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독감이 유행이다. 창궐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낱말이야 조류 인플루엔자라고 애써 학술용어에 가깝게 부른다지만 위험천만한 전염병이라는 사실은 그대로다. 그것도 제1종 가축전염병이다. 법정 가축전염병은 대개 3종으로 분류한다. 질병 전파속도가 빠르고 폐사율 등 축산업 피해가 큰 병들은 제1종, 상대적으로 경미한 것을 제2종, 제3종으로 나눈다.

현재 법이 정한 제1종 가축전염병은 우역, 우폐역, 가성우역, 블루텅병, 리프트계곡열, 럼피스킨병, 양두, 수포성구내염, 아프리카마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돼지열병, 돼지수포병, 뉴캣슬병,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등이다.

그 중에서도 조류 인플루엔자는 최근에 방역당국이 더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는 가축질병이다. 전염 양상이 매우 빠르고 다양하게, 광범위한 지역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체감염증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5N1형이나 최근 전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H5N6형 등 여러 형태의 고병원성 인플루엔자가 있고, 지난 2013년 중국에서 발생한 H7N9형처럼 사람에 감염돼 중증 폐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있다. 발병 지역도 주로 태국, 베트남 같은 동남아 지역에 집중되던 것이 최근에는 아시아 전역과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 인도 등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전염병의 유형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이하며 변종을 양산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아직까지는 인간에게서 인간으로 전이된다는 보고는 없으나 일각에서는 전 지구적인 전염 가능성을 우려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공개적인 언급을 통해 조류 인플루엔자가 인류의 대재앙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2005년 “조류 인플루엔자가 변이를 일으켜 공기로 감염될 경우 팬데믹(Pandemic)으로 돌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륙을 넘어 전 지구적인 전염병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조류 인플루엔자(AI)는 이미 자체로 진화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 무엇이 곧 닥쳐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언제 닥칠 것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인과의 연속성으로 보면 오늘은 과거의 미래이자 미래의 과거이다. 장차 펼쳐질 일들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 예측가능하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다만, 공기를 통한 감염은 우려되는 미래이지만 지속적인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오늘의 실재이다. 전쟁뿐 아니라 질병 같은 재앙을 우려하며 고금동서가 유비무환을 강조해온 터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그 유명한 조지 버나드 쇼의 비문이다. 흔히 결단력 없이, 인생목표도 도전정신도 없이 살지 말라는 훈계이자 일종의 ‘후회’로 이해됐다. 그러나 버나드는 정작 노벨문학상을 받은 성공한 작가였고 95세까지 장수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우물쭈물’이 잘못된 번역임을 알고 있다. 오래전에 이미 죽음이 닥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깨달음에 가깝다. 그래도 오역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은 현 사태에 대한 냉소가 아니라 미래의 과거인 오늘을 유비무환의 태도로 살자는 ‘심각’ 수준의 경고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사변의 꽁지깃을 빼버리고 현실의 발부리를 꼼지락대보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로 도살한 가금이 1천500만 마리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조류 인플루엔자 피해가 컸던 2014년 1천396만 마리 도살처분을 넘어선 데다 아직도 확산일로에 있어 피해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전체 산란계의 10퍼센트 이상이 도살 처분되면서 계란수급에도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품귀현상과 가격상승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금관련 이동제한을 전국에 걸쳐 일시에 실시하면서까지 인플루엔자 확산을 차단하려 애썼던 방역당국은 결국 15일에 위기경보를 최고단계인 ‘심각’ 수준으로 상향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파문은 굳이 사상최대 피해니 하는 불명예를 떠나 대통령 탄핵 정국만큼이나 국가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계란수급 차질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가 간접피해 혹은 제2차 피해에 해당한다면 직격탄에 폐허가 되는 곳은 농가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인 피해는 말해 뭐하겠는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린 농장이며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정성껏 키워온 생때같은 가금을 홀로코스트인 양 묻어야만 하는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그 매몰비용마저 농가부담이라면 어쩔 것인가, 일손 놓고 아예 폐업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또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답이 없는 현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국회와 축산농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도살처분 매몰비용을 지방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그것이 맹점이다. 응당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매몰비용을 지원해야 함에도 법에서는 강제성 없이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만 해두는 바람에 일부 광역자치단체에서는 매몰비용을 농가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삼진아웃제’에 대한 비판도 그렇다. 철새 등 불가항력의 오염원을 인정하면서 발병의 책임을 농가에 떠넘기는 정책이나 제도는 도입을 철회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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