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세월은 참 빠르게 흘러갑니다. 처마 밑까지 차오른 눈 더미를 치우느라 포클레인까지 불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찬바람 부는 계절로 돌아오니 말입니다.

시골집은 겨울나기가 정말 힘듭니다. 벌써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해야 하지만 언제나 이 계절이 다가오면 걱정이 많아집니다. 보일러용 석유도 충분히 사 둬야 되고, 부엌난방용 땔감도 구해야 되고, 이곳저곳 집안도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괜스레 마음만 바빠집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일단 집안 곳곳을 살펴 쥐가 드나들 수 있을만한 구멍은 시멘트로 막아야 됩니다. 작년 겨울 집사람의 갑작스런 암 발병으로 근 두 달여 집을 비웠었는데 방안까지 쥐가 침입했던 흔적이 있어 올 겨울은 더욱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식품을 보관하는 부엌 옆방은 뒤란 쪽이라 집주인이 사용하던 온갖 잡동사니가 벽면에 가득해 쥐구멍이 있는지 살피지 못했던 게 불찰이었습니다. 안 쓰는 커다란 항아리에 먼지 뒤집어 쓴 멍석, 이런저런 옛 살림살이 등등이 외벽을 가득 채우고 있어 이것들을 전부 치워 살피기가 귀찮아서 놔뒀더니 결국 이런 사단이 생겨버렸으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날을 잡아 단골철물점에서 사온 믹스탈과 주변에서 주워온 돌로 주춧돌 사이사이에 난 수많은 쥐구멍들을 메우고 나니 온몸이 안 쑤시는 데가 없을 지경입니다.

뒤란 외벽 쪽은 어둡기도 하려니와 좁은 공간에 벽 중간쯤 고정된 선반까지 있어 거의 기다시피 엎드려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남은 재료로 구석구석 작은 구멍들까지 메우니 얼추 서생원 방어 작전은 마친 셈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부엌에 설치한 난로에 쓸 땔감을 구하는 일입니다. 장작을 사기도 어렵고 설사 파는 곳이 있다하더라도 운반비가 만만치 않아 주변에서 구해야만 하니 머리가 아픕니다. 인근에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목재유통센터가 있어 가공하고 남은 자투리목재를 포대에 담아 판매하는데 다른 이들이 싹쓸이하기 전에 미리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부피가 큰 물건을 옮겨야할 때면 트럭생각이 간절합니다만, 아쉬운 대로 승용차 뒷좌석을 접어 종이박스를 펼쳐 놓으니 그런대로 흠집은 막을 수 있어 꾸역꾸역 밀어 눴더니 7자루가 한계입니다. 산림조합 담당자에게 한 번 더 올 테니 다 팔지 말고 남겨달라는 부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단 옮기기에 가장 가까운 곳까지 차를 대고 포대를 내리자니 이것도 힘에 부칩니다. 워낙 부피가 크고 무거워 단숨에 들어내지 못하고 질질 끌다시피 하니 사람도 힘들고 차도 흠집이 많이 납니다. 헉헉거리며 내려놓은 포대들을 쌓고는 다시 목재유통센터로 가 추가로 싣고 온 포대가 6자루, 이걸 비를 피할 곳에 옮겨야 될 텐데 한숨만 나옵니다.

어깨에 메자니 들어 올릴 재간이 없어 알루미늄 지게를 사왔습니다. 원래 이곳에 있던 나무지게는 그 무게만 한 짐이라 감당키가 어려워 거금(?) 5만원이나 투자한 알루미늄 지게는 가볍기는 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한 포대 무게가 얼추 30kg가 넘는 자루를 짊어지기가 어디 쉬웠겠습니까. 있는 힘을 다해 지게까지는 올렸습니다만 일어나기가 버겁습니다. 결국 집사람이 뒤를 받쳐서야 겨우 일어나 걸음을 옮기니 휘청휘청 다리가 떨립니다. 헛간을 치워 공간을 만들고 포대를 옮기는 작업을 마치니 하늘이 노랗더군요. 이래서야 어디 사나이라고 명함이나 내밀 수 있겠냐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쓰러질 정도니 아니었으니 그만하면 괜찮은 편일 겁니다.

폭설로 떨어져 나간 연통을 청소하고 수리해 굵은 철사로 안과 밖을 고정하니 일단 겨울채비 1단계는 끝났습니다. 약한 서리가 며칠 내리더니 종당에는 얼음까지 얼고 말았습니다. 늦게 심은 김장밭에 무와 갓 등이 얼지 않도록 조치하는 게 이 겨울을 넘기기 위한 최종 채비입니다. 천막지, 이불호청 등 가능한 모든 덮개들을 이용해 뒷산 그늘이 내려오는 오후 3시부터 집사람과 함께 덮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놓고 하다보면 어느덧 햇살은 앞산 마루를 넘어갑니다. 지금부터 이 산골은 겨울로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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