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군침 흘리는 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꿩 이야긴데요. 늦게 심은 것 같지도 않은데 지난 여름에 심었던 콩이 늦가을이 돼도 익지 않고 푸른데다 벌레 먹은 것도 너무 많아서 예초기로 그냥 쳐버렸다고 말씀드렸던 그 콩밭에, 글쎄 아침저녁으로 꿩이란 놈들이 떼거리로 몰려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놈들을 어찌어찌 한 마리만 붙들면 하루는 참 맛나게 밥을 먹을 것 같은데 붙들 방법이 없어서요.

처음에는 이놈들이 포기사이에 숨어서 사람이 가도 달아나지 않다가 바로 코앞에서 날아올라 놀라게 하더니 콩대를 쳐버리자 한동안 오지 않더군요.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한두 마리씩 은폐물 없는 콩밭에 몸을 납작 엎드린 채 날아오고 이제는 마릿수가 늘어 아침저녁으로 대여섯 마리씩 와서 겁도 내지 않고 식사를 하고 간답니다. 그동안 땅에 흩어진 콩을 얼마나 먹었는지 등허리에 기름기가 자르르 돌아서 수꿩은 참 볼만합니다. 꿩고기 좋아하는 제 아내는 한 마리 잡아보라고 은근히 조르는군요.

일찍 잠깬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언젠가 새벽에 차 몰고 어디를 달려가다가 아스팔트 도로에서 죽은 꿩 한 마리를 발견했답니다. 달리는 차에 부딪혀 죽은 듯 머리에 약간의 피만 흘렸기에 주어다가 옛날 솜씨를 내서 참새 다루듯 털가죽을 벗겨내고 살과 뼈를 저며서 요리하기 좋게 아내에게 주며 요리법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무 삐져 넣고 매운 고춧가루 나우 넣고 마늘 다짐과 집 간장으로 주물러 놨다가 탕을 끓이면, 아이고 입에 침 넘어가서 그 약간 새큼하면서 풀냄새 하나 없이 오묘한, 입에 착착 안기는 맛을 어찌 설명한당가요.

제 안식구가 한번 맛을 본 후로는 다른 것 노래는 안하는데 꿩탕 노래는 합니다그려. 또 언젠가는 누가 진돗개 한 마리를 주어서 기왕에 기르던 똥개 한 마리와 함께 키우게 되었는데요. 중개나 된 이것들 두 마리가 봄에 뒷산을 헤집고 다니더니 놀랍게도 까투리 한 마리를 의기양양하게 물어다가 토방 돌에 보란 듯이 놔두고는 저를 빤히 쳐다보지 않겠습니까? 사냥개 세 마리면 호랑이도 잡는다더니 그 말이 사실임이 대번 느껴지며, 아하! 이놈들 덕에 산짐승 고기께나 먹게 생겼다고 속으로 뿌듯한 기대를 가졌습니다. 물론 꿩은 볶아서 먹었고요. 짐작컨대 둥지에서 알을 품다 변을 당했던 듯 가슴 쪽의 털이 빠진 꿩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놈들이 옆집 형님네 집에 가서 기르던 거위와 닭들을 취미삼아 사냥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할 수 없이 똥개를 개장수 줘버리고 진돗개는 묶이는 신세가 됐는데 초식동물 아닌 이것들을 묶어두고 키우기란 참 많은 인내심이 필요해서, 나중에는 없애 버렸어요. 꿩 이야기 조금 더 할 랍니다. 바로 작년 봄이었어요. 저희 집은 왼쪽에 흐르는 냇가를 두고 오른쪽은 저희 집, 왼쪽은 형님 집 땅인데요. 저희 집 밭둑에는 그러니까 냇가 바로 옆의 경사진 밭둑에는 단감나무 두 그루가 서있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장 서방 우는 소리로 요란한데 제가 가만 눈여겨보니 장 꿩들도 자기 구역이 있고 특히 번식기가 되면 구역다툼이 심해서 쌈닭처럼 쌈이 일어나더란 말입니다.

어떻게 하는가 하면요, 왼쪽 장 서방이 까드득 까드득 꿩꿩 - 하고 목이 터지게 한껏 호령을 하면 냇가 오른쪽 장 서방도 질세라 까드득 까드득 꿩꿩- 하고 더 크게 소릴 지르는 겁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위치를 이동해서 두 놈이 서로 엉키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저의 단감나무 아래가 오케이 목장의 결투장이 된 줄 나같이 눈 밝은 사람 아니면 어찌 알았겠습니까? 두 놈이 바로 그 아래에서 발톱을 치켜들고 싸우는 모습을 저는 처음 봤습니다.

저도 가만있을 수는 없겠지요? 마침한 돌멩이 서너 개를 손에 쥐고 살금살금 그들의 결투장으로 다가갔죠. 이놈들은 깃털이 뽑힐 정도로 (영역다툼이라기 보다는 암컷 다툼을) 했는데 제가 쾌재를 부르며 사정거리 안까지 다가가서 조준 발사! 몸을 일으켜 세우며 돌 한발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돌은 빗나가고 제 쪽을 바라보며 싸우던 형님 댁 꿩은 저를 보자마자 사태를 파악하고 꽁지를 빼고 달아났습니다. 저를 등지며 싸워서 저를 보지 못한 우리 쪽 꿩은 상대방 꿩이 전의를 잃고 달아난 줄 알았는지 한껏 기세가 올라 목청을 뽐내며 까드득 까드득 꿩꿩, 산이 떠나가라 외치더군요.

그놈을 향한 제 두 번째 돌도 빗나가기야 했지만 우리 쪽 장 서방의 그 허세와 정세 오판이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은 저를 닮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껄껄 웃음이 나옵니다. 그나저나 저 놈들은 어떻게 해야 한 마리 붙들지요? 꿩이나 까치가 유해조수로 지정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이곳은 아직 순번으로 돌아오는 수렵구역도 아니거니와 총도 없고 활도 없군요. 총은 그렇다 쳐도 활 한 자루 있으면 비록 못 잡아도 한대 날려보면, 그런 것도 조금 시원하지 않을 런지요.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그런 대목이 있어요.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롬 휘적시던 곳” 구지뽕 활에 쥐똥나무 살 수수깡 살 날리던 엊그제 우리들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던지 이 세상을 한껏 조롱한다던지 공중으로 화살을 날려 보고픈 12월의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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