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얼어붙어 외부로 노출시킨 수도관공사로 겨우 연결된 수도가 밤새 충분히 물을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얼어붙어 버린 겁니다. 땅 밑과 땅위의 온도차가 심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밤새 내린 10여 센티의 눈이 관로를 더 냉각시켜 일이 이렇게 꼬여버린 겁니다. 참으로 민망한 노릇입니다. 몇 가구 되지도 않은 골짜기에 폐교를 이용해 커피 체험장을 운영하는 이와 저의 집만 또 얼어붙었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개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경비가 만만치 않은지라 또다시 수도사업소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 다시 해빙기를 가져와 하루 종일 관로를 녹여준 덕분에 세탁기를 돌릴 수 있었으니 이 어찌 고마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집사람이 서울 볼 일을 마치고 귀가했습니다. 작년부터 틈만 나면 자연농법을 하는 이들이 올린 여러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고는 우리도 올해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자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사실 뭐가 옳은지 경험이 일천한 저로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어쨌든 손이 덜 간다는데 굳이 싫다고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 일단 시도는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작년에 수확한 토종고추(수비초)씨앗을 포트에서 발아시키자는 계획입니다.
사실 비닐하우스도 없는 상황에서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맞추려면 방안에 들여놓고 돌봐야 되니 이게 또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론 그냥 심을 때 돼서 장에 나가 모종을 사오면 제일 간단한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집사람 생각입니다. 고추는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고 병충해도 많아 노력에 비해 대가가 적은 작물 중 대표 격입니다.
첫해 많은 양을 심었다 하도 고생을 심하게 해 그 다음해에는 아예 심지를 않았더니 외부에서 사먹어야 되는 불편이 또한 만만치 않아 작년에는 우리 먹을 만큼만 심고 말았습니다.
농약 안치고 고추농사 못 짓는다는 편견은 첫해 깼지만 토양이 오염되면 대책이 없는 건지 수확기에 탄저가 와 건진 게 별로였던 터라 과연 자연농법으로 고추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 작년에도 토종 고추는 포트에서 모종을 냈지만 3월에 시작했던 터라 아주심기가 늦어져 더 병충해를 이기지 못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올해는 2월부터 모종내기를 시도하자는 게 집사람의 계획입니다.
모종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밭을 가는 일입니다. 자연농법의 첫 번째는 땅을 갈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경운기든 트랙터든 땅을 갈아엎음으로서 미생물의 서식환경을 망가뜨리고 지렁이 따위들을 죽게 만들어 오히려 땅을 망친다는 거지요. 공장에서 생산되는 퇴비도 가급적 쓰지 않아야 된다지만 그래서야 어디 수확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김장배추도 사 먹을 만큼 농사를 못 짓는 어설픈 농사꾼이 어떻게 해야 할는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제 3월이면 감자 파종을 시작으로 한해 농사가 시작됩니다.
자연농법의 시작은 감자를 심을 때 비닐멀칭도 하지 않고 땅도 갈지 않은 상태에서 구멍을 파고 씨감자를 심는 겁니다. 사실 작년에 수없이 올라온 잡초들을 그냥 베기만 하고 걷어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게 겨울 내 썩어서 영양분을 제공하긴 하겠지만 비료나 퇴비만큼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아 작년에 배정받아 아직 사용하지 않은 계분을 사용하긴 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자연농법이 좋다손 치더라도 뭔가 영양분을 제공하지 않아서야 작물이 제대로 자랄 턱이 없을 거라는 게 제 주장이지만, 집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저 자연에 맡기고 사람 손길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진정한 자연농법이라는 거지요. 어찌됐건 올 농사는 집사람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이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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