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이곳은 명색만 시(市)지 실상은 편의시설 하나 없는 산골 오지나 마찬가집니다. 그 흔해빠진 편의점을 이용하고 싶어도 적어도 6km 이상 차를 타고 나가야 되니 웬만한 건 스스로 해결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처음 이 골짜기로 들어왔을 때는 낯선 사람들이나 풍광들이 어색하고 동떨어져 보여 주위를 찬찬히 살펴 볼 여유가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가까운 곳에 이미 폐교가 됐지만 초등학교 분교도 있고 토종닭 백숙을 파는 가든까지 있는 걸 알았지만 그저 그런가보다 라는 일상의 풍경으로 치부하고 말았었습니다.

폐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느 날 집으로 찾아온 손님 때문입니다. 낯선 여인이 학교운동장에서 음악회를 연다며 꼭 참석해달라면서 음료수까지 건네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요. 대부분의 폐교는 문화적 목적으로 사용하고자하는 이들에게 장기임대를 하는 게 보통의 경우라고 하는데, 아마도 음악회도 이런 차원에서 열리는 듯 했습니다. 문제는 이곳 임차인이 계약조건을 제대로 이행치 못해 구설수에 올랐다는 겁니다. 일정하고 끊임없는 상시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일반적 계약 사항인데 개인적 사정으로 장기간 방치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임차인이 계약조건을 억지로라도 맞춰 재계약을 하기 위해 무리하게 음악회를 개최하게 됐지만, 임차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관련된 이들이 관할 교육청 담당자에게 민원을 제기해 애쓴 보람도 없이 결국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교는 싫던 좋던 한마을을 이끌어나가는 마을문화의 중심입니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사라진 폐교 운동장은 활력을 잃은 시골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외부적 요인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분교정도를 폐교시키는 일은 별다른 반발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게 상례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폐교를 장기 임대형식으로 내놓고 그 기간이 경과되면 매각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고 합니다.

학교를 잃은 마을은 생기를 잃은 마을이 되고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폐교만은 막아보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지면을 장식하는 걸 보게 됩니다.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 학교는 물리적 존재로서 뿐만 아니라 정신적 존재로서 가치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법률로서 임대든 매각이든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업이나 행위를 제한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곳 폐교도 그 후 한동안 정문이 굳게 닫혀 있더니 어느 날 서울사람에게 팔렸다는 소문을 듣게 됐습니다. 어느 마을이나 늘 정보에 밝은이들이 있기 마련이라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매가가 좀 비싸지 않나 싶더니 매입자가 학교 앞에 떡하니 팻말을 박아놓더군요. 본 물건은 사유재산이므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동안 무시로 산보삼아 드나들던 운동장이 철조망으로 갇힌 셈입니다. 출입도 금지시키면서 이곳에서 무얼 할까 궁금하긴 했지만 흐르는 일상 속에서 그 궁금증도 저절로 잊히더군요. 시간이 꽤 흐르고 처음 보는 이가 학교를 빌렸다는 말은 들었고, 몇 차례 얼굴을 마주치긴 했지만 얼마 후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이가 왜 포기했는지 속사정이야 알 수가 없지만 곧 커피숍을 열겠다는 이가 계약을 했다며 인테리어자재들을 운동장에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일이 시작되더니 해를 넘기고도 커피숍이 개점을 못해 왜 이렇게 늦어지나 궁금했는데 어찌어찌 안면을 익힌 임차인에게 들은 사정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규정을 잘못 해석했고 그 오류를 지적했음에도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괘씸죄가 적용돼 커피숍이 아닌 커피 체험장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과정이야 어찌됐건 커피향이 골짜기에 퍼질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을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힘들게 진행된 일이니 잘 되길 바랄 뿐입니다. 주민들에게는 커피가 서비스된다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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