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쟁력·대책 등으로 극복 가능”…농민단체, “쌀농사 초토화 뻔하다”



농식품부 관세화 의미 축소에 농업계 불신 팽배

전문가 “국회 비준동의안 수준 사전점검 필요” 주장

전국단위 상경집회 등 전면개방 반대 움직임 확산



딴소리 일색이다. 살려달라 소리치는데 ‘가만히 있어라’한다. 지난 20일 정부가 마지막이라며 개최한 ‘WTO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는 말그대로 ‘쌀개방 통지서’발표 자리였다.
농민단체들의 적극적 반대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5년부터의 쌀 관세화는 WTO 의무조항이라며 농민들이 이해해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협의와 협상도 하지 않은 채 쌀 관세화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WTO에 백기투항하는 행위”라며 결사저지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한 이 문제를 국회 사전동의를 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날 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WTO에 쌀 시장개방 의사를 전달한 뒤 국회 동의를 얻는 것이 진행과정이라는 정부와, 쌀 시장 개방을 위해서는 시장접근물량 이외의 쌀을 수입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추가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회 사전 비준이 필요하다는 야당측 국회의원 주장이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20일 공청회 토론 내용 또한 쌍방 편도 일차로를 일방통행하는 형국이다. 이날 토의 내용을 포함 농민들 요구사항을 위주로 주요 이슈 담아본다.


 쌀 관세화, 어떤 뜻인가

지난 23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태훈 곡물관측실장은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시중에는 왜 수입쌀이 보이지 않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가공용과 식용 등 모든 수입쌀은 정부가 관리하고 유통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과 일반인이 아는대로, 쌀 관세화 유예가 풀리면 현 의무수입량 40만8천여톤은 매년 의무적으로 들여와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외 수입물량은 관세를 매긴다.
이쯤에서 관세화로 갈것인가, 관세화 유예기간을 계속 고집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갈릴 때, 정부가 설명하는 차원의 관세화라면 비교우위가 결정된다. 관세화가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단 얘기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볼 때 쌀 관세화는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다. 농경연 김 실장이 언급한대로 ‘정부관리’가 문제인 것이다. 즉 쌀 관세화는 세금을 매긴 완전개방을 뜻하고, 이는 곧 정부가 관리하던 것이 민영화 된다는 의미다.

가공쌀과 식용쌀을 70대 30으로 나눠 수입하고, 이중 10%만 시중 자율시장에 유통시키던 것을, 투자 매력과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세금을 내고 수입쌀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청회에서 만난 한 농민은 “옥수수는 수입산이 90%를 장악하고, 밀도 곡물메이저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데, 만약 쌀 시장이 열린다면 우리의 밥상이 곡물메이저의 사냥감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다시말해 현재의 관세화 여부 논의는 수입쌀에 대한 소비패턴과 시장형성 전망 등을 전혀 고려치 않은 채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업경제 전문가인 중앙대학교 윤석원 교수는 “현재 쌀 시장기능에 의해 쌀 가격과 수급이 결정되게 하고 가격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정책 패러다임은 애초부터 쌀 산업과 쌀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인식의 오류에서 초래된 것”이라며 “더욱이 고율관세만 적용하면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라고 믿는 정부의 ‘관세화론’은 밀림같이 복잡한 시장 특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특히 수입쌀 혼합 유통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가, 유사브랜드 포장지가 난무하고 둔갑판매가 창궐한데다 품질과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미국산과 중국산을 높은 관세로만 제압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 고율관세도 통상교역 압박속에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농민들의 우려다.
 
 농민들 왜 반대하나

이런 우려 속에 농민들은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청회가 진행되는 중에도 농민단체 농민들은 장외 기자회견을 열고, 또 정부의 토론내용에 대해 질타를 쏟아냈다.
실례로 정부 입장을 발표하러 나온 농식품부 김경규 식량정책관이 “지난 20여년간 우리의 쌀 산업은 소비·생산·유통 전 부문에서 빠르게 변화해 왔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어느정도 경쟁력이 있는데다 쌀산업 발전대책을 병행해나가면 쌀개방이 되더라도 대응해 나갈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한 농가들의 반발이 거셌다. 강원 철원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용빈씨는 “시골에 농사짓는 사람이 없고, 빗 틀어막느라고 인건비 생각도 못하고 벼농사 짓고 있는데, 경쟁력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관세화 일변도의 정부 주장도 농민들이 불신하는 이유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형대 전농 정책위원장은 “가장 최선의 방법에서 최악의 방법까지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협상해야지 처음부터 하나의 방법만 내세우면,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라며 “필리핀이 웨이버(의무면제) 동의를 얻은 것이나,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이 ‘협상여지가 있다’고 언급한 것 등을 감안하더라도 내년부터 관세화가 의무사항이라는 정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농민들의 반대입장은 정부와의 ‘불통’때문이란 지적이다. 당장 쌀 관세화 여부를 결정지을 시점에, 공론화하는 상황만 보더라도 정부는 의견수렴 등의 소통 의사가 없다는 여론이다.
장외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농민단체는 “협상도 하지 않은 채 쌀 전면개방을 선언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WTO협정문을 이유로 관세화 불가피성만 강조하는 정부는, 식량주권을 지키려는 노력없이 오히려 쌀 수출국의 입장을 강변하는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WTO 회원국 협상 가능한가

정부와 전문가, 농민 간에 쌀 관세화 유예가 종료되는 시점에 대해 분석하는 시각차가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관세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주장과 노력 여하에 따라 현상유지(Standing Still)를 시도해볼 만하다는 반박이 팽배하게 맞서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송주호 연구위원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는 관세화는 이미 양허된 관세율을 수정하기 위한 재협상(GATT 28조)이 아니라 UR 농업협정에 따라 관세화가 한시적으로 유예된 품목에 대해 기한이 도래했기에 관세화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해관계국과의 협의나 협상은 필요조건이 아니고 대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으며 우리나라의 일방적 조치로 시행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쌀 관세화는 정해진 수순이란 것이다.

하지만 농민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토론자였던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장경호 부소장은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과 현상유지 사이에는 현실적으로 절충할 수 있는 다양한 해법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현상유지를 포함해서 특별대우의 지속을 요청하는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관세화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고, 협상 결과에 따라 WTO 규정의 제한 혹은 변경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대 전농 정책위원장 또한 “현상유지, 의무면제 적용, 관세화 등의 방법과 DDA협상과 연계시키는 방법, 관심 상대국의 요구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방법 등 모든 것을 동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쌀 협상 준비를 위해 국회 비준동의안 수준의 사전처리가 필요하고, WTO삼자합의체(국회, 정부, 농민)를 구성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회 사전동의 왜 필요한가

농민단체들의 주장 중에 쌀 협상안을 국회에 사전 동의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주목된다. 정부의 쌀 개방 공표 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여론이 국회로 쏠리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제법적 의무’를 주장하며 국회 동의를 사후로 미루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올해로 만료되는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에도 관세화를 유예하기 위해서는 쌀 수입 의무량을 크게 확대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관세화를 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물량이 수입된다”면서 “일부에서는 관세화를 유예하면서 수입 의무량도 묶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만 사실상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 동의가 필요없는 당연한 의무조항이란 해석이다.    

반면 야당측은 수입쌀의 유통과 관련된 양곡관리법 개정 문제는 물론, 국가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중한 안건을 의견수렴없이 집행하는 정부의 태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당초 9월 WTO에 양허계획서 즉, 쌀 시장 개방 의사를 전달하면서 회원국들의 검증과정이 완료된 뒤 국회의 동의를 거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회와 농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회에 사전 동의차원이 아닌 보고형식의 단계를 끼워 넣었다.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도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양곡관리법 제12조 1항은 WTO와의 협정에 따라 쌀을 수입하게 되면서 개정한 조항으로, 일반적인 외국산 쌀에 대한 수입허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한 야당측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의원은 공청회가 끝난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국회 동의가 필요없다는 정부 주장에 강하게 반박했다. 박 의원은 “쌀 시장 개방을 위해서는 ‘시장접근물량 이외의 쌀’을 수입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추가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국내법의 개정이 필요한 조약의 경우 헌법 제60조 제1항에서 규정한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으로 국회의 비준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의원은 “정부가 현행 양곡관리법과 관세법상 시장접근물량에 해당하지 않는 쌀은 자유로이 수입할 수 없다고 밝힌 것에서도,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로인한 정부에 대한 비난이 크다. 쌀 시장개방에 대한 정부의 시나리오는 이미 짜놓고 일정대로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정부가 쌀 시장 관세화에 대한 WTO 동의를 받고 이를 뒷심으로 국내법 개정에도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는 여론이다. 민변의 송기호 변호사는 “정부가 쌀 개방과 관련된 국제조약을 우선 체결하고 나서 국내법 개정을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할 것”이라며 “만약 국회가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국제간의 신의 문제가 생긴다고 국회를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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