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이곳도 겉으로는 집과 땅이 한 필지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 사람이 나눠 소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집과 주위 600여 평은 큰 아들, 아래 800여 평은 작은 아들, 집 뒤편 400여 평은 막내아들 몫으로 지분이 나눠져 있어 농사철에는 여러 사람들이 움직여 번잡할 정돕니다.

어차피 저야 임차해서 살고 있어 소유권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살다보니 이 땅이란 게 잘 살펴보지 않으면 나중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가 전체를 소유할 때야 아무 문제가 없지만, 다음 대에 나눠질 때 자칫 잘못하면 이 땅들이 맹지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집 주인장의 말을 빌리면 현세대에서야 형제간이니 서로 편의를 봐주겠지만 다음 세대로 내려갈 때는 여러 변수가 생겨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자신이 어떻게 이런 분쟁의 소지를 없앴는지 얘기해주더군요.

전체 밭 가운데 집이 있어 도로로부터 집까지 진입로가 사실 없는 상태였고, 선친이 생존해 있을 때야 길이든 밭이든 아무 문제없이 드나들었지만 동생에게 아래 밭 소유권이 넘어갈 때 진입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동생 지분 중 100평을 매입해 아예 진입로로 만들었답니다.

이렇게 진입로에 대한 문제는 그 땅을 온전히 쓸모 있게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무리 형제간이라도 뭔가 틀어져 내 땅을 딛고 다닐 수 없다고 주장하면 그것처럼 낭패스런 일이 없을 겁니다.

집 뒤편 400여 평 밭은 현재로서는 그야말로 맹지가 된 셈입니다. 지금이야 친척들이니 서로의 땅을 밟고 다녀도 묵인하면서 경작을 하고 있습니다만, 혹시 매도해야 할 상황이 되면 과연 땅이 온전하게 제값을 받을 수 있을는지는 글쎄 입니다.

집을 짓지는 않는다 해도 적어도 경운기 정도가 들어올 수 있는 진입로가 확보돼야 농지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텐데 현재로서는 사람이 걸어서 들어올 수 있는 길 조차도 없는 상황에서 제3자에게 넘길 수는 없을 듯싶기 때문입니다.

옆 대추나무 밭 위와 집 뒤편 밭과 접해 있는 산기슭은 갈대와 잡목이 우거져 임야로만 알고 있었는데 농지원부 상에는 전(田)이라고 하더군요. 대추나무 밭 위쪽도 산기슭에 접한 부분이 꽤 넓은 평지로 연결돼 있어 예전에 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 무심히 바라보면 경사가 심하지 않은 산으로 여기기가 십상입니다.

갈대와 이름 모를 잡목, 그리고 저절로 자란 소나무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단감나무가 사람 손을 탄 유일한 흔적입니다. 이처럼 묵밭이 돼버린 까닭은 진입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추나무 밭과 제가 살고 있는 밭의 경계는 폭이 1미터도 되지 않는 구거고 위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구거를 통해서 올라가야 하거나 대추나무 밭을 통과해야 되니 그저 괭이나 삽 등을 들고 걸어올라 가는 외는 접근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러니 옛날처럼 호미나 괭이로 농사짓던 시절에야 걸어 다닐 길만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시절이야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산 아래 800여 평이나 되는 밭이 이런 상황에서 윗대들이 연로해서 경작을 못하고 아랫대는 귀찮다고 방치하니 야산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땅이 비옥하고 넓다하더라도 진출입을 편하게 할 수 없다면 경작지건 혹은 다른 용도건 가치가 없기 마련입니다.

간혹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쓸모없는 묵밭으로 사기를 치는 부동산업자들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땅을 구입하려면 현장 답사를 해야만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경작지가 제대로 그 가치를 발현되기 위해서는 누가 됐던 아래 위 땅을 합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대추나무 위쪽 묵밭에 무성한 잡목과 소나무는 베어내기로 했답니다. 대추나무 밭 주인장이 묵밭 주인장의 허락을 받았다며 저보고도 베어 쓰고 싶으면 써도 좋다는 말에 톱을 들고 산을 올랐지만 나무 한그루 베어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하루 종일 끙끙거려 제법 굵은 소나무 한그루를 넘어뜨리고는 그만 몸살이 나고 말았으니 세상 쉬운 일이 없습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