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인지도 올리면 원제공급 중단·자사제품 출시

▲ 경농 데시스(왼쪽)와 바이엘 데시스
수십년간 돈과 시간, 인력을 투자해 어렵게 키워 놓은 상품 브랜드를 하루아침에 빼앗긴다면 심정이 어떨까. 다국적 농약업체로부터 이런 일을 당했다는 국내 농약업체의 주장이 제기됐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다수의 농약원제를 개발ㆍ공급하고 있는 다국적 농약업체가 원제를 공급받는 국내 농약업체에게 도를 지나친 ‘갑질’ 횡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 다국적 농약업체의 ‘갑질’ 논란

농약업계의 갑질 논란은 원예용 살충제로 잘 알려진 ‘데시스(Decis)’를 두고 불거졌다. 국내 농약업체인 경농은 다국적 농약업체이자 원제사인 바이엘크롭사이언스(이하 바이엘)와 지난 1980년 7월 1일 데시스 원제에 대한 독점 공급 및 상표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계약은 자동 연장돼 36년 동안 경농이 독점으로 데시스 유제를 판매해왔다.

문제의 발단은 바이엘이 데시스 원제 독점 판매 계약 해지를 지난해 8월 경농에 통보하면서부터다. 바이엘은 2016년 이후로 재고품을 판매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데시스 상표사용을 중지할 것을 통보했다.
경농 관계자에 따르면, 37년 동안 경농은 데시스의 판매 활성화를 위해 홍보, 관리를 하며 투자비와 인건비등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데시스의 브랜드 가치를 확대해왔다. 그동안 광고, 마케팅 등에 쓰인 비용만 어림잡아도 수십억 원에 달한다.

경농 관계자는 “아무런 협의 없이 바이엘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종료를 통보했다”며 “공들여 쌓은 데시스 브랜드 가치를 하루아침에 빼앗기게 됐다”고 계약종료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바이엘은 회신 발송을 통해 “계약해지를 진행할 것”을 다시 한 번 명백히 밝히고,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는 등 적합한 절차를 따랐기에 문제될 것이 없으며, 경농은 36년간 독점계약하며 충분히 수익을 얻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경농 주장에 맞섰다.

◇ 반복되는 악습에 국내 업체는 냉가슴

그러나 경농은 계약만료 유예기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경농 관계자는 “일상용품이면 1년이 길수도 있지만, 농약판매에 있어 1년은 짧은 기간”이라며 “농약사용 시기가 봄에 집중되기 때문에 1년 유예기간 중 데시스를 팔 수 있는 기간은 4~6월뿐”이라고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바이엘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또한 “경농의 독점계약이 오는 7월 만료되는데, 바이엘이 올해 초 데시스 유제를 자사 브랜드로 판매하기 시작했다”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도 억울하지만, 바이엘이 통보한 계약 만료 날짜 전에 바이엘에서 제품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는 것은 계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9년도부터 경농에서 상표권을 사용한 바스타 액제도 2002년 바이엘이 돌연 원료공급 중단과 상표사용권 중지를 한 뒤 현재 바이엘이 동일한 상표명으로 판매하고 있다.

또 한국삼공도 1996년 리젠트 입제를 등록한 이후 2000년대 초반 바이엘이 원료공급을 중단했으며 역시 현재 바이엘의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지난 1993년 동부팜한농이 등록한 코니와 1995년 실바코 수화제, 1981년 안트라콜 수화제도 마찬가지로 ‘갑질’의 대상이 됐다.
특히 이들 제품 모두 상표권이 원제사에 있어 이름까지 동일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경농 관계자는 “우리 자체 상표를 사용하고 싶어도 원제사의 암묵적인 힘에 의해 그러지 못한다”며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차후 신물질 개발 시 다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할까봐 횡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에 경농은 강경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관행이라는 명목 아래 악습 되던 부당한 요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경농의 입장이다.
경농은 “다국적 농약업체들의 부당한 처사를 더 이상 참을 없다”며 “법적대응을 통해 이러한 부당함을 법으로 심판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국내산 원제 개발 시급

이처럼 농약 원제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현재 국내 농약업체가 원제 공급을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그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국내농약업체에서 원제를 개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나 소자본을 보유한 국내 농약업체에서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국내 농약업계는 토로한다.
국내 농약업체 한 관계자는 “국내 농약업계가 원제를 개발해야 하는데,  자성해야 할 것은그 능력이 다국적 농약업체에 비해 못 미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농 관계자도 “경농을 비롯해 수많은 토종기업들이 원제 개발실험을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막대한 비용과 인력으로 광범위하게 개발에 투자하는 다국적 농약업체에 비해서는 실적이 미미한 상태”라고 전했다.

유럽작물보호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농약시장을 목표로 1개의 화학 합성농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10년간 약 2,5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고 신제품 개발 성공률도 1/35,000로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농약업체도 원제 개발에 일정부분 투자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농촌진흥청 국정감사에서도 박민수 국회의원은 원제 국산화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로 “시간이 흐를수록 원제 1톤당 수입가격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성공률이 낮으며 많은 자본이 투입된다는 근시안적 관점보다 장래를 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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