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마을에 불어 닥친 석산개발 소식에 마을이 발칵 뒤집혀 진 건 지난 8월 초부터입니다. 폐교에 들어선 커피숍에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결사반대를 외쳤지만 그게 어디 마을주민들의 뜻대로 되겠습니까.

현수막 서 너 개 걸어놓고 이젠 됐다라고 손 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동장이나 시청관련자도 찾아와서 주민들 뜻을 충분히 반영해서 시당국에 건의하겠다고 하고 몇몇 이들은 지역방송국까지 동원해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어 은근히 석산개발이 무산되길 바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업을 하려는 이들의 욕심은 주민들 뜻쯤은 아무 걸림돌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탐욕스런 사업자의 눈에는 좋은 식생이나 계곡의 맑은 물, 그곳에 서식하는 온갖 동식물도 그저 훼방꾼일 뿐이고 주민들이야 고통을 받든 말든 제 배만 불리면 그만이라는 생각뿐일 테니까요.

긴급마을회의를 갖자는 연락을 받은 것은 석산개발 사업자가 소규모 환경영향 평가서를 작성해 관할인 원주지방환경청에 제출했고 여기서 별다른 이의가 없으면 바로 동해시로 이의 없음을 통보한다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민원서류 처리지침에 의하면 이같은 사항은 접수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가부를 통보해야 되고 그전에 이의사항을 제기하지 않으면 서류검토만으로 끝난다니 다급한 상황이 된 겁니다.

잘 되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긴급마을회의가 소집됐고, 시청에 줄이 닿아있는 주민 한분이 사업자가 환경청에 제출했다는 환경영향평가서 책자를 입수해서 회의 장소에 가지고 왔습니다. 이전 몇 차례의 회의에서 석산개발반대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커피숍 젊은 사장을 총무위원으로 정해 위원회를 꾸려나갈 경비갹출이나 기타 사안들에 대한 의견을 모으긴 했지만, 실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인 가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사실 300여 쪽에 달하는 환경영향 평가서를 일일이 살피면서 이건 잘못됐다 아니다라고 판단하기에는 주민들이나 저나 전문가가 아니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누가 언제 어떻게 조사해서 평가서를 작성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살펴보다보니 뭔가 이상한 부분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사업부지내 산속에는 아무런 동물도 서식하지 않고 식물들도 그저 잡목뿐이고 발파에 따른 진동이나 소음도 주민들 생활에 영향을 끼칠 정도가 아니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기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 마을로부터 대략 10여 키로 떨어진 쌍용양회에서 발파하는 소리로 아 12시구나 라고 알게 되는데 하물며 마을 초입 2키로도 되지 않는 곳에서 수시로 발파해도 소음이나 진동이 없다는 주장은 삼척동자가 들어도 코웃음을 칠 주장이 아니겠습니까.

윗마을을 관통해 아랫마을까지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물은 요 몇 년 동안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을 뿐더러 여름철에는 동해시민들의 무료 피서지로 사랑받고 있는데 여길 틀어막아 석산개발지와 연결하겠다니 이 계곡물로 수 만평 논농사를 짓는 아랫마을은 생존에 대한 문제까지 대두된 셈입니다.

추석연휴까지 겹친 상황에서 발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눈뜨고 당할 상황이라 연휴 전에 추진위 대표와 몇몇 분들이 반박자료를 마련해 원주지방환경청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집안사정으로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분들이 함께 원주까지 동행해 의견을 개진하고 원주환경청에서는 반드시 실사를 나와 주민들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전갈은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최종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아무리 돈벌이가 좋아도 그렇지 이런 경우는 허가권자가 단호하게 거부하는 게 당연한 처사지만 또 누가 알겠습니까,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지 말입니다. 토박이든 외지인이든 살아가는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그래서 다 똑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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