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에게 날씨만큼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변수는 없을 겁니다. 비가 안 와도 걱정이고, 또 너무 와도 걱정이니 가을걷이가 끝날 때까지는 도통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곳 영동지방은 벌써 몇 년째 농사가 시작되는 봄철은 영락없이 가뭄이 들고, 근근이 지은 농작물을 거둬야 할 가을철에 느닷없이 한 사나흘 줄기차게 비가 내리니 농작물을 말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이러니 저 같은 애송이 농부는 베어놓은 들깨 단이 비에 흠뻑 젖어도 별 대책이 없습니다. 작은 비닐하우스라도 지어보려고 견적을 뽑아보니 이게 또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 그만 포기했더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딱히 뾰족한 방법도 없으니 그저 하늘만 바라볼 밖에요. 지난해보다 일찍 밭에 베어놓은 들깨는 말랐다 젖었다를 반복해 10월 중순이 넘어서야 조금 날씨가 반짝해 무조건 털고 말았더니 소출이 작년에 비해 절반도 안 됐습니다.

더 늦췄다가는 조만간 장대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은 지라 영 털지도 못할 까 걱정돼 몸이 안 좋은 집사람까지 밭에 나와 하루 종일 고생한 보람도 없게 됐습니다. 하기야 봄철 모종 심을 시기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시냇물까지 양동이로 퍼 날라 심은 모종이니 제대로 자랄 리가 없었으니 소출이 적은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건질 수 있으니 그게 어딥니까. 적으면 적은대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똥이더라
밥이더라
밥이 똥되고
똥이 밥되는 일이더라
교수보다 존경할 일이더라
시인보다 가난해지는 일이더라
익혀도 익혀도 늘 새로운 일이더라
연륜을 더할수록 부족함을 느끼는 겸손이더라
평생 겨우 오십 번밖에 해볼 수 없는,
희귀한, 예사롭지 않은 일이더라
인내와 절제와 땀이 진득하게 밴,
피 같은, 소박한 밥상이더라
길가 제비꽃 한 송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두엄 속 지렁이 한 마리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생명을 가꾸는 일이더라
각지불이(各知不移)더라
맨발로 하늘을 모시는 일이더라
공기처럼 물처럼 햇빛처럼 없으면
우리가 죽을 일이더라


김정원의 <농사>  전문

각지불이(各知不移)는 ‘각자가 깨닫고 마음에 새겨 변함이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이들에게 가을은 기쁨과 탄식이 함께하는 계절입니다. 언제 그런 고생을 했던가 싶었던 시간마저 잊게 만들다가도 풍작에는 헐값에 넘겨야 하는 농작물가격에 울고, 작황이 안 좋을 때는 먹고 살 걱정에 깊은 한숨으로 시름을 달래야 하는 농사는 참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습니다.

위정자들은 늘 농업을 천대했고, 오늘날에는 쌀마저 개방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일전 어느 유기농단체에서 발간된 잡지에 실린 시 한편을 읽다가 그만 가슴이 먹먹해져 정치하는 이들은 이 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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