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이란 게 어떻게 살아가는 생활일까요? 문화를 이거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듯싶지만 대체로 우리들이 관념적으로 여기는 문화의 기준으로 본다면 시골에서 문화생활을 즐기기는 어렵습니다. 사계절 내내 영화 한편 보기도 어려우니 언감생심 음악회나 연극공연 같은 차원 높은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건 사실 꿈도 꾸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하루 일과가 끝나 방안으로 들어오면 손발을 씻는 일도 귀찮을 정도니 뭔들 시간을 내 할 수 있겠습니까. 기껏 TV켜고 뉴스나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마니 어떤 때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잔디가 깔린 아담한 전원주택에서 햇볕 좋은 날 집사람과 함께 차 한 잔의 여유를 꿈꾸던 전원생활은 퀴퀴한 냄새가 없어지지 않는 방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현실 앞에서 그저 꿈이 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문화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 전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는 제각기 살아가는 사회별로 다양성과 독특함이 생명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문화는 그저 편리함을 추구하는 온갖 도구들에 갇힌 획일적 기준이 잣대가 돼 그 다양함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믹스커피의 편리함이 하나의 문화가 된 건 그리 오래전이 아닙니다. 한집 건너 온갖 브랜드의 커피 전문점이 자리 잡고 있는 도시에서도 믹스커피는 제 역할이 있습니다. 이러니 카페 구경조차 힘든 시골에서 믹스커피의 역할은 도시보다 훨씬 더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 한 잔도 마시지 않았던 커피가 시골로 와서는 저도 모르게 몇 잔씩이나 마시게 된 건 밭일 중간 중간에 평상에 걸터앉아 피곤함을 달래던 그 달콤함 때문일 겁니다.

몸에 좋네 아니네 하는 갑론을박쯤이야 무시해도 좋습니다. 그저 전기검침을 나온 이도, LPG가스통을 배달 온 이에게도 종이컵에 담긴 따끈한 믹스커피 한 잔은 소통의 도구가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제몫을 다한 셈이 아닐까요.

다양함을 인정해줄 때 사회도 다양해지고 발전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획일적 잣대로만 내편, 남의 편을 가르기만 하는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고착화되고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역사책에서나 그 흔적을 찾는 사회시스템이 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시골에서 마을회관은 마을 모든 이들이 모이는 광장입니다. 먹고 마시고 서로의 소식과 안부를 묻고 궁금해 하는 광장이 있을 때 마을은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도시민의 눈으로 볼 때 왜 집 놔두고 회관으로 모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테지만 이것도 시골생활을 지탱시키는 또 하나의 문화현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일 년에 딱 한번 시내 복합상영관을 찾아 영화를 봅니다. 삼복더위가 그 절정을 향해 내달릴 무렵 도저히 낡은 시골집에서 선풍기만으로 더위를 피하기가 역부족이면 집사람과 함께 시내 복합상영관으로 나갑니다. 보고 싶거나 아니면 혹 보고 싶지 않은 영화라도 이 숨 막히는 더위를 대처할 유일한 방안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리 예매해 둔 시간보다 좀 일찍 극장을 찾는 이유는 넓은 로비도 시원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영시간표는 마지막 회 직전으로 예매해 극장을 나설 때는 밤이 꽤 이슥해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더운 여름날이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산길은 차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해 운전하기 좋습니다. 물론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하게 저녁식사도 근처 식당에서 해결했으니 집에 도착하면 선풍기 타이머 맞춰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날은 일반적 관점으로 본 문화생활을 아주 만끽한 날이 되는 겁니다.

이곳에 온 해부터 쓰던 밀짚모자가 너무 낡아 새것으로 바꾸려고 할인마트로 나갔지만 맞는 모자가 없습니다. 요즘 세태가 작은 머리 위주라 그런지 사이즈조차 한가지 밖에 없다니 정말 기막힐 노릇입니다. 싼 밀짚모자도 다양성이 보장돼야 문화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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