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00% 고율관세, 경쟁력 대책 등 피해 최소화”

농민단체, “관세지속성, 소득보장대책 등 의혹 투성” 



정부는 내년 1월1일부터 쌀시장이 완전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관세화 이외에 ‘현상유지’나 ‘관세화 의무 일시 면제’ 등의 협상카드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개방 이유다. 관세화가 진행되더라도 400%정도의 고율관세를 매기기 때문에 의무수입물량 외에 추가 수입물량은 미미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산 쌀생산농가들이 가격 경쟁력, 정부 종합대책 등에 힘입어 별 탈 없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부연설명에도 의문은 많다. 전농 등 농민단체가 극구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것도, 이러한 미심쩍은 부분에 대한 해갈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이 불신을 만드는지 짚어본다.


관세화 밖에 길이 없는가

지난 11일 국회에서 가진 쌀 관세화 관련 공청회에서 농식품부 여인홍 차관은 “현상유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관세화가 불가피하다”고 언급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상유지를 위해서는 관세화 의무 일시 면제(waiver, 웨이버) 및 의무수입물량 동결 입장을 WTO에 통보해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웨이버는 의무수입물량을 추가 증량하지 않고 쌀 수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농업계의 공감대에 맞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관세화가 가장 알맞은 선택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WTO 통보 전에 쌀 관세화를 선언하는 것은 협상에 이로울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카드로 협상을 하고 이를 통해 상대국의 속내를 분석하고 여기에 맞는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제동을 걸고 나왔다. 새민연 한정애 대변인은 17일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더이상의 추가수입에는 반대한다”면서 “쌀 관세화 논의를 위해 여야, 정부, 농민단체가 참여하는 ‘여야정단 4자협의체’ 구성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관세화 결론’은 성급하다는 여론이 거세다. 국회 중심의 사회적 합의, 협상을 통한 적극적 통상외교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중론이다.

400% 관세율 지켜질까

정부가 쌀개방을 선언하며 가장 내세우는 논리가, 고율관세를 통한 쌀시장 보호다.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관세율 400%대를 지키면 쌀 수입량이 크게 늘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이 불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외교전문가들에 따르면 WTO 농업협정에 규정돼 있는 관세율 계산방식은 1986~1988년 3년간 평균 국내 쌀 가격과 국제가격의 차이로 계산한 관세상당치에 UR협상 결과에 따른 품목별 최소 감축률 10%를 적용해 차감한 수치를 말한다. 이를 계산해 WTO에 통보하면 동계산 근거가 협정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회원국들이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회원국들의 이의 제기가 모두 정리되면 WTO 검증절차가 종료돼 최종 확정된다. 정부는 국제 전략상 높은 관세율을 매길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400% 세율을 적용할 경우 무리없이 적용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허나 농민단체나 통상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전농 박형대 정책위원장은 “고율관세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보장하는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나 FTA에서 주도권 세력인 미국, 중국 등의 통상압력을 견딜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정부가 풀어야 한다는 것. 최근 미국이 일본에 대해 쌀 관세인하를 요구하고 있고, 추가 협상에서 이같은 압박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시점에, 정부가 ‘법률적, 정치적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등 쌀 수출국 들의 ‘200% 관세율’ 요구도 무시할 수 없는 해결 과제로 지목된다. WTO 회원국들의 개별 동의를 받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400%대의 고율관세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 의아한 지경이다. 일례로 일본은 WTO 통보 후 검증종료까지 약 2년, 대만은 5년이나 소요됐다.

‘쌀 관세화’ 양곡관리법 개정 필요없나

정부는 필요없다고 선을 긋는다. 농식품부가 법제처에 쌀 관세화를 할 경우 양곡관리법을 사전에 개정해야 하는지 여부를 물었으나, 법령해석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이었다고 전했다.
국회나 농민단체가 쌀시장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사전동의를 얻어야 하는 이유로, 양곡관리법을 예로 들었다. 쌀에 대한 수입허가제를 폐지하고 관세화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제12조 제1항 및 제31조 제1항 제1호 등에 대한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양곡관리법 개정없이 정부 스스로 쌀 관세율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정부는 현행 양곡관리법은 시장접근물량에 적용되는 양허세율(5%)로 쌀을 수입하려는 자는 농식품부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그 외 다른 사항(관세화시 적용되는 고율관세 수입)에 대해서는 제한규정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세화는 ‘시장접근물량 이외 물량’의 수입을 자유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곡관리법 개정없이 관세화 시행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결국 법률적 해석문제를 놓고 논쟁이 예견된다. 물론 농민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원인 중 하나임엔 틀림없다.

정부가 내논 쌀산업발전대책이 보호장치인가

쌀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즉 쌀 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는 대책을 내놨다. 주식 공급기반으로서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이다.

실증적 내용으로 쌀 및 쌀 제품의 소비·수출 촉진과 가공산업 육성 등을 통해 수요기반을 유지하고, 우량농지 보전 등 생산기반 유지와 SOC 지속 투자 등 안정생산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농가 소득안정장치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쌀 수입보험제도를 도입하고 쌀 재해보험 보장수준을 현실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겠다고 공언했다. 직불제도를 쌀 생산과 덜 연계되도록 보완하고 이모작 확대 등을 통해 수급균형과 곡물·식량자급률 제고를 동시에 추진키로 한다는 전언이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업농·들녘경영체 육성을 통한 규모화·조직화 또한 대책으로 제시됐다. 여기에 미곡종합처리장(RPC)를 규모화하고 이를 중심으로 건조·저온저장시설 등 현대화 사업에 우선 지원키로 했다. 국산쌀과 수입쌀 혼합 판매를 금지키 위해 부정유통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도 새로 짜기로 했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들의 요구는 현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관세화를 인정하면서도 대책을 철저히 마련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한농연의 경우, 무엇보다 농가소득안정방안을 강조한다.
한농연의 쌀산업종합대책 요구안에 따르면 현재 ha당 40만원인 ‘동계논 이모작 직불제’ 단가를 100만원으로 인상하는 등 각종 직불제 인상으로 농가소득안정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다. 또 현재 3%인 농업정책금리를 1%대로 인하하는 동시에, 쌀 부정유통을 차단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발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대책과 다른 점은 전기료를 인하하고, 건조저장시설에 대한 정부 보조비율을 높이는 등의 실질적 지원대책이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전농의 경우 정부의 농업대책 자체를 기존 정책을 답습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농 관계자는 “우량농지 보전, 보험제도, 이모작 확대 대책, 들녘 경영체, RPC 역량 강화 등은 이미 추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효과가 의심스러운 내용”이라며 “‘복사하기 붙여놓기’식 농업대책으로 농민을 설득하겠다는 정부의 자세부터 바뀌지 않는 한 정부의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