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평 5일장은 전국에서 그 규모가 크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한 장입니다. 매월 끝자리가 3일과 8일이 되는 날 열리는 북평장은 자동차와 사람이 얽혀 장이 서는 날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4차선 중앙도로가는 빼곡히 들어선 장꾼들의 천막으로 가득 차 겨우 남은 차선으로 시내버스와 화물차만이 힘겹게 왕래해도 상가주인이나 장보러 온 이들 모두가 그러려니 합니다.
그러고 보면 재래식 장날이란 게 참 별나다고 생각됩니다.

북평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마트 입구도 겨우 출입문만 남기고 죄 장꾼들이 차지해 물건을 들고 내는데 몹시 불편할 텐데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이 장꾼 물건은 물건대로, 마트 물건은 또 그것대로 사이좋게 팔리는 걸 보면 똑같은 물건임에도 분명 정서적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날이면 장꾼들도 신나지만 장보러 오는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줄줄이 늘어선 메밀전병과 잔치국수를 파는 천막에서 앉은뱅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맛을 보는 일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무슨 특별한 맛이 있겠습니까마는 그저 장날 분위기에 휩쓸려 후루룩거리며 삼키는 잔치국수 한 그릇이야말로 장날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별미라고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처음에는 몰랐습니다만 가장 중앙통로와 양 옆의 골목은 품목별로 철저히 나눠져 있어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곧바로 가면 될 일인데 그걸 알게 된 것은 몇 차례나 장을 다녀온 다음이었습니다. 4차선 도로변 중앙통로에는 어묵이나 닭 강정, 붕어빵, 어물전 등 먹을거리가 주종이고 간간히 양말이나 모기방지용 모자나 꽃무늬 고무장갑 등 시골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상품 등이 진열되지요. 물론 계절에 따라 상품들도 다양하게 바뀌는 건 기본입니다.

장터 입구에서 좌측 편은 인근에 사는 할머니들이 광주리나 고무다라에 온갖 푸성귀나 감자, 고구마 따위를 벌여놓고 지나는 이들을 손짓하는 할머니들 전용장터입니다. 전부 집에서 기른 싱싱하고 약 안 친 채소라고는 하지만 요즘 장 보는 이들은 별로 그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간 도매상들이 중국산 채소를 할머니들에게 소분해 좌판을 벌린다는 소문이 무성한 탓이겠지요. 또 그럼 어떻습니까. 그저 알고도 모르고도 속는 게 세상사일진데 지갑에서 몇 천 원 정도 꺼내는 일이 할머니들의 기쁨이라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게 인정입니다.

대략 장이 서는 범위는 중앙차선을 따라 오른쪽 골목과 그 주변을 합쳐 길이가 1km정도인데 별난 상품들은 대개 오른쪽 골목을 따라 늘어선 천막에 있습니다. 청동으로 만든 신기한 장식품들이 있는가하면 온갖 한약재들을 늘어놓은 좌판과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종묘회사의 씨앗좌판, 누가 언제 입다가 벗어놓았는지 알 수 없는 구제품 옷가지들이 좌판에 아무렇게나 쌓여있기도 하고, 무조건 손에 잡으면 웃옷이건 바지건 만원인 옷가게들을 지나면 각종 농기구들이 진열된 커다란 좌판이 손님을 기다립니다. 낫이나 괭이, 삽 같은 기본 도구는 물론 감 따는 장대며, 알루미늄 지게, 보도 듣도 못한 농기구들이 그득하게 펼쳐져 있어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건지 묻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을 지경입니다.

결국 견물생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나중에는 별로 쓸모도 없는 감자파종기나 뱀 잡이용 집게 따위를 사고는 후회하게 만드는 곳이 장터지요. 지난 번 장날에는 마당 한구석 오래된 감나무에 빽빽하게 열린 감을 쉽게 딸 요량으로 무려 3만원이나 주고 감 따개 용 장대를 구입했습니다. 다 펴면 5미터나 된다는 말에 덜컥 사긴 했는데 값어치를 하려는 지는 두고 봐야 알 일입니다.

장은 대체로 오후 5시 무렵이면 파장이 됩니다. 훈훈한 장날 인심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됐지만 시간을 잘 맞춰 가면 1만 원짜리 물건도 절반 값에 건질 수 있는 기회는 생깁니다. 돈 값어치가 아무리 떨어졌다 해도 부르는 단가가 웬만하면 만원이 넘으니 쉽게 손이 나가지 못합니다. 결국 이리저리 장터를 다니며 눈요기나 하다가 빈손으로 올망정 장날이 오면 다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왠지 모르겠습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