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 속에 갇혔습니다. 겨울에 한번은 기어이 오고야 마는 이 폭설이 며칠 전부터 간간이 조짐을 보이더니 드디어 어제 그제부터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해서 이제는 모든 것이 형적 없이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온이 영하 7~8도로 떨어져서 온 눈은 녹지 않은데다가 그치지 않고 며칠을 줄곧 내리기만 하니 예보로는 30cm가 온다 했어도 40cm도 더 내려 쌓였습니다.

바람이 몰아치니 울안이 온통 눈 천지입니다. 비를 들고 자꾸 쓸어내도 마루에는 금세 눈이 쌓이고 토방이고 어디고 가릴 것 없이 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지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집 주변과 변소 길과 샘까지 눈길을 겨우 틔어 놓았는데 그마져도 아침 해먹고 나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도로 묻혀버리는군요. 길을 나선 차들이 저희 집 앞 도로에서 수십 대가  뒤엉켜 몇 시간째 옴짝달싹 못해서 견인차와 구급차가 오고 난리입니다. 이러면 그분들에겐 재난의 수준일 겁니다.

저도 오늘 내일 중요한 일이 진행되는 중이라 외출을 해야 되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사흘 뒤로 연기해 버리고 집에 들어 앉아 있습니다. 이런 때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겠지요. 쌀 있고 나무 있으니 들어 앉아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으리오. 아무리 단순치 않은 세상이라도 이와 같이 눈이 많이 오는 속에서는 복잡한 것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생각됩니다. 아침 먹고 커피 마시고 TV 켜서 잠깐 구다 보다가 그게 시답잖으면 신문이나 책을 펴들면 그만입니다.

대처나 요즈음 며칠 밖으로 도느라 여러 날치 신문이 쌓여서 구문이 되었습니다. 뉴스야 뉴스가 아닌 지난 이야기가 되겠지만 신문은 책과는 또 달리 이것저것 취할게 많습니다. 밀린 신문을 옆에 날짜순으로 쌓아 놓고 그걸 차례차례 봐 넘기며 치우는 것도 무언가가 정리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노라니 낮에도 적막하기만 해서 귀를 기울이면 사르륵 사륵 눈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쌓인 눈이 세상의 온갖 소리들을 집어 삼킨 듯 여간해서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눈 오는 소리만 들립니다.

한밤중에는 이 소리가 듣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크게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간간히 처마 안과 부엌으로 작은 새들이 포로롱 거리며 날아와 부리로 무엇인가를 톡톡톡 쪼는 소리도 들립니다. 상대적으로 큰 까치나 비둘기들은 그래도 먹이를 찾기가 조금은 수월하겠는데 저 작은 새들은 풀씨 따위가 먹이가 될 것이므로 이런 날은 찾아내기 어렵겠지요. 올해는 나락방아를 찧으면서 여러 웃지 못 할 일을 겪는 통에 미쳐 싸라기와 속겨는 챙기지 못해서 녀석들에게 줄 먹이가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 마음이 잠깐 서울에 있는 딸애에게로 옮겨가서 전화를 했습니다. 서울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8도라지요. 번듯한 직장이 없이 일주일에 나흘 시급을 뛰는 딸이 요 며칠은 나가지 않는 날이라 안심은 됩니다만 보일러는 잘 돌고 있는지 끼니에 무얼 해 먹기는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비교적 아랫녘이라 아무리 추워도 영하 10도 아래로는 내려가는 일이 없어 18도, 거기다 체감온도 몇 도니 하는 것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다행스레 이불속에서 아직 잠에 취한 딸의 목소리를 확인하니 안심입니다. 부모라는 것이 늘 그런 것이겠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에 마음이 쓰입니다. 벗어나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저는 말로는 애들에게 스무 살이 넘으면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버릇처럼 뇌이지만 오히려 제가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리나라 젊은이 대다수가 겪는 직장과 결혼문제를 놓고 부모가 모른 채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저희같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은 평생을 부모자식 간에 그런 문제로 엮여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처럼 밖에는 추운 세상인데 이글을 쓰는 제 책상의 물병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이번 추위가 오기 전까지는 올 겨울 내 따뜻하기만 해서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화단에는 히어리가 꼭 봄처럼 온 가지에 피었더랬습니다. 그걸 보고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매화나무를 가서 보았더니 봉오리들이 금방이라도 필 것처럼 부풀었습니다.

꼭 달포정도 빠르다 생각되었지요. 그래 한 가지를 잘라다가 물병에 꽂아 두었더니 삼사일 전부터 한 송이씩 피기 시작하여 지금은 책상위에 매운 향기를 뿜게 시리 여러 송이가 피었습니다. 언제 맡아도 좋습니다. 가까이서거나 멀리서거나 어쩌면 이리도 작은 꽃에서 높고 고매한 것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연제부턴가 난 몇 분과 매화. 그리고 담 밑의 국화와 뒤란의 대숲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때로 좋은 위안이 됩니다.

옛 선인을 흉내 내서가 아니라 화단의 다른 것들과는 달리 이것들은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제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며 저를 바라보는 것 같아 무언의 교훈을 얻습니다. 특히 새벽에 깨어 일어나 있을 때 책상위의 이것은 좋습니다. 저가 나를 보고 내가 저를 보는 이 고요함이 눈 속에서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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