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난방도 문제지만 씻는 일이 힘듭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일까지는 보일러 온수를 이용해 약간 춥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해결을 할 수 있지만, 목욕을 하는 일은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본채에 덧붙여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화장실 겸 보일러실은 한겨울에는 겨우 영상을 유지할 뿐이어서 사실 볼일 보는 일도 편안치가 않은데 하물며 여기서 샤워를 하려면 ‘나는 자연인이다’ 정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러니 추위에 유난히 약한 집사람은 샤워할 엄두를 못 냅니다. 그래도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간이 플라스틱욕조를 구입해 뜨거운 물을 받으면 얼마동안은 온기를 유지할 수 있어 아주 추운 날이 아니면 그런대로 샤워정도는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목욕은 사실상 포기해야 됩니다.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일은 암 투병중인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음식도 그 성질이 찬 것은 가급적 먹지 않아야 되고 실내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적어도 20도는 유지시켜야 되지만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겠습니까. 방안에 부탄가스 난로도 피고 부엌은 화목난로를 풀 가동시켜야만 겨우 영상 20도 내외를 오르내릴 뿐입니다. 흙벽에 회칠하고 얇은 스티로폼만 덧대 도배한 시골집이니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이러니 한 달에 단 몇 번이라도 뜨끈한 온천탕에 몸을 담구는 호사(?)를 누리길 바라다가 강릉 사는 후배로부터 가깝고 좋은 곳을 소개받았습니다.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망상해수욕장이 지척이고 뒤편은 숲이 울창한 산이라 풍광이 수려한 이곳은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산중턱에 고급실버타운이 세워진 곳입니다. 온천탕은 이곳 지하에 있는 부대시설이어서 실버타운 입주자들은 무료로 이용하고 일반손님들은 입욕료가 일반 대중목욕탕과 같아 주말이면 가족동반 손님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실 동해 토박이들은 이 온천을 운영하는 주체가 특별한 종교집단이라고 꺼리기도 한다는데 뭐 그게 대수겠습니까. 종교는 종교고 목욕은 목욕이니 그저 왕복 60여km가 되는 거리가 제법 부담이긴 하지만 소풍가는 날이라 여기면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아파트에서 거주할 때는 대중목욕탕에 가 본 기억이 없어 처음 이곳에 와 넓은 탕 안에 들어서니 뭐부터 해야 할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곳곳에 있는 샤워기 조작법도 낯설어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 결국 옆 사람이 하는 걸 곁눈질로 보고 겨우 알아채니 참 한심하기 짝이 없을 정돕니다. 보통 사람들이 즐기는 사우나도 남들은 들어가서 땀을 뺀다는데 저는 살갗이 따갑기만 해 2분도 못 넘기고 금세 나와 버리니 돈이 아깝기는 하지요.

사우나나 찜질방 같은 곳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뭔들 제대로 즐기겠습니까만 집사람을 위한 온천나들이가 몇 차례 반복되다보니 은근히 저도 즐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공기 좋고 풍광 좋은 곳에서 여생을 즐기겠다는 일념으로 시골을 찾지만 시골생활은 어떤 면에서는 도시보다 더 고된 생활이 되기 십상입니다. 심어놓은 작물도 돌봐야 되고 잘 지은 전원주택이건 허름한 시골집이건 끊임없이 손을 봐야 할 곳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더더욱 힘든 일은 주위사람들과의 원만한 인간관계의 형성이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러다보니 느긋하고 편안한 삶을 꿈꿨던 미래는 손이 갈라지고 얼굴은 검게 그을려버리는 현실 앞에서 후회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면 이곳에 온지도 어언 3년째가 됩니다. 되돌아보면 뭘 하고 그 세월이 지났는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눈 깜짝할 새에 계절은 바뀌고 손에 익지 않은 낯선 일들과 마주하면서 그럭저럭 해결해나가야만 하는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그만 꿈마저 잃어버리는 그저 그런 촌로로 늙어가는 모습이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란 게 제각각이고 이 생활도 제가 선택한 것이니 꿈을 현실에 맞춰 살아나가야만 삶이 즐겁겠지요. 뜨거운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서 다가올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리는 꿈을 꿀 수 있다면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더 큰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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