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만든 쌀국수 “없어서 못 팔아요”

우리 인류의 영원한 먹거리인 식량자원의 변화 바람이 거세다. 단순히 먹거리 인식에서 벗어나 가공, 유통, 관광, 체험 등 6차산업을 도입해 농업·농촌 발전은 물론 경제 활성화에도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식량자원의 최후의 보루인 농촌진흥청은 그동안 연구·개발된 기술을 토대로 식량자원의 6차산업을 추진하고 있는 경영체들을 직접 찾아가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사항을 검토하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기술을 지원해 식량자원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본지는 농촌진흥청과 공동으로 일선 현장에서 꽃피우고 있는 식량자원의 6차산업화 사례를 통해 우리 농업·농촌의 새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Ⅰ. 우리밀가공공장영농조합법인
Ⅱ. 여수잡곡영농조합법인
Ⅲ. 청보리식품
Ⅳ. 거류영농조합법인
Ⅴ. 삼진도정공장
Ⅵ. 하루에세끼영농조합법인


매년 떨어지는 쌀값으로 인한 농업인들의 고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껏 생산한 쌀을 내다 팔 곳이 없어 발만 동동 거리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 쌀 농업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쌀을 활용한 가공식품 분야가 농업과 제조·서비스업을 융합한 6차 산업을 선도하면서 농업·농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 것.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영농조합법인은 쌀국수, 쌀 파스타 등 쌀을 활용한 가공식품을 생산해 침체된 쌀 산업에 새희망을 전하는 대표 기업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오로시 피땀 흘려 생산한 쌀을 제값 받고 팔고 싶다는 욕심으로 시작된 쌀 가공 산업이 이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쌀국수로 각광받고 있다.


 
쌀값 하락 위기속 가공용 쌀 품종 전환


거류영농조합법인이 소재한 곳은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 일대로,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농토만 즐비만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대표적인 작목은 당연히 ‘쌀’이다. 경남 고성군이 일찌감치 친환경농업 선두 지자체로 올라선 만큼 생산된 농산물도 유명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2009년 내리 두해 연속 쌀 파동이 났다. 쌀값이 형편없이 곤두박질치면서 은월리 농업인들의 긴한숨만 이어졌다. 한해 소득이 반토막 날 지경에 이르다 보니 농업인들의 불안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거류영농조합법인 손상재 대표다. 기존 쌀시장과 겹치지 않고 독자적인 가격을 형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끝에 가공용 쌀 재배로 전환을 시도했다. 자칫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었지만 손 대표는 농업인들을 설득하며 품종 전환을 추진했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고아미’ 품종의 가공용 쌀을 2008년부터 시험 재배해 우리쌀국수 원료로 공급을 시작했다. 가공용 쌀의 가능성을 엿본 손 대표는 ‘고아미’의 단점을 개선한 ‘새고아미’ 재배 특화단지 조성도 주도했다.

가공용 쌀 공급물량이 계속 늘었다. 당시 쌀국수 유명 기업인 ‘미담푸드’는 삶아서 급속 냉동한 쌀국수 숙면을 연간 120톤 정도 경남도내 학교급식에 납품해 왔으며 거류영농조합법인이 70% 가량을 공급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였다. 쌀국수의 시장이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고 점차 위축돼 가면서 거류영농법인은 쌓여가는 재고로 또다시 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만들어 팔자’ 오기로 쌀가공 뛰어들어

벼랑 끝에 내몰린 손 대표는 주눅들거나 기죽지 않고 거침없는 행보를 선택했다. ‘공급하지 못할 바에는 직접 만들어 팔자’라는 오기가 생겼다. 지난 2012년 쌀국수 생산에 직접 뛰어들었다. 순전히 농사만 짓던 농사꾼이 졸지에 기업인으로 변신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말이 좋아 기업인이지 쌀국수 제조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제조기술도 부족한데다 제조시설조차 변변치 못한 탓에 ‘무모한 도전’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위기에 내몰린 손 대표에게 또다시 기회가 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신청한 쌀국수를 주제로 한 향토산업육성사업이 선정된 것이다. 지난 2015년 2월 5억5200만원의 사업비로 476.5㎡ 규모의 쌀면생산가공장을 완공하고 준공식을 가진 후 쌀국수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무엇보다 거류영농법인에서 생산된 우리쌀국수는 쌀 함량이 70% 이상으로 시중 30~50%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당뇨 등에 좋은 기능성 쌀이 주재료인 만큼 영양 성분이 높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주문량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특히 농촌진흥청의 적극적인 권유로 쌀국수에 제한된 가공상품에서 쌀파스타, 현미파스타 등으로 상품 다양화를 추구했다. 쌀 파스타의 경우 99%의 쌀에 타피오카 전분 1%를 섞어 만들어 100% 우리쌀로 만든 제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 반응도 좋다. 안정적인 제품 생산에 매진하고 있는 터라 본격적인 마케팅이 전개되고 있진 않지만 제대로 된 쌀국수, 쌀파스타, 현미파스타가 생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형마켓 등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가공용 쌀 품종·가공품 개발도 분주

농촌진흥청도 분주하다. 주식용 쌀이 아닌 가공용 쌀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현장에서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양해졌기 때문.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탄생한 품종이 ‘고아미’, ‘새고아미’ 품종이다. 

농진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공용 적합 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해 최근 파스타 제조에 적합한 벼 품종 ‘새미면’을 개발했다. 여기다 쌀국수를 넘어서 쌀 파스타 제조기술 특허 출원도 완료했다. ‘새미면’은 아밀로스 함량이 26.7%로 높고(일반벼 20% 이내), 전분의 노화가 빨라 끈적이지 않는 파스타 면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쌀알 내부에 공간이 많아(분상질률 65.7%) 분쇄가 잘되고 반죽이 쉽다. 이 쌀로 만든 마카로니 2종(현미·백미)과 스파게티(현미·백미) 2종은 매우 쫄깃하다.
손 대표는 이 ‘새미면’을 전국에서 유일하게 재배에 뛰어들어 성공한 농업인으로 주목받고 최근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남부작물부에서 사례발표를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초심잃지 않고 쌀가공 선두기업 될 터

손 대표는 이제 걸음마를 뗀 기분이란다. 2012년부터 제품 생산에 뛰어들어 온갖 고초를 감내하며 무려 4년만에 만족할 만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게 됐다.

‘이제 됐다’는 안도의 한숨도 오래가지 못했다. 한정된 예산으로 제조 설비를 설치하다 보니 자동화 시스템이 아닌 가내수공업 형태가 되면서 일일 생산량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유통시장에서 일일 4~5천개 가량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거류영농법인은 고작 1천개밖에 생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실 손 대표가 쌀가공에 뛰어들면서 투입된 비용이 1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자돼야 할 곳이 많아 고심이 크다. 여기저기 조금만 손을 보면 잘 될 것 같은 느낌에 투자를 멈출 수가 없단다.

손 대표는 “사람 욕심을 채우려면 일일 1만개를 팔아도 부족하겠지만 늘 초심으로 돌아가 농업인이 생산한 쌀을 제값주고 수매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면서 “순전히 100% 우리쌀로 만든 쌀국수, 파스타 등 생산 기술력을 쌓아 우리쌀 가공 산업을 확산시켜 나가고 싶은 욕심만 마음껏 부려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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