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동물도 겨울은 참 혹독한 계절입니다. 서해 쪽과 중부지방은 잦은 눈으로 고생이 심한데 이곳 영동지방은 벌써 3개월째 눈은 고사하고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있어 가뭄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TV일기예보에서는 연일 건조경보는 물론 대형 산불의 위험까지도 경고하고 있어 관련기관은 비상이 걸린 상태입니다.

이 겨울 화목난로에 땔 나무를 구하려면 산에 올라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 그저 지게지고 산길에서 삭정이나 주워오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적어도 아침저녁으로 몇 시간씩 난로를 때려면 꽤 많은 양의 나무가 필요하지만 그게 쉽질 않습니다. 거의 매일 산길을 올라 겨우 하루치 분량만이라도 구해오면 다행이고, 어쩌다 제법 굵은 등걸을 발견하면 횡재한 기분이라 지게질도 가벼운 것 같으니 이게 참 우습습니다. 어쩌다 TV프로그램에 시골집이 나오면서 벽면에 장작이 그득한 장면을 보면 저절로 부러운 한마디를 해 집사람이 웃긴다고 타박입니다. 아마 도시에 계속 살고 있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재물을 탐하고 있으니 이건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부작용일 겁니다.

원래 구들이 놓인 구조였던 이 집을 노인들이 불 때기 힘들다고 집주인이 보일러배관을 덧댄 탓에 아궁이가 불길을 제대로 못 잡아도 수리할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몇 번씩 부엌 바닥 뚜껑을 열고 아궁이에다 불을 지펴봤지만 불길이 고래로 들기는커녕 온 집안이 연기로 가득 차 버리니 그만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구들전문가 말로는 다시 구들을 놓아야 된다고 하니 이건 아예 포기하는 게 상책입니다. 방바닥을 뜯고 구들을 다시 놓고 그 위에 보일러배관을 다시 놓으려면 새로 집을 짓는 게 오히려 나을 성 싶을 정도의 대공사니 따끈한 온돌에 대한 미련은 빨리 버리는 게 신상에 좋을 테니까요.

‘궁즉통’이라고 생각해 낸 것이 부엌에 장작난로를 설치해 그 온기를 방안으로 유입시키는 거였고 어차피 부엌에서 일하는 집사람이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해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겨울이 되면 땔 나무를 구하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산길을 올라 삭정이를 줍거나 어쩌다 제법 굵은 등걸을 한두 개 구하는 걸로는 턱도 없는 일이라 땔 나무구하기는 뗄 수 없는 혹처럼 늘 붙어 다니는 걱정거리가 된 거지요.

인근에 있는 산들은 전부 개인소유라 아무리 쓰러지고 썩어가는 등걸이라도 함부로 베거나 집어가면 문제가 생긴다는군요. 산주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절도죄가 성립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산주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일일이 허락을 받으러 다닐 수도 없으니 그저 산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기슭이나 길가에서 잔가지나 줍고 말아야 하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집 앞을 지나는 도로는 끊긴 도로여서 차들의 왕래가 많지 않으나 산으로 올라가는 임도(林道)와는 연결된 곳이라 집에서 내려다보면 가끔 트럭들이 한가득 나무를 싣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곤 해 저들은 저 나무를 어디서 구해오나 궁금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궁금증과 부러움을 한방에 날려버릴 고마운 일이 벌어진 건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건너 집 할머니 댁 막내아들은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비번인 날에는 늘 본가를 둘러보곤 하는 효심이 지극한 이입니다. 몇 차례 인사를 나눈 사이여서 이날도 산책길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 끝에 땔감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자 그게 뭔 걱정이냐며 자기 트럭을 가져와 산으로 올라가자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임도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험하고 아찔하긴 했지만 산 정상부에는 차도 돌릴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도 있고 여기저기 간벌한 소나무 등걸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위 아래로 오르내리면서 1톤 트럭 적재함에 그득하게 등걸을 싣고 내려와 집 앞에다 쌓으니 올 겨울 땔감 걱정은 끝입니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일만큼 좋은 일은 없습니다. 일부러 트럭을 몰고 와 땀을 흘리며 나무 등걸을 실어주고 고마워하는 제게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며 손사래를 치는 이웃이 있으니 그래도 이곳은 살만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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