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누적·소비부진·역계절진폭 등…결정적 인하요인 ‘정책 부재’

 
      쌀 수입, 비축미 축소, 우선지급금 명시 등 가격하락도 ‘정부 탓’
      지역조합별 수매가 인하 확산…‘고개 숙인’ 농촌 분위기



수확한 벼를 벌크로 싣고 미곡종합처리장(RPC)에 집결한다. 아직 농협에서는 수매가 결정 소식이 없다. 하지만 우선지급금을 지난해보다 20% 낮춰 준다는 둥, 3년 연속 풍작이라는 둥, 결과적으로 올해 수매가를 낮춰 잡아야할 것 같다는 농협직원의 섣부른 예측을 듣는다.

일선 벼수확 즈음의 농촌 얘기다. 이미 농업관련 연구기관에서는 올 수확기 쌀값이 지난해 가격보다 7.2~9.0% 하락한 수준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예측정보를 흘리고 있다. 수매가 결정을 앞둔 현지 농협들의 분위기를 가격 하락쪽으로 주도하고 있다. 맨 먼저 벼수매가를 결정해왔던 철원 동송농협에서도 3천200원 내린 6만2천800원(40kg들이 포대)에 올해 수매가를 매겼다. 전년보다 4.9% 떨어진 수준이다.

경기 안성과 용인지역 벼 수확 들녘을 돌아봤다. 10월21일 현재까지 안성 공도면, 양성면, 고삼면, 보개면, 용인 백암면과 원삼면 등의 지역에서는 절반이상의 벼 수확이 마친 상황으로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수매가에 대한 기대치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RPC 관계자들도 명확하게 수매가 결정과정이나 전망치를 내놓지는 않았으나, 가격 하락 쪽으로 비중을 놓는다.

“수매가 낮춘다는 소문 파다하다”

용인 원삼면 고당리에서 벼 수확하던 홍모씨는 “추청벼는 엊그제 끝났고, 지금 찹쌀 2천평을 수확하고 있는 중인데, 평년보다 한줄기에 볏알이 20개정도 더 늘어 평균 130여개 정도 잡힌다”면서 “농협이 (수매가 결정에)어찌 나올지 눈치보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안성 공도면 양기리에서 만난 50대 신모씨는 “매년 생산비는 오르는데, 임대농을 짓는 입장에서 답을 내기 어렵다”고 입을 연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고, 모든 걱정이나 책임이 농민 각자에게 돌아가니, 한탄만 낳올 뿐”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해와 똑같은 규모인데, 생산량이 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농민단체보다 농협의 눈치를 보고 있고, 우선지급금을 받으면 대부분 농민들이 뒷일을 걱정 안하는 편”이라고 체념섞인 얘기를 했다.

안성 양성면으로 국도를 타고 오르다 구장리 논배미에서 만난 농민은 “수매가를 낮춘다는 얘기가 벌써 쫙 퍼졌다”면서 “선급금(우선지급금)은 지난해와 비슷하게 지급될 것이라고 전해들었다. 헌데 공공비축미 수매도 줄었다고 하고, 수매물량이 어느정도 될지 내심 걱정”이라고 말했다.

보개면 가율리의 정씨라고 밝힌 농민은 “이쪽의 농협들은 나름 자구책을 잘 짜고 있는 편이지만, 정부 수매물량에 대해서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며 “또 이천 임금님표쌀이나 용인 백옥쌀 등이 자체 수매가를 낮춘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RPC 운영이 적자라는 얘기까지 보태면 대놓고 주장을 펼 곳도 없는 지경”이라고 전했다.      

용인 백암면 읍내에서 만난 진 모씨는 “이지역은 친환경 추청벼를 브랜드화해서 성공한 사례지만, 지난해 8만원대(40kg들이) 수매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아직 농민들과 협상이 진행된 것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여러 가지로 볼때 정부가 이미 수매가 인하를 주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시장가격을 낮추고 있다”

이미 신곡 수매가는 정부 주도로 낮춰 잡은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지난 21일 전북지역 농민단체들이 전북도청광장에서 쌀 수매를 보장해달라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농민들은 “현재 벼값은 평균 4만4천원대로 이를 쌀로 계산하면 80kg들이 한가며에 12만원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이는 정부의 밥쌀용 쌀 수입이 주된 요인이고, 가공용 수입쌀도 20% 할인해서 방출하고 있는 것도 영향이 크다”고 언급했다.

한 농민은 정부가 수매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농민은 “법 어디에도 8월 가격의 90%를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으로 집행하라는 조항은 없는데도, 정부는 그것을 기준으로 우선지급금을 정하고 있다”면서 “우선지급금을 먼저 정하는 것은 수매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뿐더러, 언뜻 정부가 의도적으로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민간연구단체 등의 쌀값 예측도 수매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경연의 경우 최근 2015년산 신곡 조생종 벼 가격과 쌀값은 전년대비 각각 8.7%, 6.9% 하락할 것으로 점쳐졌다고 밝혔다. 올해엔 비수확기의 쌀값이 전년 수확기보다 떨어지는 역계절진폭을 보이면서 신곡 가격하락으로 이어질 태세라는 분석이다. 민간연구기관인 GS&J인스티튜트에서도 연구보고를 통해 쌀값 추정 결과, 지난해 수확기보다 7.2~9.0% 하락해 15만2천~15만5천원(80kg들이) 범위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10월5일 신곡 가격이 전년 동기보다 8.1% 하락한 16만3천원이었으므로 이후의 가격도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각종 예측정보와 정부의 공공비축미 감축 발표, 이후의 대책 부재 등은 당연히 시장가격 하락과 수매가 하락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다.
보개면 가율리의 정모씨는 “아무런 대책이 없고, 무조건 풍년이라고 떠드는데 쌀값이 안떨어지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냐”며 “농협에서도 대부분의 쌀 정책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역농협 입장에서는 별도로 할 것이 미약하다고 변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용인지역 한 RPC 관계자는 “현재 농협은 곧바로 수매가를 결정해야겠다는 계획은 없는 상태이다. 일선 농민들과 최대한 마찰없이 수매문제를 끝내야 한다는 기본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서 “올해 우리 농협지역은 평년보다 생산량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RPC입장에서는 운영의 어려움이 상존하기 때문에, 하루빨리 정부의 추가대책이 나와주길 바랄뿐”이라고 말했다. 관계자의 언급을 되돌려 살펴보면, 수매가 인하는 불가피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대책이 없을 경우 수매물량도 조절 할 수 있다는 뜻의 우회적 표현으로 풀이됐다.

한국농촌지도자 이천연합회장을 맡으면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홍찬의 회장은 “지난해 수매가에서 추청은 3천원(6만4천원. 40kg) 고시히카리는 7천원(6만5천원)이나 가격을 낮췄다”면서 “생산자인 농민과의 논의가 전혀 없이 이같이 결정해서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의 대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농민들은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하고 분노하고만 있다”고 전했다. 홍 회장은 “이천쌀값의 수매가 결정은 전국 농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절망적인 일로,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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