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렇게 더운 날이 계속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지난 4년을 돌아볼 때도 여름철 한 며칠 더워서 잠을 설친 기억은 있지만 2016년 올 여름처럼 몇날 며칠이고 계속되는 불볕더위는 처음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헐떡거리니 가축이나 작물들도 어디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연강판 지붕이 한낮 햇볕에 달궈져 밤이면 집안이 30도가 훌쩍 넘어버립니다. 이러니 천정선풍기는 물론 집안에 있는 선풍기는 모조리 동원해 틀어놓지만 후텁지근한 방안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나마 밤이 깊어지면 바깥 공기가 집안보다는 시원하지만 악착같이 덤벼드는 모기를 막을 도리가 없으니 방안을 나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다시 화장실로 나가 찬물을 뒤집어쓰고는 바로 잠을 청해 보지만 쉽사리 꿈나라로 향하질 못합니다. 집사람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입니다. 어찌어찌 잠깐 잠이 들었다 삐질삐질 흐르는 땀 때문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맙니다.

벌써 며칠이나 이런 상태니 새벽녘에만 겨우 밭일을 하긴 합니다만 몽롱한 정신 탓에 일도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씨를 마음껏 즐기는 건 바랭이를 비롯한 잡초들뿐입니다. 해가 올라오면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땀에 젖어 활동하기가 힘든 건 물론 머리까지 어지러워 바로 철수해야만 합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만 앞세우다 온열병 증상을 경험하고는 만사 제쳐놓고 호미자루건 괭이자루건 내던지고 맙니다.
이 통에 풀들이 마치 제가 밭주인인양 기세등등합니다. 참 가관이지요. 이게 밭인지 풀밭인지 헷갈릴 정도니 한숨만 나옵니다.

작년까지는 여름 손님이 없더니 올 여름에는 그렇게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건만 손님들 방문이 끊이질 않습니다. 물론 제 쪽 손님이 아니라 집사람 쪽 손님이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만약 제 손님들이었다면 이 더위에 뭔 사단이 나도 났을 겁니다. 나이든 남자들의 삶이란 게 다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오는 손님들을 집안에서 맞이할 방도가 없으니 펜션이나 외부숙박업소를 이용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한여름 성수기 바닷가 숙박업소 가격은 알다시피 부르는 게 값이니 집사람은 인터넷은 물론 이곳에서 사귄 지인들을 총동원해 저렴한 숙소를 찾느라 땀을 더 흘립니다.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낀 깊은 계곡으로 동해시가 자랑하는 휴양지입니다. 이 계곡 초입에 시당국이 올해 조용한 휴양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질 좋은 숙소를 만들어 놓았고 ‘무릉건강숲’이라 명명되었습니다. 동해시민 10% 할인쿠폰을 활용해 오는 손님들을 이곳에 모셨더니 전부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고 하더군요.

합리적 가격에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지, 2인실이지만 다섯 명은 너끈하게 잘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니 한여름 성수기에 뭘 더 바라겠습니까.
이 와중에 큰딸내외와 작은딸까지 한꺼번에 여름휴가를 저희와 함께 한다고 연락이 왔으니 집을 어떤 식이든 시원하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됐습니다.

귀농했다고는 하지만 농사지어 돈 만져본 기억이 없으니 영 빵점 농부고 시골집 임차해서 쓰니 에어컨 놀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않았는데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지독한 여름 전국의 에어컨이 동이 안 날 리가 없습니다. 작은딸도 견디다 못해 홈쇼핑에서 8월 초에 에어컨을 주문했다는데 설치는 8월말이나 돼야 가능하다고 연락을 받았다니 온 세상이 더위에 미쳐가는 모양입니다.

2박3일 휴가를 부모와 함께 보내려고 찾아온 아이들을 데리고 첫날은 ‘무릉건강숲’에서 다음날은 예약불가로 몇 십 만원을 주고 콘도를 빌려야 될 지경에서 뭘 망설이겠습니까. 아무리 에어컨이 동이 났다고 한들 길은 있게 마련입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더위를 피해 온 대형마트 가전매장에서 전시용 벽걸이에어컨을 저렴한 가격에 나온 걸 찾아냈던 겁니다. 더위에서 해방되라고 광복절에 찾아온 설치기사는 연실 굵은 땀을 흘렸고 드디어 차디 찬 에어컨 바람이 방안을 채우니 세상 더 부러운 게 없습니다. 기계 할부금이나 전기요금 폭탄 따위도 지금은 안중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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