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는 경운기와는 달리 고가의 장비라 밭을 갈아주는 비용도 경운기보다는 비쌉니다. 여기서 대략 7km쯤 떨어진 동네에 거주하는 트랙터 주인은 참 별난 사람이었습니다. 저야 이 동네 신참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연이어 붙은 밭주인은 원주민임에도 퉁명스럽기 그지없고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뭘 물어봐도 제대로 대꾸도 안 하니 이런 답답한 노릇이 어디 있겠습니까. 트랙터 가지고 있는 게 뭐 대단한 벼슬이라도 된 양 밭이 비탈져 트랙터가 위험하다지 않나, 돌이 많아 로터리 날이 망가진다는 등 쉴 새 없는 불만을 쏟아내는 통에 그만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됐습니다. 사실 트랙터 같은 고가의 장비도 년 중 사용하는 날이 손꼽을 정도니 이렇게 품앗이처럼 인근 밭이나 논을 갈아주고 대가를 받아야 장비를 운용하는 데 도움이 되니 보통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일을 해준다고 하는데, 이 이는 좀 특이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제돈 내고 사정하는 일이 서울서 심야에 택시 잡는 일만 있는 줄 알았더니 시골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어디 생각이나 해봤겠습니까. 이러니 구석구석 제대로 경운을 부탁할 수가 없어 그저 그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 뒤편 밭으로 트랙터가 올라가려면 중간에 심어놓은 매실사이로 빠져야 되는데 공간이 마땅치 않아 제법 나무 사이가 넓은 곳을 찾아 커다란 가지도 절단을 해야 했습니다. 이게 또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 강릉 사는 집주인에게 전화까지 걸어 양해를 구해야만 했으니, 이래저래 트랙터로 밭가는 일은 영 뒤끝이 안 좋은 일이 된 겁니다.
뒤편 밭을 빌려 경작하는 사람과 제가 사용하는 밭, 그리고 아래 밭까지 각자 경작하는 이가 다르니 대가도 3명에게 따로따로 받는다고 합니다. 다 합쳐봐야 한 1천5백 평쯤 되는 밭을 3개로 쪼개 일했다고 각자 8만원씩 줘야 된다고 하니 얼핏 생각해도 참 경우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름값이야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을 거고 고급기술을 가진 인력도 아닌데 24만원이나 잠깐 새에 벌어가니 시골인심이 후하다는 것도 이젠 옛말이 된 게 맞습니다.
젊은이들은 없고 농사는 져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농촌의 현실입니다. 품앗이 같은 좋은 전통도 사람이 있어야 유지되는 거지 노인들끼리 서로 품앗이해봐야 어디 티나 나겠습니까. 이러니 자꾸 기계에 매달려야 되고 과도하게 농기계에 투자하는 문제가 야기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규모가 큰 농장이야 온갖 농기계가 제 구실을 하겠지만 소규모 경작지에서는 경운기도 트랙터도 며칠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창고에 처박히는 게 보통이니 이 문제는 잘 생각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농업기술센터나 지역농협이 농기계임대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필요할 때 빌려 쓰기가 힘들고 설사 빌렸다 해도 노인네들이 기계를 다루기도 힘드니 기계를 갖고 있는 지역의 젊은이(?)들의 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지역에서 작년까지만 해도 빌려 쓸 이가 요청하는 경작지까지 트럭으로 배달해 줬는데 올해부터는 자기가 가져가야 한다고 합니다. 경운기 한 대라도 실으려면 적어도 1톤 트럭은 있어야 되니 빌리고 싶어도 그만 포기하게 된다고 합니다.
옆 대추나무 과수원의 부지런한 젊은이도 그래서 중고 관리기를 사들이긴 했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제 몸 움직여 부지런히 힘쓰면 해결될 일을 괜히 편하자고 시도한 것이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마음은 마음대로 불편한 결과를 초래했으니 앞으로는 며칠이 걸리더라도 그냥 혼자 힘으로 밭을 갈 작정입니다.
이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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