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마을대표로 선임된 고압선주변 지원 사업에 관한 활동은 그럭저럭 필요 서류를 갖춰 한전에 제출하고는 종결이 된 듯싶었습니다. 일이란 게 늘 그렇듯 한 번에 종결되는 법이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부담이 커집니다. 작년 9월 느닷없이 날아온 공문서로 시작된 고압송전탑과의 불안한 동거는 그저 집사람과 저만이 갖고 있는 거부감이지, 다른 이들이야 전기요금을 감면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이게 웬 떡이냐 싶은 거였습니다.

문제는 2015년 1월분 전기요금부터 각 세대별로 균등하게 감면될 요금이 원래 예상보다 매월 1만 원 정도로 줄어들었고, 그나마도 제때 감면 처리가 되질 않았다는 겁니다. 사실 도시 아파트에서야 누가 언제 전기사용량을 검침해 가는지 관심조차 없을 겁니다. 전기요금이 아깝다고 관정으로 끌어올린 간이상수도 물조차 잘 쓰지 않는 이 골짜기 사람들이 제때 감면되지 않았으니 그 불만이 모두 마을대표인 제게로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전기요금 청구서를 모바일로 받아보고 할인 항목을 자세히 살펴보니 누락된 게 틀림없어 한전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송전탑주변 마을 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는 한전 동해지점이 아니고 전력소라는 별도의 사무실을 갖고 있는 부서란 것도 전화를 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담당자도 전화를 받고는 당황했는지 왜 이런 사태가 발생됐는지 확인을 하고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에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본말이 전도되는 일은 이런 일뿐만은 아닐 겁니다. 전자파가 인체에 끼치는 중대한 사안인 본질은 어느덧 뒷전이 되고 사탕발림으로 내놓은 전기요금 감면이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가 중대 사안이 돼 버렸으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해보다는 당장 눈앞의 사탕이 더 달콤할 테니까요. 이건 저로서는 바라지 않은 현상이지만 산다는 게 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 뭐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어쨌든 며칠이 지나 담당부서의 책임자가 제게 전화를 해서 알려준 바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수 십 만가구가 해당되는 이번 사업이 최종적으로 본사에서 전산에 입력되는 과정에서 이 골짜기 가구만 몽땅 빠져버리는 실수가 발생돼 다음 달부터 틀림없이 할인될 거라는 거였습니다. 전체 가구당 일 년 할인금액이 겨우 십 몇 만원에 불과하더라도 그 금액을 12개월로 나누지 않고 한 달을 건너 뛴 11개월로 나누면 일단 시각적으로는 할인금액이 커 보일 테니 오히려 좋아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골짜기의 감면대상 가구 중 전기를 제일 많이 사용하는 곳은 아마 골짜기 맨 위 염색공방일 테고 그 다음이 우리 집일 거고 나머지 가구는 한 달 1만원도 안 쓰는 집이 대부분인지라 오히려 전기요금이 마이너스가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길 건너 할머니 댁은 겨울을 나기 힘들다고 시내 아파트에 사는 큰 아들이 모셔가서 집이 비었고, 그 윗집 벽돌 쌓는 기술자 내외도 경기도 어느 곳에 장기 공사를 따서 집을 비우고 있으니 사실 전기를 제대로 쓰는 집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니 한전도 답답할 겁니다. 이랬던 저랬던 환급되는 요금은 누적시켜 석유나 연탄 등으로 보상한다니 전자파가 끼치는 위해는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옴으로서 먼 훗날의 기우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실이 이렇듯 권력과 금력에 의해 감춰지고 나중에는 왜곡돼 어느 게 진실인지 조차도 불분명하게 만들어가는 사회가 문득 무서워집니다. 전자파가 어쩌고저쩌고 해봤자 유난을 떠는 도시사람 취급만 받을 게 뻔하니 아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행동을 해야 된다는 강박감을 떨치지는 못합니다.

총 보상액 중 50%는 가구별 전기요금 감액이고, 나머지 50%는 마을단위 지원금인데 이게 마을대표가 나서서 일을 추진해야 되는 사안입니다. 일 년 지원금이 120만 원 정도가 나왔으니 이 금액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온 동네 사람들을 모아 밥을 사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대표라도 대표는 대표니 협약서를 한전과 작성하고 돈을 청구해야 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만 언제 이 돈을 쓰게 될는지 저도 모를 일입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