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몸부림 치고 피한다고 해봤자 피할 수 없는 게 나이입니다. 이곳으로 이주한 지도 벌써 만 3년이 넘었으니 세월이 그만큼 흐르기도 했지만 해가 갈수록 힘이 드는 건 당연히 나이 탓이련만 그래도 부정하고 싶은 건 또 다른 젊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백세시대의 도래로 나라에서도 법정 노인으로 인정하는 나이를 만 70세로 올릴 계획이라는 보도도 나오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현행 제도가 존속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쨌든 올 12월 한국에서 노인으로 인정받는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자격을 갖췄고 수도권 지하철도 무임승차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지공거사(地空居士·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65세 이상의 노인이라는 뜻의 은어)가 된 겁니다. 하기야 여기 강원도에서야 지하철이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는 패스지만 그래도 서울 딸네들한테 가고 가끔 친구들도 만나 소주라도 한잔 기울이려면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니 무임승차 카드를 만들기는 해야겠기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단위농협을 찾았습니다.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면 끝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군요. 선불교통카드 기능이 탑재된 카드라 연계된 계좌가 있어야 된다는 설명에 새로 계좌까지 개설하고서야 지공거사용 카드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거울 속 얼굴이 말합니다. 이젠 어쩔 도리 없는 노인반열에 올랐으니 나이에 걸맞게 행동해야 되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건강하게 천수를 누린다는 건 아무에게나 누려지는 복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만으로 65세, 앞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앞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계산해 보지만 사실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한집 건너 암환자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살아가는 환경은 나빠지고 이제는 시골이라고 맑은 공기, 좋은 자연을 만끽하기도 힘든 게 현실입니다. 중국 발 스모그경보가 발령되면 이곳 강원도 산골짜기도 희뿌연 연무에 쌓이고 맙니다. 그저 대도시보다는 약간 좋은 정도로 만족해야 된다면 시골살이의 장점은 점점 더 줄어들고 야외활동도 마음 놓고 하기 어려워질게 뻔하니 이게 기대수명에 대한 변수가 되는 겁니다.

가급적 기계사용을 자제하고 몸을 움직여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도 세월이 흐르면서 괜한 짓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집사람은 여전히 밭도 갈지 말고 풀도 뽑지 말고 그저 베어내 그 자리에 놓아두면 자연스럽게 썩어 땅으로 돌아가는 자연농법을 주장하면서 내년에는 꼭 그리하자고 말하지만, 어디 그게 우리 뜻대로 되겠습니까.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고 풀도 뽑지 않으면 풀씨가 자기네 밭으로 날아온다며 걱정하는 이웃이 있긴 하지만, 그거야 그냥 하는 소리려니 넘어가면 그만이긴 합니다. 문제는 적어도 지자체에서 공급받은 친환경 퇴비도 넣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 과연 결실이나 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쳐 낼 수 있느냐는 겁니다. 더욱이 새싹이 돋고 어린 모종이 힘을 길러 풀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주려면 부지런히 풀을 베어야 할 텐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풀이나 새싹이나 처음에는 그게 그것 같은 지라 뽑기도 뭐하고 놔두기도 뭐해서 망설이다 보면 나중에야 풀이 득세한 걸 알아채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하기야 내년 일을 미리 앞당겨 걱정하는 일도 부질없는 노릇입니다. 인생 살아가는데 걱정할 일이 너무 많은데 닥치지도 않은 일을 지레 짐작으로 걱정하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은 태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쉽게 정리되는 게 아닌 걸 알고 있으니 또 쓸데없는 걱정을 끌어안게 됩니다.

지공거사가 되니 지나온 날들이 꿈결 같습니다. 과학자들도 나이가 들면 세월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증명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리 마음은 청춘이라고 억지를 부려도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제게 다가온 세월을 두 팔 벌려 맞이하면서 그 세월에 맞는 생각을 하는 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일이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일 겁니다.

겨울이 실종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칼날 같은 바람의 끝에는 추위가 살을 애입니다. 이제 부엌난로에 불을 지필 때가 됐습니다. 지게를 지고 산에서 삭정이를 주어 나를 때도 됐다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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