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는 반가운 손님을 상징하는 좋은 이미지에서 과실나무에 많은 피해를 주는 해조가 됐습니다. 반면 까마귀는 보기에는 음침하고 덩치가 커 별로 환영을 받지는 못했지만 농작물에는 별다른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식이 파괴되는 일이 제 밭에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밭 아래쪽 가장자리에 커다란 양앵두 나무 두 그루가 있어 매년 새봄에 제일 먼저 과일 맛을 보게 해줍니다. 문제는 이 나무가 너무 커 위쪽에서 열리는 수많은 앵두는 그저 보기에만 좋을 뿐이지 따기는 어려워 새들 먹이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새들이 위쪽에서 푸드득 거리며 따먹더니 언제부터인가 까마귀 두서마리가 합류하더니 나중에는 수 십 마리나 되는 까마귀들이 앵두나무를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먹지도 못할 바에 새들에게 먹이로 주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앵두가 다 떨어지고 없어질 무렵인데도 까마귀들이 수 십 마리씩 떼를 지어 밭 주위를 맴돌기에 그저 무심히 넘기고 있었는데, 심한 가뭄으로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고추와 완두콩 열매가 처참하게 찢겨진 것을 어느 날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멀칭을 한 비닐이 여기저기 찢기고 심지어 퇴비포대에도 구멍을 낸 것을 봐 틀림없이 새가 한 짓이지만 어떤 새가 이런 짓을 한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새들을 지키자고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 그저 답답한 마음에 속만 끓이고 있던 중, 이른 새벽에 밭을 나가보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섭기조차 한 풍경을 만나고 말았던 겁니다.

온 밭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는 까마귀 떼들은 얼핏 봐도 몇 십 마리는 될 성 싶어 그만 입을 딱 벌리고 얼음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뭔가 행동을 하긴 해야 될 텐데 발이 움직여지질 않아 한참이나 있다가 훠이훠이 소리를 내니 까마귀 떼가 일제히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니 하늘이 가려질 정도였습니다. 결국 밭을 망가뜨리고 고추랑 완두콩을 따 먹은 범인들이 까마귀들이란 게 밝혀졌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주전자로 물을 줘 목숨을 연명하고 있던 옥수수마저 이놈들의 악행으로 줄기가 부러지고 잎이 다 찢겨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먹지도 못할 옥수수 대는 왜 부러뜨렸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화학비료를 주지 않아 아래밭 옥수수와 비교하면 애와 어른차이가 날 정돈데 그마저도 이렇게 찢기고 부러뜨렸으니 올해 옥수수 수확은 아예 바라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다음날부터 사위가 사다놓은 고무줄새총을 들고 까마귀만 보면 쏴대는 게 일과의 시작이고 끝이 되고 말았습니다.

까마귀는 새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다고 합니다. 한두 마리가 전봇대에 앉아 시선을 끄는 울음소리를 내고는 나머지 놈들이 주위를 선회하면서 온갖 괴성을 내면서 약을 올리는 듯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니 아무리 내가 새총을 쏴봤자 효과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까마귀들이 아예 안하무인격으로 난리를 칠 테니 귀찮고 효과가 별로여도 새총을 늘 들고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유해조수에 대한 지자체의 방침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시청 환경과에 전화를 걸어 피해사실을 조목조목 알리니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사람을 파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까마귀 떼가 출몰한다는 신고는 받았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제가 처음이라는 겁니다. 그거야 어찌됐던 뭔가 대책을 세워지질 바랬지만 다음날 찾아온 환경과 직원들은 찢기고 떨어져나간 농작물 사진을 대강 찍고는 알아서 대처하라는 게 처방의 전부였습니다. 하기야 지자체라고 용뺄 재주가 있는 건 아니니 한편으론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폭음탄 따위를 구입해 사전에 경찰서에 신고하고 사용하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게 그나마 구체적 방법론이었습니다. 이러니 새총을 들고 밭가를 감시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는 겁니다. 온 나라가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마당에 까마귀까지 어려움을 가중시키니 농사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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