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행보가 광폭이다. 거침없다.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밀어붙인다. 후과를 따져보는 면밀함이나 약자를 배려하는 정의감 따위는 없다. 지난해 그의 과격한 선거공약에 소스라친 이들은 설마, 혹시, 과연 같이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쓸 만한 짧은 말들을 뇌까리며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을 맞닥뜨렸다. 그는 권좌에 앉자마자 전임자 오바마가 어렵사리 둘러쳐놓은 울타리를 짓부수기 시작했다. 주변국은 물론 전 세계 중대, 약소국가들과의 ‘원탁’을 없애고 미국을 정점에 둔 ‘층계’에 골몰한다. 미국과 트럼프가 있는 층계 가장 높은 그곳은 훗날에 제단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직후 단 며칠 동안 많은 것을 허물어뜨렸다. 이른바 ‘오바마 캐어’를 ‘아이 돈 캐어’로 바꿨다. 국민건강을 인질로 사익추구에 여념이 없는 민영의료체계를 공영 성격의 의료보험으로 바꾸려던 오바마의 항거를 슬쩍 짓밟았다. 정부지원을 축소하는 쪽으로 후퇴한 것이다. 그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공식선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정부 공무원의 고용과 임금을 동결하고, 낙태 관련단체에 대한 정부지원 금지 등을 담은 행정명령도 처리했다. 조만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 추진도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에 장벽 건설과 이슬람국가 난민 입국 금지 등에도 서명할 예정이란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조건 직진만 하는 ‘불도저’라는 인상이 이명박 전 대한민국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실책과 막무가내 행각이 어디 한둘인가. 딱 두 가지만 짚어보자.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그는 대다수 국민의 반대여론을 무시한 채 ‘4대강 사업’을 추진했으며, 해외자원 확보를 명목으로 ‘묻지마 투자’를 남발했다. 수십조 예산을 들이부은 4대강 사업은 득보다 실이 많은 사상최악의 토목공사라는 평이다.

 가뭄대비나 홍수조절 기능은 고사하고 혈세낭비에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그도 모자라 해마다 어마어마한 관리비용까지 지불해야 하니 단군 이래 최대의, 최악의 역사임에 틀림없다. 자원외교랍시고 날린 돈은 또 얼마인가. 그로 인해 정부기관은 빚더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재정파탄의 끔찍한 고통은 국민의 몫이 돼버리고 말았다.

트럼프 시대의 개막은 일대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막무가내 밀어붙이기는 닮은꼴이요 그 크기와 영향력은 최강인 이가 미국 대통령이다. 세계는 벌써 요동치고 있다. 베이징 나비의 아주 작은 날개짓이 미국에 거대한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는데, 하물며 막강 미국 대통령의 과장된 몸짓이라니. 트럼프가 경제(economics)나 주의(ism)와 결합한 트럼프노믹스 혹은 트럼피즘의 실체가 드러날 때면 혼돈의 나비효과는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등장만으로 세계 곳곳을 들쑤셔놓고 인류의 질서체계를 뒤흔들고 있는 트럼프는 예측을 불허하는 지각변동의 ‘확고부동한 진원’이다. 순서를 뒤바꾸고, 사다리를 없애고, 소통을 금지하고, 평등을 외면하고, 힘에 의한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는 그를 대면해야만 하는 이들의 심정은 복잡하고 착잡할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한 만큼 편 가르기와 대립은 횡행하고 통합이나 화합의 문화는 외따로 버려질 공산이 크다. 대통령 취임식부터 임기 카운트다운 시계를 켜놓은 시민, 트럼피즘에 대한 저항을 선언한 미국 전역의 수십만 여성이 혼돈의 한 귀퉁이를 점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미국 재채기에 지독한 감기몸살을 앓는다는 나라 아닌가. 전략적 동반자 이상의 혈맹관계라고는 하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를 비롯해 외교통상 등 경제적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는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 일본과 더불어 주요 수출국인 미국의 경제보복이나 그를 전제한 위협은 국가경제에 치명타가 되고는 한다. 반세계화, 보호무역주의,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노믹스는 대미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큰 타격을 줄 것이란 예상이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공언하며 한국 자동차공장의 미국 역내 이전 요구, 반덤핑 제소나 환율조작국 지정 같은 위협을 통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쇠고기 수입 등으로 그러잖아도 피해가 큰 농업분야는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 전개될 경우 통상압력이 가중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카오스 이론은 혼돈 상태에도 질서와 규칙성을 지배하는 논리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무질서하고 예측불가능의 현상에서 정연한 질서를 밝혀낼 수 있다는 점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물리학뿐 아니라 기상, 천문, 전기 등 응용과학이나 경제,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이론인 것이다. 농업분야 혹은 외교통상도 혼돈과 재편의 와중에 있다. 정부가 주도면밀하게 연구하고 질서정연한 논리법칙을 마련해 무역협정 재협상에서 대응해야 한다.

끝으로 흥미로운 중국신화 하나. 혼돈은 머리에 눈, 코, 입, 귀가 없는 왕이다. 장자 내편 응제왕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남해 왕 숙과 북해 천제 홀은 중앙 임금 혼돈의 땅에서 수시로 만났는데 혼돈이 늘 은근히 잘 대접했다. 이에 숙과 홀은 보답 생각에 “사람은 일곱 구멍이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호흡하는데 혼돈만이 유독 구멍이 없으니 시험 삼아 뚫어주자”며 하루 구멍 하나씩 뚫었더니 칠일 만에 혼돈이 죽어버렸다. 그러자 비로소 하늘땅이 생기고 천지 분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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