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회지를 떠나 시골살이를 하려는 동기는 대부분 비슷비슷할 겁니다. 은퇴했거나 혹은 질병 등의 이유로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마음의 평온을 가지며 여생을 보내려는 욕구가 크기 때문이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그중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농촌생활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작은 텃밭이나 가꾸면서 자연을 즐기는 여유로운 삶을 기대하게 됩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건 그저 빠듯하게 생활하는 이들이건 새로운 환경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게 마련인데 이때가 처음 생각대로 살아가기에 가장 어려울 때인 것 같습니다.

그림에나 나올 법한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유유자적 살 수 있는 이들도 그만 단조로운 생활에 지치거나, 경제 활동하던 습관이 발동되면 조바심에 발목을 잡힐 수가 있습니다. 더더욱 빠듯한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은 뭔가 소득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에 이런 위험성이 배가 되기 쉽습니다.

자기 손으로 채소든 과수든 가꿔 내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과 나누리라는 소박한 꿈은 어느덧 소득을 올려야 하는 상품으로 둔갑되고 그런 욕심이 삶을 헐떡거리게 만들고 맙니다.
초보농사꾼 시절이야 그저 싹이 틔고 자라는 모습만 봐도 신기하고 애틋해서 관행농업을 하는 이들이야 어떻게 농사를 짓든 내 나름대로 열심히 가꾸지만 이게 뜻대로 되질 않으니 문제가 되는 겁니다.

애당초 즐기겠다는 마음은 저 멀리 사라지고 그만 일상의 직업처럼 습관적 행동을 하거나 일에 치어 만사가 귀찮아 질 때가 점점 더 많아지니 이게 문제의 시작입니다. 해충들은 들끓고 뭔지 모를 병에 시들시들해지는 꼴을 보자니 참기가 힘들어집니다. 슬그머니 농약병을 집어 들어보기도 하고 화학비료포대에도 손이 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애써 참고 돌아서지만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 옴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농사일이란 게 때가 있는 법이라 그 때를 놓치면 뭐 하나 제대로 키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 주위를 돌아보면서 느긋하게 놀며 쉬며 즐길 수가 없는 구조가 돼 버리는 거지요. 남들 심을 때 심어야 되고 심고 나면 잡초 뽑아줘야 되고, 때론 밑거름에 추비까지 신경쓰다보면 결국 일에 치여 몸도 마음도 지치기가 십상입니다.

올해도 김장채소 심는 시기를 놓쳐 배추도 무도 수확하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작년에도 시기를 잘 못 맞춰 외부에서 김장거리를 구입했음에도 올해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르니 이게 초보농사꾼의 한계입니다. 시내에 외출하면서 아래동네 밭들 배추나 무가 워낙 실하게 잘 자란 걸 보면 괜히 마음이 급해져 신경이 날카로워 집니다. 그네들이야 화학비료 줬으니 당연히 크게 자란 걸 알면서도 왜 제때 신경 써서 제대로 기르지 못했는지 후회가 밀려옵니다.

스트레스라는 게 이래서 증폭됩니다. 사실 두 식구 먹는 김장이란 게 배추 10포기 내외면 충분해 유기농조합에서 구입하면 끝일 텐데 괜한 욕심이 집사람과 말다툼까지 이어지게 만듭니다. 그래도 어떻게 더 키워볼 요량으로 주전자에 조리까지 동원해 열심히 물을 줘 보지만 성장 시기를 놓친 배추와 무가 제대로 자랄 리가 만무합니다.
에이 모르겠다. 이대로 내버려 두고 나중에 겉절이라도 해먹으면 되지 마음먹으면 만사가 편해질 텐데 그게 쉽질 않습니다.

제때 끼니도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일에 매달려도 이렇게 수확이 형편없으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라는 자괴감으로 마음마저 불편해지게 되니 애당초 즐기겠다는 목표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스트레스를 피할 방법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겨울이 코앞에 왔습니다. 부엌난로 연통도 털어내 새로 설치하고 화목도 구해야 됩니다. 나무하기 위해 작년에 사뒀던 알루미늄지게도 헛간에서 꺼내 거미줄이며 먼지를 털어내야 될 성 싶습니다.
힘든 계절을 이겨나가려면 할 일이 참 많기도 합니다. 매년 겪으면서도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건 아직도 즐기려는 마음이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내년 봄에는 헐떡거리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지와 마주하길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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