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로 잔뼈가 굵은 이들이야 농지욕심이 끝이 없겠지만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이들에게는 어떤 크기의 농지가 적당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도회지에서 책상머리만 지키다 갑자기 육체노동자로의 변신을 도모하는 일이 곤충의 우화만큼이나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곳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만 3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을 계약하기로 결심할 때는 집터를 포함해 8백여 평의 밭이 그리 크게 보이지는 않았었습니다. 첫해는 멋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일하다보니 할 만하다고 느꼈는데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힘들고 밭은 더 커 보이기만 하니 이게 나이 탓일까요?

40대나 50대 나이라면 생업에 대한 부담감이 클 테니 당연히 경제규모가 될 만한 농지가 필요할 겁니다. 사실 농사져 먹고 살만하려면 종목이 뭔가에 달라지긴 하겠지만 상당한 규모의 농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저처럼 60대 초반 은퇴자라면 농지에 대한 욕심은 버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 때론 욕심이 커다란 성과를 올려주기도 하는 게 또한 세상살이니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긴 합니다.

저 멀리 경남의 큰 도시에서 강원도 삼척으로 귀농한 부부는 집터를 빼고도 거의 2천여 평이 넘는 농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와는 한살림조합 활동으로 알게 됐는데 지난 7월에 그곳에서 공식행사가 있어 농지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었습니다. 귀농한 지도 꽤 오래되기도 했지만 워낙 활동적인 사람들이라 그곳 토박이들과 어울려 ‘샐러리’작목반을 꾸려나갈 정도로 붙임성도 좋은 이들입니다.

‘샐러리’라는 작목이 우리네 식탁에 늘 오르는 채소가 아닌지라 판로확보가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작목반을 꾸리는 것은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또한 대량 납품을 위한 교섭권을 갖는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관수시설을 갖춘 100평짜리 비닐하우스 1동과 나머지는 노지에 샐러리를 비롯한 여러 작목을 재배하는 부부의 농지는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면서 위치하고 있어 작업환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삼척에서도 깊은 산골인지라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들이 수시로 출몰해 작물피해가 심한 편이기도 합니다.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간단한 장비로 집수해 중간 중간 커다란 물탱크까지 호스로 연결해서 물 문제는 해결하고 있지만 2천 평이 넘는 농지는 부부의 힘만으로 유지 관리하기는 벅차 보입니다.

밭을 만들고 모종을 식재하는 일은 주위의 도움과 부부만으로 그럭저럭 해결할 수 있다 하더라도 문제는 수확 때까지 풀 관리나 기타 재배관리가 벅차다는 겁니다. 부부가 농사짓는 주위의 밭은 거의 전부 고랭지배추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사실 돌밭에 배추모종을 심어놓는 일조차 힘들어 보이는데 그 넓은 밭을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풀매고 관리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많은 농약과 비료가 살포돼 지력은 점점 쇠약해져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낮은 평지에 있는 밭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강제 휴경에 들어간 곳이 많다는 말에 과연 농사를 어떻게 져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부부는 물론 부엽토와 각종 음식물 찌꺼기를 이용해 발효시킨 액비와 지자체에서 제공해주는 수피(樹皮)분쇄퇴비를 이용해 작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니 자연적으로 남들보다 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 어떤 때는 밤 10시까지 랜턴을 켜놓고 일할 때도 있다니, 이건 본인들이 생각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귀촌귀농이 자연과의 교감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에 치인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각자 능력껏 텃밭 정도로 만족하거나 아님 자본력과 튼튼한 계획으로 훌륭한 전업농이 될 것인가는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사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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