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날씨 참 징하게 덥군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흔한 소나기 한번 오는 법 없이 어찌나 햇님이 위세를 부리는지 절로 비명이 나올 지경입니다. 곡식들도 새벽에만 조금 쌩쌩하지 산등성이로 해가 얼굴만 내놨다하면 축축 늘어져서 하루 종일 하얗습니다. 가뭄에 잘 되는 고추마저 너무 마르고 뜨거우니 열매가 쭈글쭈글해져서 여기저기 물을 주는 모습이 눈에 띱니다. 돌아다니면서 보면 오직 깨만 이런 날씨를 즐기는 듯 심어놓은 밭마다 아주 터지게 가득가득 찼습니다.

입추가 지났으니 이제 보름 정도만 견디면 서늘한 바람이 좀 불어오겠습니다만 8월, 그리고 9월 달까지도 더위는 이어진다고 하니 처서 백로가 지난들 시원할는지 알 수 없지요. 하지만 이 더위가 지나간 날이 많지 다가올 날이 많은 건 아닐 겁니다. 어찌어찌 지내다보면 비 오는 날도 있을 것이고 찬바람 부는 날도 오기는 오겠지요.

요즈음은 정말이지 이 더위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습니다. 논이나 밭에 만도리를 해야 할게 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놔두어 보고 있는 중입니다. 풀이라는 것이 곡식과 함께 있으면 보기만 조금 사나워서 그렇지 곡식 되는 것에는 그닥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사실 또 지금은 곡식들도 자랄 만큼 자라서 어릴 때 같지 않으니까요. 논둑 밭둑 풀이 자라면 정신 시끄러워서 더워도 베기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햇빛아래서는 아니 됩니다. 까딱하면 일나겠더라고요. 얼마 전에 해마다 그래왔듯이 쑥대 발 몇 개를 만들어 보려고 쑥대를 베게 되었는데 저는 그때 난생처음 더위라는 것을 먹어 보았습니다. 키 닿게 쭉쭉 자란 쑥대를 베기 위해 제키도 넘는 풀숲에 들어가서 쑥대를 배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막혔습니다. 하지만 물도 충분히 마셔뒀겠다 조금만 더 하자는 생각으로 버티는 중 무엇이 뒤통수를 치는 듯 기분 나뿐 생각과 속 메스꺼움, 그리고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껴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더군요.

그 증상은 일을 그만두고 그늘에 앉아 한동안 쉬어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씻고 과일 몇 조각을 먹은 후 누워 안정을 취하고 나서야 진정되더군요. 단순한 더위라고 보기보다는 일사병이나 열사병 그런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해 왔어도 그런 경험은 처음이어서 아, 나이 먹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언 듯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증상이 햇빛에 조금만 노출되어 땀을 흘리면 비록 강도는 약할지라도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점점 그 정도가 약해지기는 하지만서도요.

그래서 지금은 아예 예초기질 같은 것은 새벽 다섯 시 반 무렵부터 시작해서 여덟시 무렵까지만 합니다. 그러기를 나흘째, 오늘은 논둑을 벨 요량으로 어둠발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논에 가서 일 시작한때가 다섯 시 반, 제 논이 있는 동네 분들도 아직 한분도 논에 나오지 않았는데 아마도 제 예초기 소리에 잠들은 다 깼을 겁니다. 제 예초기가 소음기 부분에 기름이 자꾸 쩔어 붙어서 그만 소음기를 떼어내 버렸거든요. 그랬더니 머플러 빵꾸 낸 오토바이처럼 소리가 요란하여 귀청이 떨어질 지경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솜으로 귀를 막다가 지금은 버릇이 돼서 귀를 막지 않아도 괜찮고요.

가문 날과 더위가 계속되니 한 가지 좋은 게 모기가 예년처럼 극성을 부리지 않는 것이라 더군요. 웅덩이 물이 다 말라버리니 그렇겠지요. 그런데 저희 집은 예외인 듯합니다. 산속이고 또 집 주변에 물웅덩이 수십 개가 있으니 말입니다. 우선 집 주변에 방화수로 쓰려고 큰 통에 담아놓은 물이 여섯 통이 있고요, 마당 앞에 연못하나와 꽃 좋아하는 저의 안식구 작품인 대야 통으로 만든 연못이 칠팔 개나 있으니 모기가 없을 턱이 없지요. 그러긴 해도 작년보담 모기가 적다는 말이 맞기는 한 모양입니다.

모기약도 없고 방장도 없는 옛날엔 저녁 해 어스름이 되면 질 옹배기에 쑥대 불을 만들어서 방안에 들여놓고 가득 연기를 내뿜도록 했어요. 그리고는 수건이나 빗자루 부채 따위로 방안 구석구석을 휘저어서 연기와 함께 모기를 몰아낸 후 방문을 꼭 닫아 놓습니다. 물론 방 앞뒷문에는 종이를 떼어버리고 모기장을 붙여놓았고요. 마당에 펴 놓은 멍석위에서 저녁을 먹으면 식구들은 모두다 마을 앞에 있는 몽돌 자갈이 깨끗한 바닷가에 나가 바람을 쐬었어요. 동네 사람이 거의 다 나와서 바닷바람을 쏘이며 집안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저희 같은 꼬맹이들은 이런 말놀이를 하다가 어느덧 잠이 들었답니다.

별 하나 따서 구워서 불어서 식쿼서 구럭에다 담고/ 별 둘 따서 구워서 불어서 식쿼서 구럭에다 담고 … / 한숨에 별 열을 따서 가슴에 안고 가쁜 숨을 내쉬던 아이야/ 수제비 먹고 그 별 하나씩 강물에 물수제비뜨던 아이야/ 지금도 앞장불에 달려 나가 손깍지 베개로 누우면 지금도/ 쏴아쏴아 자갈돌에 쏟아지던 은하수와 그 강물의 별들/ 철썩이던 소리 들리겠느냐 삐걱삐걱 밤배 젓는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아스라이 지금도 네 여름밤의 꿈으로 꿈속으로/ 길을 내겠더냐  시- (앞장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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