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2일부터 사흘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전국농촌지도자대회가 열린다. 둘째 날 1만여 농촌지도자회원이 참여하는 메인행사뿐 아니라 학술행사, 어린이 사생대회, 농업농촌 사진전, 농기자재 전시, 농업기술 홍보관, 제주농업 체험관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됐단다.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17시·도가 참가해 서로 뽐내는 전국우수농산물 전시, 품평대회도 함께 개최된다고 한다.

전국농촌지도자대회가 제주도에서 열리게 된 것은 농촌지도자 69주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에 따르면 제주도는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탓에 전국대회 유치신청에서 몇 차례 쓴잔을 들었다. 적게는 1만 명, 많게는 3만 명이 넘는 인원이 전국대회에 몰려드니 ‘제주도의 고배’는 그럴 만하다는 이들도 있다. 그렇듯 영 어려울 것 같았던 전국대회가 드디어 제주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농촌지도자회로서도, 제주도로서도 감개무량한 일일 터이다.

전국 12만 회원을 거느린 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는 최대 규모이자 최고(最古) 농업인단체로, 자타공인 여러 농업인단체의 ‘맏형’이라 일컫는다. 해방직후 미군정 시절인 1947년 4-H 구락부 성인 자원지도자로 농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자원지도자들은 10년 만에 4-H 구락부, 농사개량 구락부, 생활개선 구락부 등 당시 농촌의 3대 단체를 이끄는 핵심요원으로 발돋움했다. 읍면동 조직을 바탕으로 상향식 조직화가 이뤄졌고, 1960년대에 전국조직의 면모를 갖춘 부단한 활약을 통해 1970년 마침내 전국단일대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가 출범하게 된다.

농촌지도자회는 우애, 봉사, 창조를 3대 이념으로 삼아 농업 발전과 선진농촌 건설에 이바지해온 단체다. 특히 이 단체는 자생성과 독립성에 기반하고 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육성한 단체가 아니라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나선 농업인들의 조직이란 의미다. 그래서인지 농촌지도자들은 녹색혁명의 주역, 백색혁명의 선구자, 과학영농의 기수, 천년만년 농촌지킴이 같은 ‘명예’를 중시한단다. 읍면 단위 혹은 시군 단위로 공동답을 경작하고 그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일은 전국 거의 모든 농촌지도자회원의 일상이다. 폐비닐 수거활동 등으로 깨끗한 농촌 환경을 지키고 재해마다 복구활동에 나서는 이들이 그들이다. 이번 전국대회에서도 태풍 ‘차바’로 큰 해를 당한 제주도에 십시일반, 적잖은 쌀을 내놓는다고 하니 가슴 뭉클하다.

농촌지도자를 대변하듯 그들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국내 최대, 최고의 농업인단체로 농업 발전과 농촌 지키기에 크나큰 기여를 하면서도 그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예직’으로서 굳이 두각을 나타내거나 억지로 부각되는 일을 꺼리는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농업을 경시하고 농업인을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요즘 세태는 그들 긍지에 큰 상처를 주고 있다. 식량자급을 달성하고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진다는 자부심도 공든 탑 허물 듯 무너뜨리고 있으니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자긍심과 상처를 한 몸에 지닌 농업인, 농촌지도자들이 제주도에서 새 출발을 다짐하는 자리가 전국대회라고 할 수 있다. 대회구호도 ‘희망찬 미래농업의 주역이 되자’라고 한다. 극심한 탈농과 이농의 시대에도 농업과 농촌을 지켜온 터줏대감, 외환위기로 국제구제금융의 지배를 받던 시절 안정적인 식량공급으로 기사회생의 불씨가 됐다는 자긍심, 그럼에도 농산물시장 개방의 폐해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희생양, 농업을 천대하는 위정자들의 오욕과 그로 인한 치욕, 이 모든 질곡의 과거를 청산하고 희망찬 미래를 열어내고야 말겠다는 농촌지도자들의 다짐과 외침이 제주도에서 시작함은 의미심장하다.

제주도는 가슴 아픈 역사, 4·3사건의 섬이다. 제주 4·3사건은 농촌지도자 구락부 태동과 거의 같은 시점인 1948년에 벌어져, 한국전쟁을 거치며 약 7년간 수만 명의 제주도민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직접적인 발단은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의 경찰지서 무장습격이지만 이후 군경의 무차별 ‘토끼몰이’ 토벌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뤄진 사건이다.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은 그간 진상규명 노력을 통해 보상단계까지 와있지만, 제주 4·3사건은 아직도 행방불명자 등 진상규명 차원에 머물러있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반세기 흘러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태 전 4월 3일을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로 입법예고한 것이 다행의 전부다.

올해로 69돌을 맞이한 농촌지도자회와 68주기가 된 제주 4·3사건을 무리하게 연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저 가슴 저리게 아픈 시대를 함께 건너왔고, 질곡의 과거사를 청산한 채 새롭게 희망을 써가고 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쪼록 전국 10만 회원을 대신해 제주도 전국대회에 참가하는 1만 농촌지도자회원들이 우리 농업과 농촌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마당에서 우애의 정신을 십분 발휘하여 제주의 아픔을 보듬고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갈 것이라고 감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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