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들어와 둥지를 튼 지도 벌써 만 4년이 지났습니다. 최초 계약서를 쓸 때 5년간 거주하기로 했고, 매해 임차료는 계약한 날짜에 일 년분을 선 지급하고 계약이 종료될 3개월 전에 재계약 여부를 의논하자고 했으니 이제 남은 기간은 1년뿐입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던 시골생활도 어느새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일상이 되고, 돌아보면 큰 어려움이나 고비도 없이 잘 지내왔으니 이만한 행운도 없는 셈입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골마을이라면 어떤 경우든 간섭이 있었겠지만 다행이 도로 위쪽 산허리에 홀로 위치한 집 덕분에 오히려 도로를 지나다니는 이들을 관찰하는 기쁨도 누렸으니 이것만 해도 큰 복을 받았다고 봐야 되겠지요.

뭐든 경험해봐야 장단점을 알 수 있습니다만 일단 이웃과는 적당한 물리적 거리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가까우면 무시로 드나들 수 있지만 일단 저의 집을 오려면 대략 20미터 정도 언덕을 올라야 하니 귀찮을 거고 아래에서 지나치면서 쳐다봐도 보이는 게 없으니 프라이버시가 보장됩니다.

옆 마당 샘물이 좋아 보여 덜컥 계약했으나 가뭄이 심해 샘물이 마르고 한여름에 샤워도 못할 정도로 곤란을 겪으며 물이 얼마나 소중한 입주 조건인가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도 마을 간이상수도가 개통돼 물 걱정을 덜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가 멀고, 더욱이 여름철이나 연휴가 긴 시기에는 교통체증이 심하다는 단점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사람 사는데 어디 100퍼센트 만족할만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데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골짜기를 굽이굽이 도는 도로와 나란히 흐르는 계곡물은 가뭄이 심해도 완전히 바짝 마르는 일은 없고, 여름철이면 시내에 거주하는 이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계곡부터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마을 쉼터까지 빽빽이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즐기는 동해시민을 위한 유원지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마을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늘 그 자리에 있는 풍경이고 환경이려니 여기면서 지내던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 건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8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폐교에다 커피숍에서 커피체험장으로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업종을 변경한 젊은 주인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한 내용인즉, 동해항 증설공사에 필요한 돌을 캐기 위한 채석광산이 마을입구에 들어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십 수 년 전에 철도용 자갈을 채취하기 위한 채석광산이 운영됐었고, 그 당시에도 마을주민들이 소음과 먼지 등으로 고통을 겪었는데 또다시 이런 고통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게 모든 마을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는 겁니다.

이미 수많은 업자들이 서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알음알음 인맥을 이용해 가구별로 은밀히 접촉해 동의서를 받아내고 있어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 긴급하게 마을회의를 열기로 했으니 참석해달라는 얘기였습니다. 마침 저의 부부는 춘천에 일이 있어 당일치기로 다녀오던 길이어서 피곤하긴 했지만 회의가 열리기로 한 카페로 차를 몰았습니다. 고압송전선 주변마을 지원 사업 관계로 어느 정도 마을사람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못 보던 이들도 많이 참가한 걸 보면 이 사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과거 철도자갈 채석 시에는 마을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 통장이라는 사람이 가구 세대주들의 도장을 임의로 새겨 동의서에 날인을 해 광산이 허가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지만 지금이야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밤늦도록 진행된 회의 끝에 1차 마을주민 전체가 연명으로 개발을 결사반대한다는 서명부를 제출하고 국도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아래동네부터 소나무 군락지 마을 쉼터까지 광산개발을 반대한다는 현수막 3개를 요소요소에 걸기로 결정했습니다. 무더위에 이 골짜기를 찾아오는 수많은 이들이 현수막을 보게 될 거고 이들도 석산개발이 얼마나 자연환경을 훼손시킬 것이며, 그로 인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게 될 것인지를 인식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마을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이 사안이 원만히 해결돼 저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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