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농사철이 왔습니다만 이번 5월은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한 것 같습니다. 워낙 봄 가뭄이 있긴 하지만 금년처럼 비 한 방울 안 내린 적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장기예보를 봐도 비가 올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소식뿐이니 뭔들 해볼 수 있겠습니까. 심어놓은 고구마와 고추, 몇 포기지만 토마토와 삼채, 그리고 오이모종들은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지 않으면 금방 말라버리고 맙니다. 밭가를 걷다보면 흙먼지가 풀풀 날릴 정도니 그저 답답할 따름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샘물을 호스로 연결해 밭 가운데 커다란 고무다라를 갖다놓고 물을 받습니다. 주전자와 물 조리를 이용해 목을 축여주느라 부지런히 물을 퍼 나르지만 겨우 연명할 정도에 그치고 맙니다. 그나마 자라던 옥수수 모종들도 일제히 성장을 멈추고 잎 끝이 말라갑니다. 작년에 받아놓고 묵혔던 퇴비를 일일이 모종마다 손으로 뿌리고 물맛이라도 보라고 주전자로 주위에 물을 주었습니다.

대략 30평 정도에 심은 옥수수 모종에 퇴비주고 물을 주니 하루해가 저물 정도지만 돌아서면 고생한 흔적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4월에 포트에서 길러 밭에 정식한 옥수수모종이 아직도 한 뼘을 넘지 못한 꼴을 보기가 안타깝습니다.

아래 밭 주인장은 화학비료를 줘야지 그나마 이 지독한 가뭄을 이겨나갈 힘을 기른다고 충고하지만 어차피 화학비료는 절대사절이니 그저 귓등으로 흘려듣고 말지만 마음이 초조한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3월 말에 정식한 감자는 그나마 잘 자라 꽃대를 올렸습니다만 이 시기에 물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한다는데 영 대책이 서질 않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주전자를 이용해 일일이 물을 주는 겁니다. 이 가뭄에 산에 설치된 샘물보관통도 슬슬 바닥을 들어날 테지만 우선은 갈증에 시달리는 작물의 목을 축이는 게 급선무입니다.

커다란 주전자에 하나 가득 물을 받아 감자밭에 물을 줘보지만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화장실에 설치된 산물 수도꼭지와 연결한 호스는 밭까지 길게 늘어진 탓에 주전자로 퍼 나르는 속도를 못 맞춥니다. 워낙 수압이 약한데다 근 40미터 가량 호스로 끌고 나왔으니 겨우 가느다란 물줄기로 헐떡거릴 뿐입니다.

몇 주전자를 날라야 감자밭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나 세어보다가 그만 잊고 말았습니다. 고무다라에 물이 어느 정도 차길 기다리다 퍼 나르니 힘은 힘대로 들고 효율은 꽝입니다.
웬만한 규모의 농장이면 자동스프링클러가 한낮의 무더위를 식혀줄 텐데 인간스프링클러는 그만 팔 근육에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감자와 옥수수는 심어놓은 양이 제법 돼 갈증을 해소시키려면 큰맘을 먹고 시간을 재가면서 시작해야 됩니다. 집사람도 옆에서 거들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이지요. 오후 5시 무렵부터 물을 주기 시작하면 대개 해가 떨어지는 8시쯤 겨우 일을 마칩니다. 습관적으로 오른팔로 주전자를 들고 물을 주다보니 오른팔 근육이 아파 밤에는 끙끙거리기 일쑵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봐야 소염진통제 주사나 놔줄 테니 그것도 내키질 않습니다. 일단은 쉬어야 통증이 사라질 게 뻔하지만 쉴 수가 없으니 이게 문제인거지요.
올 초에 개통된 간이상수도가 없었다면 사람마저 갈증에 시달렸어야 될 판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바람이 드세게 불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스프링클러가 팔의 통증을 무릅쓰고 부어준 물이 증발되는 속도가 지연되기 때문입니다.
새벽 어스름한 여명에 화장실 산물수도꼭지를 틀어 고무다라에 물을 받는 게 일과의 시작입니다. 엊그제 비닐멀칭한 이랑에 정식한 토종고추모종을 살리려면 아무리 태양이 뜨겁게 내리 비쳐도 아침저녁으로 주전자를 들어야겠지만, 곧 심어야 할 들깨모종내기는 포기해야 할지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잡초조차 말라죽는 판이니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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