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이곳은 산골짜기라 늦은 봄까지도 가끔 폭설이 내리곤 합니다. 이러니 아래동네는 봄이라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니지만 이곳은 패딩점퍼를 입어야 되니 난방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들 위에 기름보일러 배관을 한 탓에 구들에 불이 들지 않아도 수리는 엄두를 못 냅니다. 부탄가스난로는 방안 온도가 15도 아래로 내려갈 때나 잠깐 때는 용도지 장시간 때기는 어렵습니다. 이러니 부엌에 설치한 화목난로를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2시간 이상 피워야 그 열기로 방안이 18도 정도 유지가 됩니다. 벌써 네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땔감 구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작년에는 건너 할머니 댁 막내아들이 수고해준 덕에 무사히 겨울을 났지만 올해는 땔감 구하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겨울 내내 하루가 멀다 하고 인근 산기슭을 뒤져보지만 썩은 등걸 하나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트럭이 있다면 땔감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망상해수욕장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산림조합중앙회 목재유통센터에서 목재가공 시 나오는 피죽이 1톤 트럭 한 대 분량에 8만 원이니 이거만 있어도 땔감 걱정은 없을 겁니다. 문제는 겨울 한 철 땔감을 나르기 위해 중고든 신차든 트럭을 소유한다는 게 경제논리에 맞질 않는다는 데 있는 거지요.

용달화물차라도 빌려 실어오고 싶지만 화물차도 피죽 나르기는 사양한다니 별로 대책이 없는 셈입니다. 사실 화목을 실으면 적재함이 긁히거나 차가 주저앉을 염려가 있다고 꺼린다니 천상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인근 산기슭을 돌아다니며 삭정이를 주워 연명하다가 도로와 단절된 옆 산에나 한번 가보자고 개울을 건너 겨우 겨우 올랐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간벌로 베어놓은 소나무 등걸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무리 땔감이 많더라도 집까지 옮길 방법이 없다면 널린 소나무 등걸도 그림에 떡일 뿐입니다.

북쪽 밭 끝은 높이가 6미터 정도 언덕에 45도 정도 경사진 가파른 골짜기와 접해 있어 오르내릴 엄두를 못 내던 곳입니다. 옆 산은 이곳과 접해 있는지라 어쨌든 등걸들을 밧줄로 묶어 이곳까지 끌고 내려오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 낸 방법은 언덕 위 나무에 밧줄을 감고 아래쪽 등걸을 묶어 위에서 사람이 끌어 올리는 거 외는 다른 도리가 없어 집사람까지 동원해야만 했지요.

너무 큰 등걸은 다시 아래에서 적당한 크기로 절단해 끌어올리자니 위에서 집사람이 당기고 밑에서 제가 밀어 올리더라도 그게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워낙 경사가 심하고 손을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미끄러지기도 수차례, 어쨌든 며칠 동안은 땔감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끌어올리기에는 성공했습니다만 그만 집사람은 무리한 탓인지 끙끙 앓을 정도가 되고 말았으니 이것도 보통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의 선택인지라 혼자서 경사면을 힘겹게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몇 개의 등걸을 더 끌어올려 마당에 쌓아놓으니 그만 부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도시에서는 꿈에서조차 생각도 못하던 일들이 시골에서는 중요한 일이 되고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전기톱으로 등걸들을 난로크기에 맞춰 절단하고 다시 도끼로 패다보면 부엌난로에서 탁탁 장작 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 집사람이 좋아하는 군고구마도 같이 익어갈 겁니다. 난로 위 주전자가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하고 잘 익은 고구마를 꺼내면 그제야 겨울밤을 평온하게 맞이하게 됩니다.

다시 만날 새로운 겨울에는 땔감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옆 산에 널려 있는 등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내년 겨울도 잘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혹시나 누군가 그 등걸들을 집어가 버린다 할지라도 뭐 어떻습니까. 또 다른 해결 방안이 나올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겨울이 이렇게 지나고 다시 봄이 옵니다. 들판에 망초가 고개를 들면 농부의 하루는 허리 펼 짬도 없이 바빠지겠지만 그래도 봄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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