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가 되어버린 ‘합리적인 절충안’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추진하는 가락시장의 표준하역비 정율제 도입에 대한 도매시장법인 의견서가 제출됐다. 그 동안 꾸준히 반대의사를 밝혀왔던 도매시장법인은 과거 표준하역비 제도 도입 과정에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시행했던 관련 문서를 공개하며 “정율과 정액방식을 혼용하고 있는 현행 방식은 위탁상장수수료를 도매시장법인의 수입으로 회계처리하고, 농안법에서 정하고 있는 청과부류 위탁상장수수료 징수 상한인 7%를 초과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반대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현행 변동수수료 체계…“합리적인 절충안”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가락시장지회(이하 가락시장지회) 이름으로 발송된 의견서에 따르면 도매시장법인이 징수하고 있는 현행 위탁상장수수료 징수 방식(변동수수료 체계)은 2001년 11월 ‘청과부류 표준하역비 시행협의회’에서 합의된 내용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청과부류 표준하역비 제도 시행 방안 시달’(2001.12.21) 문서를 통해 단계별로 표준하역비 대상 품목을 명시했다. 또한 2004년에는 표준하역비 대상 품목을 96개에서 국내산 포장출하품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청과부류 표준하역비 제도 확대시행’(2004.1.10.)을 발표했다.

2001년 당시 표준하역비 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공문에 따르면 지금의 변동수수료 체계는 ‘합리적인 절충안’ 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관련 공문(‘청과부류 표준하역비 제도 시행방안 시달’ 2001.12.21.)을 통해 “‘표준하역비 시행협의회’ 운영 과정에서 제기된 관련 당사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원칙적 합의 정신을 존중하고,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도매시장법인의 주장도 부분적으로 반영하여 이를 종합 조정한 합리적인 절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합리적인 절충안의 내용은 △1단계(2002.1.1.부터) 완전규격(파렛트) 출하품 △2단계(2002.4.1.부터) 과실류 19개 품목 △3단계(2002.7.1.부터) 서류, 버섯류, 임산물 등 19개 품목 △4단계(2002.10.1.부터) 채소류 58개 품목 등 총 96개 품목의 포장 출하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특히 당시 공문에는 “(표준하역비) 시행과 관련한 위탁상장수수료 요율 조정 문제는 ‘표준하역비 시행 협의회에서 대표들이 동의한 수준’과 ‘농림부의 지침’ 등을 참고하여 도매시장법인별로 자율적으로 조정하여 시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상황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현재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늘어나는 하역비로 인해 예상되는 위탁상장수수료 인상을 억제시키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정율제 전환으로 위탁상장수수료가 인상될 경우 출하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고품질·고단가 출하자에게  불리한 정율제

그렇다면 출하자 입장에서 어느 쪽이 유리할까? 기존의 변동수수료 체계와 정율제에 대한 주장을 짚어봤다. 우선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주장에 따르면 정율제는 단기적으로 경락가격 등락에 따른 유불리가 발생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경락가격이 높을 때는 부담이 커지고, 반대로 낮을 때는 부담이 작아지는 구조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본다면 평균 부담률로 조정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위탁수수료율을 도매시장법인과 출하자가 상호합의하에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고품질 및 파렛트 단위 출하자 등의 경우 우수 출하자를 유치하기 위한 도매시장 내·외부와의 경쟁으로 지금보다 더 낮은 위탁상장수수료율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정율제 도입으로 인한 위탁상장수수료율 인상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도매시장법인과 협의할 것”이라며 “서울시농수산물도매시장 조례시행규칙 제63조 제2항을 근거로 규격출하품에 대한 위탁상장수수료 감면 등의 별도 지원 방안을 도매시장법인에게 행정지도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가락시장지회는 정율제에 따른 고품질 출하자 부담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출하된 청송 사과유통공사의 하역비를 정율제로 추산한 결과 기존 변동수수료 체계보다 13.5% 증가한 5,500만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깐마늘을 출하하는 A출하자는 2,000만원이 넘게 늘어났고, 복숭아를 출하하는 B출하자의 경우 2,200만원, 감자를 출하하는 C농협의 경우 1,400만원이 넘는 등 2015년 기준으로 약 45억원에 달하는 출하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2월 1일부터 적용된 5.2%의 하역단가 인상분은 반영되지도 않은 결과다. 따라서 이를 반영할 경우 하역비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같은 가락시장지회의 추산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가이드라인에 근거하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정율제에 따른 위탁상장수수료 가이드라인으로 △과일류 4.88% △과채류 4.92% △근채류 5.32% △무, 배추, 양배추 6.63% △서류 5.05% △양채류 4.77% △엽채류 4.89% △조미채소류 4.80% △기타채소 4.81% 등 전체 5%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정율제에 얽힌 현실적 문제…2001년 논란 되풀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선 도매시장법인이 내세우는 명분은 출하자 보호다. 정율제는 경락가격에 따라 위탁상장수수료가 수시로 바뀌는 구조. 도매시장법인은 출하자에게 바뀌는 내역을 때마다 설명해야 한다. 일례로 연중 출하되는 애호박(상품. 20개 기준)의 경우 지난 5월 한 달간 8,000~1만원 수준에 거래됐다. 그러나 지난 12월에는 2만2,000~3만5,000원 선에서 거래됐다. 이 경우 같은 품목임에도 3배 수준이나 차이나는 하역비에 대한 해명은 도매시장법인의 몫이다.

수치상 늘어나는 위탁상장수수료율도 문제다. 지금까지 가락시장은 4% 수수료를 기준으로 판매 및 출하장려금을 지급해왔다. 그러나 정율제로 전환되면 평균 5% 수수료가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장려금 인상에 대한 압박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역비 협상도 문제다. 정율제로 전환되면 도매시장법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협상주체로 하역노조와 직접 대면해야 한다. 이 경우 하역노조의 협상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고, 도매시장법인은 하역노조의 법인화를 요구하는 등 또 다른 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표준하역비 도입 과정과 지금의 정율제 논란은 다르지 않다. 정율제는 당시부터 지금과 같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2016년 현재 논란은 되풀이되고 있다. 과연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변화를 거부하는 가락시장이 문제인지? 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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