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닦아 반짝반짝 빛나는 검정색 구두를 신으면 왠지 발도 편안한 느낌이 드는 건 도시에서의 삶이 대부분 이 구두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시골로 살림을 옮겨올 때 많은 구두를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예의를 갖춰 양복을 입어야 할 때를 대비해 상태가 아직은 괜찮은 두 켤레의 구두는 고이 모시고 왔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피치 못할 행사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라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면 축축하고 곰팡이도 피어있어 솔로 털고 약칠을 하고 햇볕에도 말려보지만 어쩐지 발도 마음도 불편합니다.

시골생활에서 계절에 관계없이 하루 종일 신고 다니는 것은 고무장화입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걸을 때마다 덜렁거리고 종아리에 휘감기도 해 불편했습니다만 어느덧 하루 종일 신고 다니면 안 될 필수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간편하고 발이 편하긴 운동화가 제격이긴 하지만 이슬이나 흙에 더럽혀지기 일쑤고, 풀숲에는 뭐가 숨어있는지 몰라 장화만큼 마음 놓고 다니질 못합니다.

사실 도시에서의 삶에 장화가 뭔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60이 넘을 때까지 장화가 필요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당연히 장화를 살 생각도 없었지요. 도시 멋쟁이 아가씨들은 패션장화를 신는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유행에 불과한 거니 실용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골로 내려와 장터에서 구입한 장화가 제 것과 집사람 것까지 여러 켤레가 됩니다. 목이 긴 장화, 짧은 장화, 겨울용 방한장화까지 고루고루 사게 되더군요.

하지만 목이 짧은 장화는 운동화나 매 한가지라 댓돌 위에서 편히 쉬고 있습니다. 별로 필요도 없는데 경험 부족으로 사 둔 게 장화 뿐만은 아니니 그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되는 모양입니다.
장화를 신고 하루 종일 일하거나 돌아다니다보면 발에 미안해집니다. 땀이 차는 건 기본이고 벗었다 신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발을 집어넣으면 개미, 거미 같은 벌레들에 불의의 습격을 당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저보다 먼저 시골생활을 선택한 친구는 장화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걸 몰라 큰 봉변을 당했다며 반드시 신을 때는 거꾸로 털고 신어야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하기야 하룻밤 벗어놓은 장화를 아침에 신으려고 하면 어느새 거미줄이 쳐 있으니 벌레들의 부지런함에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맙니다.
급할 때 쉽게 발에 꿰차고 나오기에는 검정고무신만한 것도 없습니다. 궁핍했던 어린 시절 이후에 검정고무신을 신어보기는 처음이었지만 참 편하긴 합니다.

시골살이는 이렇듯 일상으로 신던 신발마저 바꿔버리고 맙니다. 고무신은 장화와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일상화지만 마당을 거닐거나 풀숲이 없는 곳으로 갈 때만 신어야 되니 한 켤레의 고무신으로 아마 몇 년간 더 신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을장마가 지루하게도 이어지더니 맛이나 보려고 심었던 수박도 참외도 그만 다 물러지면서 썩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비닐재질로 만든 포장지도 밑에 받쳐줬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농사란 게 하늘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음을 새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작년에 고생했던 고추는 올해는 안 심으리라 작정하고 미루고 미루다 풋고추라도 먹어야 되겠다고 토종고추 씨앗을 발아시켜 늦게 심은 고추가 가을장마로 상태가 별로입니다.
비닐멀칭도 하지 않고 신문지로 멀칭을 한 탓인가 고추가 검은 색으로 변하거나 꼬부랑 할머니 등짝마냥 휘어져 자라니 말입니다.

작년에는 고추를 잘 기르기 위해 수시로 살펴보면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올해는 그저 하늘에만 맡겼더니 역시 손길이 부족한 건 그대로 티가 나기 마련입니다. 20리터 분무기에 매실액과 6% 사과식초를 각각 100ml씩 부어 고추에 옆면시비를 했습니다. 퇴비도 한 줌씩 넣어주니 그나마 뭔가 해줬다는 생각에 고추에게 덜 미안합니다.

가을걷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가 들어가야 됩니다. 건너편 할머니 댁 고추는 몇 년간 연작을 한 탓인지 그만 탄저병이 와서 죄 뽑아 태워버렸답니다. 이러니 사람의 수고와 하늘이 짝짜꿍이 잘 맞아야 농사가 되니 농사야말로 천하의 으뜸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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