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생활도 어언 4년차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늘 움직이는 곳이 집과 집에 붙어있는 밭인지라 주위에서 뭘 심고 가꾸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가 많지도 않았고 또 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이른 봄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저마다 조금씩이나마 땅콩을 심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땅콩은 저도 좋아하고 집사람도 좋아하는 식품이지만 심어서 먹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않았었습니다. 시골살이 재미가 어쨌든 뭔가를 길러 수확하는 기쁨이 제일이건만 막상 봄철이 되면 그저 감자, 콩, 고구마, 옥수수 등 어디서나 심고 가꾸는 작목만 습관적으로 심게 되니 이것도 사실 고쳐야 할 행동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여하튼 집사람과 땅콩을 심어보기로 작정하고 인터넷을 뒤져 땅콩재배에 대한 이런저런 사항들을 점검하고 장날 모종을 30포기 정도 구입해서 그나마 가장 사질토인 땅을 찾아 모종을 심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봄철 가뭄은 그 도가 심해져 전국이 난리니 심어놓은 모종들을 살리려는 눈물겨운 노력들이 TV를 통해 보도되면 그 안타까움이 뼛속까지 전해질 정도로 이곳도 상황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올 초 개통된 간이상수도가 없었다면 작물재배는 고사하고 사람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부족했으니 얼마나 가뭄이 심했는가는 미루어 짐작이 가리라 여겨집니다.

이 와중에 간이스프링클러를 구입해 밭을 종횡무진 끌고 다니며 겨우 목숨을 연명할 정도로 수도를 틀어 물을 공급해 주니 뭔들 제대로 자랄 수 있었겠습니까. 간이상수도라는 게 지하 140미터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거니 이게 또 언제 수량이 고갈될는지 알 수 없어 늘 불안한 마음으로 조금씩만 사용할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옥수수모종도, 고구마모종도 저마다 물을 달라며 노랗게 마르면서 아우성이니 땅콩모종은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생각날 때마다 주전자로 물을 부어준 덕에 아주 말라 죽지는 않더군요. 농사를 잘 짓는 제일 좋은 방법은 주위에 경험 많고 진취적인 멘토를 만나 여러모로 도움을 받는 건데 이곳은 그렇게 도움을 받을 사람도 마땅치 않으니 스스로 해결할 밖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땅콩재배는 비닐멀칭을 하고 자방병이 나올 무렵에 비닐을 찢어줘 자방병이 땅밑으로 들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에 비닐멀칭을 생략하고 심었더니 도통 이게 자라는 건지 죽은 건지 알 수가 없더군요. 근처 다른 이가 심어놓은 땅콩 밭을 가 비교를 해봐도 제가 심은 건 아직도 어린애 같으니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모양인데 도대체 알 도리가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시간이 가니 이놈들도 제법 자라 꽃을 피우기 시작해 잘하면 가을에 땅콩 맛을 보게 될 거라는 기대가 생기긴 했습니다.

워낙 가뭄이 심한 봄날을 억지로 이겨낸 옥수수도 때가 되니 열매를 맺긴 했지만, 이게 도대체 먹을 만한 게 별로 없어 주전자로, 간이스프링클러로 온갖 고생을 하면서 물을 부어 기른 보람도 없게 됐습니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놈은 골라 아이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소량씩 보내고 나니 우리 부부는 찌꺼기 옥수수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뭄이 한창일 때는 잡초도 가뭄을 타 신경을 안 써 좋았는데 이게 방심을 불러 결국 옥수수 수확 전 사이사이 고랑에 물을 주고 심었던 들깨모종들이 어느 날 잡초더미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옥수수 수확과 들깨모종에 신경 쓰느라 땅콩도 잡초더미에 가려진 것을 한참이나 지난 후에 발견하게 됐으니 그저 한심한 노릇입니다. 그래도 발견하긴 했으니 만사 제쳐놓고 한나절에 걸쳐 주위 잡초들을 낫으로 베고, 손으로 뽑아내니 그나마 밭 모양새가 갖춰져 보였습니다.

언제쯤 땅콩을 파볼까 날짜를 재보던 어느 날, 땅콩 껍질이 주위에 수북이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부랴부랴 땅콩을 파보니 알맹이는 모조리 뭔가가 파먹고 빈 껍질들만 나뒹굴고 있어 그저 헛헛한 웃음밖에 나오질 않더군요. 아 불쌍한 초보농사꾼, 짐승들만 좋은 일 시켜주고 헛물만 켜니 이래저래 농사는 어렵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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