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지 않던 일이 기어이 벌어지고 말았군요.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 구단을 연패시킨 것 말입니다. 1997년도이던가요. 아이비엠의 슈퍼컴퓨터 딥불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르프를 이길 때에 이미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상들은 했다지만 컴퓨터 쪽에 전혀 소경이나 다름없는 저 같은 사람은 정말 이번 일을 두고는 결론부터 말하면 기분이 언짢고 더럽습니다.

장기는 겨우 멱을 알지만 바둑은 돌 네 개 놓고 하나 따는 호구밖에 몰라도 저는 이번 대국에 누구 못지않게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왜냐고요? 바둑은 가로 세로 19줄의 반상위에서 둘 수 있는 수가 10의 360제승이라던가요. 달리 말해 이 우주를 가득 채운 원자의 수만큼 많다는데 하루에도 수만 번의 대국을 펼치고 수만 개의 기보를 외우고 있다는 초유의 존재에 맞서는 상대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인간이 가진 직관과 통찰은 기계가 가진 연산능력이나 기억을 과연 무력화 시킬 것이냐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세기적인 뉴스가 전달되던 때부터 저는 꼬박 꼬박 대국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여간해서는 이러저러한 대결이나 경기를 즐기지 않는 제가 그날은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결과가 나오는 저녁뉴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TV를 켜는 순간 어이없는 순간을 맛봐야 했어요. 너무 어이없어서 그의 말대로 저건 ‘인간이기에 한 실수’ 때문이야 라고 고쳐 생각하고 두 번째 대국을 기다렸지요. 역시 마찬가지더군요. 이제 내리 세 번을 인간이 이기지 않으면 지는 겁니다. 대국 중에 그가 보이는 여러 가지 표정과 불안한 동작들이 고스란히 저에게 전달되는 느낌은 참으로 당황스러운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면 인공지능이 지성을 넘어 어떤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면 직관과 통찰이 필요한 예술의 영역, 즉 시를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겁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소위 시를 쓴다는 제가 기분 더럽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단순하게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데서 더 나아가 예술의 분야까지 담당한다면 저장된 정보를 데이터화하고 추론해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던 불후의 명시 명곡 명화를 만들어 내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한 가지 더! 인간의 사랑까지도 최적화해서 결정해주지 않을까요? 지나친 상상인지는 모릅니다만 왠지 몇 년 후엔 꼭 이럴 것만 같습니다.

울적해집니다. 산골 구석에 엎디어 있는 한 인간이, 한 인간의 신경망이 풀잎에 맺힌 이슬이 굴러 떨어지듯 반응해서 뜨거운 햇볕에 바싹 말라버리는 이 느낌, 무엇으로 대신하고 위로 받을 마음도 논리도 없어서 더 지랄 같습니다. 그런 기분으로 바다에 나갔었습니다. 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라고 달력에 표시 된걸 봤는데 정작 그 날은 놓치고 그 이튿날입니다.

사람들이 첫날 다 주어가 버려서 별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해삼 몇 마리 성게 조금 개굴이라고 하는 굴 몇 개 주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갯것 하는 즐거움도 잠시, 생각은 다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에 붙잡혔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의학 분야 같은 영역에 획기적인 성과를 내서 질병의 정복도 가능하리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데 저는 스티븐 호킹이 경고한 ‘여기서 멈춰야한다’는 그 말에 그만 왈칵 무서운 전율을 느꼈어요. 인간과 똑같거나 더 우등한 기계인간, 인간이라는 정의가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만 해도 무섭지 않습니까?

공상과학소설 임직한 일이 이제 실제로 일어난다고 하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이제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혹은 네가 기계인간이거나 이고 싶다면? 나의 아들딸과 아내가  기계라면? 갑자기 밥맛이 없어져서 세 번째 대국이 일어난 그 이튿날 아침엔 꼭 세 술을 뜨고 수저를 놔버렸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아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죠. 풀이 산더미 같아진 양파 밭을 맬 맘도 없어지고 감자 종자 잘라 놓은 지가 며칠 째인데도 그걸 땅에 묻을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마음에 병이 생겼습니다.

기계인간이 생기면 인간이 인간일수 있는 경계나 조건이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누가  대답을 해 주십시오 멀리 사시는 셋째 형님이 형수님과 함께 친구 분들 모시고 선운사 왔다가 돌아가시는 길에 들렸더군요. 마침 갯것 해온 것을 손도 안대고 그대로 놔둔 상태라 성게는 찌고 굴은 까고 해삼은 손질해서 토방에다 벌려놓고 앉고 선채로 그 자리서 드시게 했습니다. 그분들 말마따나 바다를 통째로 드린 거죠. 소주잔을 부딪치며 펄떡이는 안주 감을 입에 넣을 때마다 쏟아내는 탄성 또 탄성! 그러나 저는 또 순간 앞으로는 이것이 부러지어내는 가상의 현실이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하는 몹쓸 상상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나 사랑하는 마음이 기계인간의 세상이 온다면 미리 프로그래밍 되지 말라는 법 있을까요? 지금도 무인 자동차가 등장했는데 돌아가신다고 차에 올라 탄 형님 일행 분들에게 운전 조심해 가시라는 말도 도착하거든 전화하마시던 말도 앞으로 우리는 몇 번이나 더 나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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