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 손두부·청국장으로 새희망 품다

지난 1998년 멋드러진 도시생활을 접고 전남 여수시 화양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꾼으로 인생2막을 개척하고 있는 박용현, 한해경씨 부부.

이제야 지역에서 손꼽아주는 농사꾼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들 부부의 귀농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농사짓는 법을 모르니 짓는 농사마다 죽을 쑤기 마련이고 이정도면 됐다 싶으면 수확량이 형편없거나 가격이 폭락해 이들 부부의 희망을 짓눌렀다.

밤낮없이 농사일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들 부부의 순탄치 않은 길은 남편의 고집도 한몫했다. 박 씨는 귀농 첫해부터 기존 화학농약·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농업을 고수해 아내의 애간장을 태웠다. 

기존 화학농법을 활용하면 안정된 수량에 소득도 어느정도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박 씨는 내가 떳떳하게 먹을 수 있는 농산물만 생산하고 판매한다는 소신을 고수하면서 경제적 고충을 가중시켰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 내몰린 부부는 이때 1차 생산품 판매에만 집중하지 말고 2차, 3차 가공품 생산으로 부가가치를 높여보자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단순히 양파만 판매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양파즙으로 가공해 판매를 시작했고 단순 콩만 생산하던 것을 청국장, 손두부로 재탄생시켜 판매를 시도했다. 브랜드도 ‘향유미가(香裕味家)’로 정했다.

이들 부부의 기발한 발상은 부가가치 창출을 넘어 단숨에 억대 농업인의 반열로 올라설 수 있을 만큼 큰 결실을 맺었다. 이들 부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가공산업의 범위를 더욱 넓혔다. 지난 2013년에는 소규모 창업기술 시범사업장으로 선정돼 126㎡ 규모의 가공시설도 갖췄다.

매출도 쑥쑥 성장해 2012년 3천만원에 그쳤던 매출은 2015년 2억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주문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협소한 가공장으로 인해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어 또다른 고민이 생겼다.

이들 부부는 결단을 내렸다. 이왕 시작한 사업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HACCP 등 안전성을 대폭 강화하고 주문량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규모의 가공장을 새롭게 증설키로 한 것. 여기에 투입된 금액이 10억원이 넘는다. 자칫 무리한 투자가 되지 않을까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들 부부는 자신감이 넘친다.

박 씨는 “이미 로컬푸드 매장이나 학교 급식용 납품을 통해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다”면서 “농부가 직접 생산하고 정직한 재료를 사용해 안심할 수 있다는 신뢰를 끝까지 사수해 ‘향유미가’ 브랜드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내년부터 최신 가공장의 본격적인 가동을 앞두고 이들 부부는 양질의 콩 확보를 위해 지역에서 콩 농사를 잘 짓는 45농가와 계약재배를 맺었다. 넉넉하게 수매가를 책정해 줘야 하지만 외상이 대부분이다. 자칫 내준 콩 값을 떼일 수도 있지만 농가들이 기꺼이 콩을 내주는 것은 이들 부부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간 밟아온 부부의 발자취를 인정한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이들 부부는 지역사회에서도 각종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박 씨는 농촌지도자여수시연합회 사무국장을, 아내는 생활개선여수시연합회 임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농부의 양심을 지키고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생산하자는 이들 부부의 소신이 인생2막 귀농생활의 성공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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