야할 숙젭니다. 눈먼 돈이라고 자기 주머니만 불릴지, 마을을 위해 정말 뭔가를 할는지 지금으로서는 예단키 어려우니까 말입니다. 이 얘기를 전한 이도 결과야 그렇지만 어찌됐건 잘 되길 진정 바라는 마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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