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뉴질랜드FTA, 농축산물 수입비중 세계 최대 ‘등극’


TPP 가입조건으로 상대국 요구 대부분 수용…농축산물 ‘제물’


“무리한 농산물 시장개방 요구라며 중단했던 협상이 느닷없이 체결된 이유가 뭡니까?”
한·뉴질랜드FTA협상 타결을 바라보는 농업계는 망연자실이다. 특별한 개선책없이 그 많은 시장을 그대로 개방했기 때문이다.

쇠고기를 비롯한 축산물시장은 물론, 키위, 호박, 체리 등 앞으로 닥칠 ‘뉴질랜드 쓰나미’에 농민들은 몸서리 쳐진다. 뉴질랜드와의 FTA체결까지 웬만한 농산물시장은 다 열어 준 셈이다.
주위의 우려대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위한 ‘제물’로 농업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수순의 종착점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뉴질랜드와의 협상 결과를 놓고 보면, 상대측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부가 주장하는 ‘보수적’ 개방이란 용어에 비난이 쇄도하는 이유다.


그간 지켜온 쇠고기·유제품 ‘오케이’

지난 2010년 5월까지 뉴질랜드와 FTA 관련, 4차례의 협상을 벌이다 중단됐다. 3년후 재개하기 전까지 뉴질랜드측의 농산물 개방 요구는 우리의 현실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위였기 때문이다.
헌데 지난해 여름부터 재개된 양국의 협상은 TPP라는 매개체가 생기면서 급물살을 탔다. TPP 기존 회원국인 뉴질랜드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는 FTA협상에서 많은 요구조건을 수용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인지 농산물 87.1% 수준에서 문을 열어줬고, 농산물 최대 수출국들인 영연방 3개국과 FTA 동시 타결이라는 재앙으로 도래했다. 

이번 협상결과에 따르면 우선 쇠고기 분야는 연차별 관세인하가 이뤄지게 됐다. 현행 40%의 관세는 15년내 철폐되고, 신선·냉동·냉장 쇠고기에 대해서는 첫해 3만7천톤부터 긴급수입제한조치(ASG)를 발동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까지 수입선 다변화가 이뤄진 상태에서 안정장치라고 만들어 논 ASG에 대해 효과 여부가 미심쩍다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가장 큰 피해로 예상되는 유제품은 난리났다. EU와 함께 세계 유제품시장 교역량을 각각 34%씩 양분하고 있는 낙농선진국 뉴질랜드는 우유 생산량의 대부분을 치즈, 버터, 분유 등의 유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 당초 뉴질랜드의 FTA협상 요구조건에 가장 큰 강조점도 낙농제품에 대한 문호개방이었다. 결국 무관세쿼터용으로 치즈 7천톤, 버터 800톤, 분유(탈지·연유) 1천500톤, 조제분유 230톤 등에다 해마다 2~3%씩 증량해 들여오는 조건으로 15년내에 대부분 관세를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FTA로 인한 유제품 수입급증으로 국산 우유자급률이 50%대로 추락하고 있다. 금번 뉴질랜드와의 FTA협상 결과는 낙농육우농가를 길거리로 내 팽개치는 행위”라고 말했다.

“뉴질랜드에게 쌀 양허제외하면 어떻게 되죠?”

정부는 사과, 배, 포도, 감귤 등의 과실류와 보리, 대두 등의 곡류에 대해서도 양허제외를 이뤄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추, 마늘, 양파, 인삼류, 참깨, 땅콩 등도 물론 양허제외했단다.
그러나 이들 농산물에 대한 교역은 아직 백지상태다. 또 설사 수입산이 들어온다 치더라도 중국산과의 품질이나 가격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에서 양허제외란 성과는 궁색한 자화자찬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키위에 대해 6년내 관세철폐란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뉴질랜드는 키위 수출국이다. 수입시기와 국내 출하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과 달리, 대체수요와 상시성에 따른 욕구 감소 등은 국내 참다래 시장은 물론 다른 과일류 시장에도 막대한 영향이 불보듯하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결국 뉴질랜드의 요구를 100% 수용한 꼴이라는 평가가 나올만 한 얘기들이다. 여기에다 최근 수입급증으로 시장에 넘쳐나고 있는 뉴질랜드산 단호박에 대해서도 5년내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것 또한 협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우리 정부가 더욱 가관인 것은 쌀 및 쌀 관련 제품(16개 세 번)을 협정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보도자료 맨 앞자리에 홍보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국회 농해수위 소속 유성엽 의원은 “뉴질랜드와 FTA에서 쌀에 대해 양허품목 제외라고 명시했는데, 뉴질랜드는 쌀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생산되지도 않는 쌀을 양허품목에서 제외했다고 명시한 것은 왜곡, 과장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한 농식품부는 “뉴질랜드가 쌀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양허제외를 명시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답변했다. 쌀과는 전혀 상관없는 나라에 대해 쌀을 지킨 것이다.

“보호대책으로 융자지원…”

농식품부는 이번 뉴질랜드와의 FTA체결에 대한 국내 농업보호대책으로, 지난 9월18일 발표했던 ‘영연방 3개국 FTA 국내 보완대책’으로 가름하겠다고 밝혔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와 FTA를 비슷한 시기에 체결함에 따라 3개국 FTA를 종합해 축산업 등 피해 예상분야에 대한 국내 보완대책 수립이 효율적이라는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이때 발표했던 보완대책은 이들 나라와 FTA체결로 15년간 예상 피해액 수준인 2조1천억원을 피해분야(축산분야, 재배업)에 향후 10년간 추가 지원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또한 피해가 크다는 축산분야를 위해 농가사료직거래활성화자금·긴급경영안정자금 금리를 현행 3%에서 1.8%로 낮추고, 축사시설현대화자금·조사료생산기반확충자금·가축분뇨처리서설자금·축산경영자금을 3%에서 2%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구제역 방역시설 설치 등으로 인한 무허가 축사 양성화, 도축장 전기요금 할인 등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축산업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부분 지원내용이 융자하겠다는 계획으로, 자칫 농가들의 부채가 늘어나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인 것.
더욱이 영연방 3개국과의 FTA체결이 성사되면서 농업계는, 더 이상의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농축산물 수입비중이 80%를 넘어가면서 정부에 대해 기댈 수 있는 보호막이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최악의 협상결과를 치적으로 만들어 홍보하고, 농민의 살길을 찾아주지 않는다면 농민들도 생존권 사수를 위해 또다른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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