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는 집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거라 매년 얼마씩은 꼭 심는 작목입니다. 고구마모종을 심는 시기는 대략 어린이날 전후가 최적기지만 올해는 최악의 가뭄상태가 지속돼 5월 중순이 다 돼서야 호박고구마 한단과 황금고구마 두 단을 겨우 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슬비라도 내리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하늘이야 인간의 욕심을 어디 염두에나 두겠습니까. 미리 멀칭을 해 놓은 이랑에 하루 종일 구멍 뚫고 물 붓고 심긴 했지만 제대로 살아날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둘째아이 이사문제로 장기간 서울로 출타했던 집사람이 5월 하순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둘러본 게 고구마를 심은 밭이었습니다. 주위 분들 말로는 가뭄이 들더라도 물을 주기 시작하면 안 되는 게 오히려 땅이 단단하게 굳어져 더 가뭄을 타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는 게 낫다는 거지요. 그래도 어디 그 꼴을 두고만 볼 수가 있겠습니까. 햇볕이 내리 비치는 한낮이 지나고 저녁이 되면 얼마나 모종이 말라죽었는가를 세는 게 일이니 이것도 못할 노릇이지요.

이미 샘물은 완전히 말라붙어 밭에 물을 조금이라도 대기 위해서는 관정으로 공급되는 간이상수도물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마당에 혹시나 해서 상수도와 연결해서 설치한 부동전에서 주전자로 물을 받아 모종 하나마다 일일이 물을 부어주는 집사람을 보다 못해 저도 거들다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힘이 드는 건 고사하고 영 효율도 나질 않아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사람이 탈이 날 지경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건너편 댁 밭에서 물을 뿌려주고 있는 스프링클러를 발견하고는 바로 그 댁으로 달려가 살펴보니 가격도 싸고 호스로 연결만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효과도 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철물점으로 달려갔습니다.

물을 튀겨주는 플라스틱 날개판과 금속관, 그리고 금속관을 지탱시켜주는 삼각대가 전부라 이미 밖으로 연결시킨 호스에 금속관을 연결해 수도를 트니 시원스럽게 물을 뿜어줍니다.
기계의 힘을 빌리니 확실히 몸은 덜 힘들지만 간이상수도가 언제까지 버텨줄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 하루에 1시간 이상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녁나절에 틀기도 해보고 이른 아침에 물을 주기도 했지만 땡볕에 고구마모종들이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는 모양입니다.

집사람은 단 하나의 모종이라도 살리기 위해 땡볕이 비치기 전에 종이박스 등을 이용해 숨이 겨우 붙어있는 모종들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눈물겨운 노력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온갖 종이박스는 물론 플라스틱 바가지까지 모종들에 씌워주니 우습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합니다.

뭐라 얘기하면 화까지 내니 그놈의 고구마가 뭐라고 부부싸움까지 해야 되는지 이 가뭄이 원망스럽습니다. 어쨌든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한계는 있기 마련입니다. 호박고구마는 살리기가 힘들다고 하더니 처음에는 살아날 듯 보였던 모종들도 날이 지날수록 힘없이 시들어 죽어버리고 맙니다. 모종 한단이면 대략 100주 정도지만 매일 스프링클러로 물주고 한낮에 종이박스로 그늘까지 만들어 주는 집사람의 갸륵한 정성도 소용이 없습니다.

살아남은 모종이 30개에서 20개로 줄더니 결국 12개로 줄고 말았습니다. 보통 고구마 농사짓는 이들은 이렇게 죽은 모종자리를 매우기 위해 계속 모종을 보충해서 심어준다지만 저희는 그대로 놔두는지라 밭모양이 불상 사납습니다. 그나마 황금고구마모종은 90퍼센트 정도 살아줘 위안을 주긴 합니다만 가뭄이 이대로 지속되면 그것도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스프링클러를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물을 대다보니 호스에 모종이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되고 세워놓은 스프링클러가 쓰러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되지만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겠습니까. 호스가 모종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을 쓰다 보니 세워놓은 스프링클러가 넘어지면서 플라스틱날개 판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에이 이놈의 고구마들.. 그래도 어쩝니까. 농사를 포기하면 모를까 다시 이 부속품을 사기 위해 시내로 차를 몰면서 농사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절감합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