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나물의 왕은 두릅이라고들 합니다. 집이 산기슭에 있는지라 밭 주위에 두릅나무가 꽤 있습니다. 두릅나무는 그 새순을 피우기 전까지는 볼품없이 마르고 죽은 나무줄기 같고 드문드문 가시까지 있어 보기에는 별로입니다.

작년에는 양력으로 4월15일경부터 두릅새순을 채취하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윤달의 영향인지 4월이 다 가는데도 새순이 나온 두릅은 손에 꼽을 정도고, 그나마도 아직은 채취하기에는 너무 어려 손을 못 대고 있었습니다. 서울 둘째아이가 집을 이사해야 해 어린 새순만 보고 한 일주일 집을 비웠다 와보니 이런 웬만한 두릅들은 이미 활짝 펴 먹을 수가 없게 돼 버린 겁니다. 그나마 새로 싹을 틔우는 두릅들이 큰 나무 사이에 더러 있어 올해도 두릅의 아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봄나물은 우리 몸의 잠자는 세포를 깨워 일으키는 면역계의 전령사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지천으로 널린 온갖 봄나물이 손짓을 하면 무얼 합니까. 아는 거라곤 냉이와 달래, 그리고 두릅이 전부니 봄소식을 알리는 그 수많은 나물들을 그저 스쳐 지날 따름입니다.

개두릅은 엄나무 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사실 엄나무 순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얼마 안 됩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맛을 본 개두릅은 그 쌉쌀한 맛이 독특해 미식가들은 두릅보다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름에 개자가 붙으면 대체로 뭔가 부족해서 부르는 말일 텐데 요즘은 개자가 이름 앞에 붙은 것들이 오히려 몸에 좋다고 난리니 하여튼 알다가도 모를 게 세상사인 것 같습니다. 개 복숭아 열매를 발효하면 그리 좋다해 산에 개 복숭아 열매가 열릴 무렵이면 무시로 사람들이 산을 오르내립니다. 집 뒤편 산에 개 복숭아나무 두 그루가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만, 하루 종일 나무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지라 누가 따가도 알 수는 없습니다.

엄나무 순을 따려면 상당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일단 나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날카로운 가시들이 줄기를 뒤덮고 있어 잠시만 방심하면 피를 보기 일쑤니까요. 긴 장대에 고리를 달아 어느 정도 새순이 핀 가지를 잡아당겨 순을 채취하고 높은 가지는 잘라내는데 이는 다음해 봄에 순 따기를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두릅도 순 따기를 쉽게 하기 위해 가지를 잘라내는데 이게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두릅을 따고 가지를 자르기 전에 돋아날 새로운 순이 있는지 잘 살펴 그 위까지만 잘라내 가지를 살려야지 마구 자르면 그만 가지가 죽어버려 다음해 두릅은 구경을 할 수 없답니다.

두릅나무는 보통 군락을 이뤄야 잘 자란다고 하는데 자연 상태에서 다른 수종들과 생존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아 요즘은 아예 상업적 목적으로 야산에 재배하는 이들이 많다고들 하더군요. 어쨌든 두릅이건 개두릅이건 한철에만 맛 볼 수 있어 오랜 기간 맛을 즐기려면 냉동하는 방법이 제일 좋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금방 따서 데쳐 먹는 맛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봄철 장날 좌판에는 두릅, 개두릅은 물론 온갖 나물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이 두릅 팔아 개두릅을 사먹는다는 얘기는 두릅은 많지만 개두릅은 흔치 않아서 귀하고 비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에야 이곳도 웬만한 집에는 엄나무 한 두 그루는 기르는 지라 예전 같은 대우는 못 받지만 그래도 두릅보다는 비싸게 팔립니다.

아래 밭에도 커다란 엄나무가 몇 그루 있어 순을 딸 시기가 되면 주인장은 물론 그 처남들까지 온 가족들이 동원돼 순을 따는 잔치를 벌이더니, 올해는 아예 프로판가스통까지 싣고 와 닭백숙까지 곁들인 한마당 잔치판을 벌였습니다. 덕분에 닭다리 한쪽을 얻어먹으니 봄은 이래저래 아낌없이 뭔가를 주는 희망의 시기입니다.

두릅도 개두릅도 다 피고나면 본격적인 농사철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 가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일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지만 먼지 풀썩이는 밭에 주전자라도 목을 축일 수 있을까 동동거리다보면 피곤한 몸과 함께 하루해가 넘어가기 일쑤니 그저 비가 오기만 하염없이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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