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바쁘군요. 고추도 심지 않는 놈이 남의 고추 심는데 불려가서 한나절씩이나마 이틀을 일했지요, 면민의 날 행사라고 풍물 굿 한번 쳐 달라지요. 유기농 하는 친구들 씨나락 종자 친다고 공동 작업 하자고 날 받았다지요. 바로 이어서 못자리 골라 놔야지요. 마지막 일요일은 누가 또 결혼식이라고 봉투 들고 오라네요. 그려. 넨장맞을! 먹잘 것 없이 가랑이에 방울 소리 나게 생겼지만 그래도 다 신나고 재밌고 꼭 해야 될 일이지요? 그뿐 아닙니다. 몇 년 사이에 빈 땅에 엄나무를 약100여주 심어 두었는데 먼저 심은 것은 인제 수확이 나오기 시작해서 하루에 한 번씩은 가시덩이와 혈투(!)를 벌이며 그걸 따야 합니다. 처음부터 팔 목적은 아니었으므로 이집 저집 나눠 먹는데 크고 탐스런 것들은 점잖은데 인사용으로 그만이더군요. 그래서 그 택배 작업도 간간해야 합니다.

그새에 또 풀은 한나절씩 이틀이나 깎았어요. 봄이 되어 첫 풀을 깎을 때마다 ‘올해는 또 몇 차례나 예초기를 을러메야 되나’  짐작해 보는데 올 봄, 잘해서 소를 한 마리 살 수 있게 된다면 이 좋은 풀들! 예초기 대신 낫을 들고 꼴을 베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예초기로 베어내야 합니다. 봄의 풀은 성장이 빨라서 치렁하게 크도록 놔두면 일이 힘들어지니 무릎높이까지 자란 풀은 물어 볼 것 없이 베어 깔아야 합니다.

역시 예초기질은 힘이 들어요. 아침에 눈 벌어지자마자 자리에 일어나 앉아서 한 시간 가량 맨손운동을 하는 탓인지 낮에 손발 놀려 일하는 것은 참 부드러운데 그러나 노동의 부하가 뼛속에 쌓이는지 자려고 누우면 사방 군데가 아프기 시작하는군요. 그 정도가 작년보다 조금 더 심한 걸로 미루어서 예초기질도 이젠 반나절씩만 해야 할까 보네요. 어쨌든 그 덕분에 몸에 가벼운 몸살기가 있어 근육통이 스멀스멀 뼈마디를 굳히고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봄 되면 제 고질병인 비염까지 있어서 더 그러겠지요.

어제 밤에 모임이 있어서 차 없는 이웃동네 후배 한명을 태우고 나가는데 ‘아, 암도 고치는 시상에 비염을 못 고치요?’ 우스개 소리를 들었습니다. 비염이 시작되는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동안은 술을 입에 댈 수가 없으므로 어제처럼 특히 굿을 치자고 모인 모임에서는 제가 다른 사람의 흥까지 떨어뜨리니까 말이지요. 그러나 난들 어찌합니까, 인제 이것도 시먹어서 너 해라 나 봐줄란다 신간 편하게 생각하고 그러나 또 한편 비염 덕분에 술 안 먹어서 좋기도 하다 속으로는 혼자 퍽이나 좋아하기도 합니다.

거 술이라는 것 말이지요. 사람이 몸이 어디 한군데 부실해져서 그대로 먹다가는 금방 밥숟갈 놓게 생겼을 때나 참아지는 것이지 사대육신이 번듯한 사람들은 여간한 의지로 끊어지기 어렵지요? 개인적인 면이 있는 흡연보다는 사회적 관계에 놓인 음주는 잘만하면 더 없이 좋은 것인데 - 음, 술 생각이 나는군요.

그저께는 날이 참 부시게 맑고 따뜻했어요. 며칠 동안 미세먼지다 중국발 황사다 해서 답답할 정도로 앞산이 부옇더니 그날은 정말 개안합디다. 예초기질을 하는데 옆 산의 6부 능선쯤에 있는 바위벼랑의 노간주나무 숲을 참매 한 마리가 공기 속을 자맥질하듯 나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올 봄 들어 집 주변에서 아침저녁으로 간간히 날카로운 금속성과 같은 매의 소리를 듣고 눈으로 확인하려 여러 번 애썼는데 아마 그놈인 듯 짐작이 가겠지요.

하여 예초기 벗어 던지고 방안에 있는 쌍안경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화단의 펀펀한 돌 위에 앉아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참매더군요. 부리와 발이 노랗고 등의 밝은 화색과 하얀 배의 깃털! 근데 저 녀석이 왜 저 바위등허리에서 오랫동안 자맥질 할까요? 자맥질뿐만이 아니라 바로 노간주나무 위에서 정지 비행도 하고 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멋지게 활강도 하는 까닭을 알 수 있어야지요. 가끔 한 번씩 밤에만 활동하는 수리부엉이란 놈이 대낮에도 집 앞 전봇대에 의뭉스럽게(!) 앉아 있는 것을 보거나 까마득 하늘 높은 곳에서 정지 비행하는 매는 보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짐작컨대 새끼들을 까서 먹이 물어다 키워서 그새 나는 연습을 시범 보이느라 저러는가? 그런 것이라면 매의 번식기는 다른 새들보다는 참 빠른 건데 알 수가 있어야지요. 궁금한 마음에 노간주나무 근처 바위를 눈으로 어림짐작 해 두고 한번 올라가 볼까 싶기도 했는데 저도 일 해야 하려니와 녀석들 방해하기 싫어서 그냥 관두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안식구에게 인터넷 들어가서 하번 검색해 달라고 해야겠다. 마음먹고요.

일은 바쁜데 어젯밤부터 또 비가 왔어요. 봄에 비가 잦으니 양파 심은 분들 걱정이 많은 모양입니다. 겨울날이 따뜻해서 웃자라는 것을 막아내느라 애들 썼는데 봄비까지 잦으니 양파의 우죽이 한창커서 도복기 직전의 그것처럼 온 밭이 새카맣답니다. 그러니 일주일이 멀다하고 약을 하느라 죽을 지경이라네요. 이곳은 농협수매용을 많이 재배하는데 어찌나 농협에서 병충해 방제하라고 닦달(!) 하는지 그도 성가실 정도랍니다. 저는 이른 봄부터 주꾸미병이란 것이 온 밭에 퍼져서 비닐을 걷고 갈아 치워 버리려다가 놔두고 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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