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접종 미접종 유형’ 발생때 조치사항도 적용해야”


예방접종에 기댄 초동방역…축산메카 용인·안성까지 구멍 ‘숭숭’

농민단체, 당정·안전처 회의 ‘구제역 뒷처리 회동’ 지적


용인동백·용인시청·원삼면 가재월리(돼지 구제역)·두창리(돼지 구제역)·안성 보개면·안성시청·삼죽면·죽산면 정원리(소 구제역)·용인 백암면·양지(이천 접경지역)·용인동백.
구제역에 뚫린 경기 남부 수도권 120km 도로.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내린 다음날인 7일 기자의 취재차량이 도로를 지나면서 어느 곳에서도 통제나 차량소독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점에 의문을 갖고 진단을 시작한다.

정부는 충북 진천에서 구랍 3일 구제역이 처음 발병한 뒤, 바이러스가 전국에 수도권까지 퍼진 한달 뒤 이달 7일에서야 축산관련 차량에 대해 전면 소독을 실시하고, 소독시설 설치를 확대하게 됐을까. 경계단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방역조치를 강화했다는 정부.
이런 와중에 정부는 구제역이 확산되고 있는 게 백신접종 지시를 잘 따르지 않은 농가 탓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차례 구제역 파동을 치르고도 이에 대한 뚜렷한 매뉴얼을 확립하지 못하는 정부를 지목하고 있다.

정부청사 세종…안성, 의심축 대량 발생

7일 저녁까지 총 37건이던 구제역 발생건수는 다음날인 8일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를 비롯해 소 구제역이 확진된 안성에서도 돼지 구제역 의심축이 4곳에서 발견됐다. 여기까지 구제역으로 판정되면 지난 12월 이후 발생한 구제역은 42건이 되고, 전라·강원권을 제외한 전국적 발생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기 안성의 경우 죽산면 2곳과 일죽면 2곳 등 돼지 의심축은 죽산면 장원리 소 발생지역과 인접한 곳으로 바이러스가 이미 퍼져 있음을 의미한다.

“진천에서 끝낸다더니…”

농식품부는 구랍 4일 구제역 의심신고된 충북 진천 소재 돼지농장의 의심축에 대해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제역으로 확진됐으나, 혈청형이 ‘O-타입’으로 이는 우리나라에서 접종하고 있는 3가 백신(혈청형 O, A, Asia 1 type) 유형 내에 포함돼 ‘확산 가능성이 낮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정부에 따르면 이번 구제역 발생에 대해 예방접종과 초동방역을 병행하기보다, 예방접종에 초점을 맞춘 매뉴얼을 적용했다는 설명이 핵심이다. 즉 정부가 내논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에는 ‘백신접종 유형의 구제역’과 ‘백신접종 미접종 유형의 구제역’으로 나눠 대처요령을 제시하고 있고, 당연히 혈청형 O-타입의 구제역이기 때문에 위기경보를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단계 형식대로 맞추는 방역대책을 세웠다는 논리다.
하지만 한달 넘게 잡히지 않고 확산되는 구제역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부는 매뉴얼대로 계획을 세우고 대처했다고 누누이 해명하고 있으나, 현실은 구제역 ‘승리’로 판명난 상황이다. 매뉴얼이 잘못됐다는 의구심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대목이다.

“충실한 매뉴얼 실행이 구제역 키웠다”

구제역 위기경보에서 경계단계로 격상한 구랍 18일에는 진천의 구제역이 이미 충남 천안과 충북 증평까지 확산된 뒤였다.
경계단계로 격상한다는 것은 확산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인접 시군에 긴급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일부는 2차 보강접종까지 추가한다는 의미를 말한다. 발생농가 및 역학관계 농장 이동제한이 실시되고, 감염축 살처분은 물론 발생농장에 대한 통제와 소독초소가 운영되는 것은 기본이다. 이쯤되면 농식품부장관이 구제역 방역대책본부장이 되고, 전국 모든 시도(시군)에 방역대책본부가 설치된다.
하지만 경계단계 발표하던 날 4곳 등 일주일내 9곳에서 구제역이 발병했다. 퍼진 다음에 후속대책이 나왔다는 얘기가 된다.

농식품부는 구제역 긴급행동지침에 의거 업무를 추진했다고 말하고 있다. 매뉴얼대로 움직였다면 ‘뒷수습’ 차원의 구제역 창궐은 무엇으로 해명이 가능한지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제역 긴급행동지침(SOP). 앞서 언급했듯이 ‘백신접종 유형’과 ‘백신접종 미접종 유형’으로 나뉜 긴급조치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백신접종 유형’의 매뉴얼에도 현장통제초소를 세우고 거점축산차량소독장소, 인근농장 임상관찰 등이 이뤄지지만 예방접종 유·무와 항체형성률 등에 집중하다보니, 반대로 차량소독 등 물리적으로 차단방역이나 검역해야 할 사항 등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지방공무직에 대한 통솔력과 방역·인건비용 등도 무시할 수 없는 행정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예방접종 실태조사에 집중되는 경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런 이유로 예방접종 운운하는 사이, 구제역 바이러스는 고속 질주했다. 물리적인 방역체계와 시스템 구축·가동을 등한시했고, 구제역에 대한 매뉴얼을 재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백신 미접종도 감안한 긴급조치 필요”

SOP에서 ‘백신접종 미접종 유형’의 구제역이 발생할 경우 긴급조치사항은 백신접종 유형 때 4단계로 나누던 위기경보단계가 없다. 일차적으로 ‘심각’단계 위기경보가 발령된다.
48시간 이내(필요시 연장)의 전국 Standstill(일시 이동제한)이 시행된다. 모든 우제류 축산농장, 관련작업장에 가축·사람·차량·물품 등의 일시 이동금지 조치가 취해지고, 정부 합동 담화문까지 발표된다. 거점별 축산차량 전담 소독장소를 별도 설치하고, 소독후 소독필증을 발급받게 될 정도로 삼엄한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나, 일부 전문가들은 너무 낭비적이고 과도한 제한조치로 인한 사회적 악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의견을 낸다.
그러나 구제역 발생으로 벌어진 피해규모가 적을 때가 있었는가 반문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일례로 정부가 지난 4년간 구제역과 AI 등 가축질병에 대한 보상금 등으로 3조1천억원을 사용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정부에 따르면 2010년 구제역 발생으로 2조7천383억원, AI로 822억원 등이 지급됐다. 지난 연말부터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소, 돼지 구제역으로 인해 100억원 이상의 비용이 현재 발생하고 있는 것까지 감안하면, 초동방역으로 정의되는 구제역 긴급행동지침이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자체, “정부 매뉴얼보다 자체적 대응”

지난 2010년 구제역 파동의 진원지인 경북 안동은 지난 3일 또 다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불안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우제류 가축의 83%인 14만5천여마리를 살처분·매몰했던 악몽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섰다. 때문에 매뉴얼에도 없는 ‘구제역 백신접종 책임 담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농장의 돼지를 모두 매몰처분키로 했다. 해당농장 3개동 중 1개만 매몰처분하면 되지만, 3개동 모두 857마리를 매몰한 것이다. 매뉴얼 심각 단계에서 추진되는 대책이지만, 바이러스 차단 차원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안동시는 밝혔다. 예방접종보다 미접종시의 경우의 매뉴얼을 적용해 바이러스  차단에 포인트를 둔 조치인 것이다.

뒤늦은 합동대응

‘새누리당과 농식품부의 구제역관련 당정협의’, ‘정홍원 국무총리 진천 재난종합상황실 방문’, ‘국민안전처, 구제역 방역대책 논의’ 등 지난 8일 하루에 가진 구제역관련 행사들이다. 이때 회의를 통해 나온 공통된 내용은 ‘방역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천을 방문한 정 총리 또한 “일선 방역 관계자를 총동원해 발생 지역과 인접 시군의 추가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라”면서 “지자체와 축산농가도 자기 지역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방역에 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방접종 문제와 바이러스 차단을 동시에 추진하라는 얘기다. 매뉴얼을 나누지 말고, 총체적으로 매달리라는 주문인 것이다.

이에 대한 농민단체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그동안 구제역 발생현황과 전파과정 등을 밝히면서, ‘과태료 부과실적’ ‘발생지역 및 인접시군 구제역 긴급백신 접종현황’ 등을 추가로 홍보했다”면서 “구제역 전파가 농가들의 안이한 부주의로 인해 빚어졌다는 뜻을 심심찮게 내비쳤고, 언론은 여과없이 이를 보도해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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