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자식세대를 똑바로 볼 면목이 없다. 대한민국은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금기어로 여겼던 ‘비선실세’, ‘국정농단’이라는 낱말이 바람을 타고 공중을 떠다녔고, 이어 대통령 탄핵과 퇴진이라는 무시무시한 구호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오천만 국민을 태운 ‘대한민국 호’의 갑판실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는 고립무원의 ‘섬’이 된 듯 국민과 단절됐다. 과거보다 더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었던 많은 이들은 부정부패와 반칙이 만연한 한국사회의 단면을 목도하고 매우 놀랐다. 당황하고 분노했다. 언제 이렇게까지 썩었나,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후세들에게 이런 사회를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등등 자문자답과 자괴감을 오가는,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절초풍한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게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아닌 자가 국가요직 인사와 정부예산을 쥐락펴락하고, 정무 군사 외교 경제 문화체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대통령만큼의 ‘권한’을 행사했다는 증언과 증거가 잇달았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은 처음에 이 사건사달과 무관한 것처럼, 상상을 초월한 지인의 비행과 국정농단을 몰랐던 것처럼 발뺌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게이트’ 한복판에, 국정농단사태의 ‘몸통’으로, 조연에서 주연으로 등장하게 됐다. 결국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단정하고 압수수색, 대면조사 등 법적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공과를 떠나 국민을 크나큰 슬픔의 수렁에 빠뜨렸다. 대통령 권한을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그에 준하는 ‘비선 의존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많은 국민이 실망했는데, 이보다 더 큰 실망을 안기고 슬프게 만든 것은 대통령의 뜬금없는 ‘신세 한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 4일 제2차 대국민 담화에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말했다. 대통령 담화를 귀담아 들었던 많은 이들은 이 한마디에 망연자실, 허탈해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의 자리를 스스로 ‘신세 한탄’의 기회로 삼았다는 데에 대다수 국민은 노여움을 거두지 못했다. 어이없는 슬픔이랄까,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존재가치와 현실의 벽 사이에서 신음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을 둔 억울함과 부끄러움, 슬픔마저 국민의 몫이 된 것이다.

한편으로 대통령의 그 한마디에 수많은 패러디가 이어졌다. 내가 이러려고 승마선수가 됐나, 내가 이러려고 대학총장이 됐나, 내가 이러려고 당대표 했나, 내가 이러려고 단식했나, 내가 이러려고 열심히 공부했나, 내가 이러려고 대학 갔나, 내가 이러려고 취직했나, 내가 이러려고 밤낮없이 일했나, 내가 이러려고 한 평생 농사짓고 살았나, 등등. 패러디 봇물이 터졌지만 해학보다는 우울증과 자괴감이 컸다. 어느덧 자괴감은 한국사회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마치 집단 우울증에 걸린 듯 대한민국은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새 국면에 들어섰다. 지난 11월초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사죄하고, 향후 검찰 조사와 특검 수사까지 다 응하는 등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던 박근혜 대통령은 보름 만에 태도를 바꿨다. 그 사이 갖가지 의혹이 불거져 나왔고, 비리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으며, 관련자들의 증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속속 공개됐다. 결국 검찰은 중간발표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에 뒀다.

그러자 청와대는 변호인을 선임해 대면조사를 미뤄 달라 요청하더니 다시 며칠 후에 검찰 수사도, 특검 조사에도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라리 탄핵하라고,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적잖은 시민이 최근 한 달간 매일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주말마다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퇴진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특검법에 따라 특검이 시작되고 국회는 탄핵절차에 돌입했다. 여당은 사분오열 직전이고, 사태발발직후 임명한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이 난장판 대한민국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혼란한 정국이 언제쯤 안정을 되찾을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평등사회를 갈구하는 우리 민족의 저력과 평화를 갈망하는 선량한 품성이 어제와 오늘, 내일도 지탱해갈 것이라는 점이다. 위기마다 발휘하는 집단지성과 공동체정신, 그리고 단결과 실행이 우리 역사의 마디마디를 단단히 이었다.

 미완의 혁명이라는 4·19혁명, 1987년 민주화항쟁, 1998년 국제구제금융 극복까지 온전히 국민의 힘으로 위기를 딛고 더 나은 사회로 뜀박질하지 않았는가. 역사를 되짚어 봐도, 밀실에서 벌어진 온갖 추태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곳이 광장이요, 그 더러움을 말끔히 씻어내는 곳도 광장이었다. 광장에 선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이요, 국민이 서있는 그 광장이 한국사회의 오늘이자 내일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농업인이, 국민인 농업인이 트랙터를 몰고 그 광장에 존재하는 까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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