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메이드인캘리포니아 ‘이천쌀’ 밥상 상륙”



정부, 6월 개방선언·국회보고→9월 WTO보고→내년1월 개방발효

농민·학계·시민단체, “박근혜정부, 쌀 수입허가제 폐지 설명해라”



“미국 LA인근 미곡종합처리장(RPC)을 들렀는데 10, 20kg짜리 이천쌀, 오대산쌀 브랜드가 붙은 제품이 쏟아집디다.”
5년전 미국 캘리포니아지역의 농업시찰을 다녀온 농민의 말이다. 미국 서부 교포사회에 유통되는 제품들이란 설명과 함께, 현지 RPC관계자는 “한국에서 이들 브랜드에 대해 국제적 등록을 했느냐?”는 질문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관세화’라고 명명하고 있는 쌀 개방 논의가 막바지에 치닫고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내년 1월초부터는 캘리포니아 세크라멘토 RPC에서 생산·가공한 여주유기작목반쌀, 이천쌀, 용인원삼쌀, 오대산쌀 등이 자연스레 우리의 식탁을 찾아온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는 지난 20일 가진 ‘쌀 관세화 유예 종료 대응 공청회’를 끝으로 쌀 관세화를 선언키로 결정을 봤다. 관세화유예를 종료한다는 의미는 국가가 관리하던 쌀 수입 업무를, 민간인들도 어느정도의 관세를 내면 참여할 수 있다는 민영화를 뜻한다. 다시말해 5천년동안 지켜왔던 우리의 식량공급체계가 시장원리라는 시험대에 맡겨지는 것이다.

WTO 시스템 속에서 끝까지 협상을 진행해보라는 농업계·시민단체의 뜻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관세화를 대세로 인정하는 정부간 반복되는 갈등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관세화, 과연 괜찮을까? 정부의 입장, 전문가들의 의견, 농민들의 주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지만, 쉽게 따져보면 우리의 먹을거리와 농업의 연속성을 감안해서 풀어야 할 문제이다. 무작정 추진하기보다 옳은 길을 선택할 일인 것이다.


정부, “협상여지 없다”

식품부는 농업분야 주요 통상현안 추진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한다며 지난 16일부터 전국 순회 ‘DDA/FTA 농업분야 통상현안 지역설명회’를 추진하고 있다. 헌데 행사장마다 농민들과 마찰을 겪으며 행사가 취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민들은 이를 쌀 관세화 추진을 위한 공청회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강한 반발을 감안해 관련 단체에 행사를 맡겼다는 주장도 거세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행사는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가 주관한다고 해당협회가 보도자료를 냈다. 일반적인 설명회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하청을 받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전농은 성명을 내어 “농림부는 ‘농피하(FAO한국협회)’앞세운 쌀 전면개방 추진을 중단하라”고 강력 저지를 천명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의 단면이 드러나는 대목인 것이다. 그만큼 정부의 행보는 농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쌀 개방문제는 농업분야를 떠나 국민적 관심사인데, 이에 대해 박근혜정부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반 거센 반발 집단인 농민, 궁금증과 불안감을 갖고 있는 국민, 쌀 수입허가제 규정에 대해 업무를 맡고 있는 국회 등 어느 곳도 정부의 설명을 들은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달말까지 쌀 시장개방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수입쌀에 적용할 관세율 적용, 수정 양허표 작성 등이 이뤄진 다음 국회에 보고하겠다는 복안이다. 이후 9월에 WTO에 보고하고, 12월까지 WTO 회원국들의 의견을 들은 뒤 내년 1월부터는 관세화, 즉 쌀시장 개방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당초 WTO에 보고를 마친뒤 개방을 선언하고 국회에 통보하겠다는 뜻을 비쳤으나, 여론에 밀려 국회에도 먼저 보고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온도차는 크다. 얘기대로 정부는 “현행법상 통상업무를 하면서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보고를 통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취지”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 농업계나 민변, 시민사회단체 등은 “쌀 수입을 허가하겠다는 제도는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므로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고 고율의 쌀 관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쌀 관세화 특별법도 별도로 제정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국회에 보고하는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정부는 의무사항이 아니라 공감대 형성 차원이고, 농업계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전동의 절차라고 보는 것이다.

이에대해 국제통상 전문가인 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국회가 담당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 문제를 감안할 때, 양곡관리법의 쌀 수입 허가제 조항을 폐지하지 않는 한 쌀 수입 자유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우리나라가 내년부터 쌀 시장을 개방하려면 현행 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에 따르면 정부는 양곡관리법 제12조1항은 WTO와의 협정에 따라 쌀을 수입하게 되면서 개정한 조항으로, 일반적인 외국쌀에 대한 수입허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송 변호사는 “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회 논의과저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하는 측면도 있다”면서 “쌀 개방과 관련한 국제조약을 우선 체결하고 나서 국내법 개정을 신속히 처리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하고, 만약 국회가 처리해주지 않으면 국제간의 신뢰 문제를 압박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농민, “협상 끝까지 해달라”

“협상 전략상이라도 포기 발언은 너무한 것 아닌가.”
농식품부 주도의 설명회 행사 저지 투쟁에 나선 농민들의 한결같은 요구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정부는 현상유지가 최선의 방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정작 현상유지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도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농민의 입장을 고려하고, 진정성있는 농업보호대책을 고민한다면 상대방 국가와 진지하게 협상을 벌이거나 WTO에 공식적으로 질의하는 등의 노력은 당연하다”는게 정부를 불신하는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 5월 방한했던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한 심포지엄에서 “WTO 사무국은 회원국 간의 협상에 직접 개입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관련 회원국의 쌀에 대한 한국의 민감성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면서 “쌀 관세화 유예는 한국 정부의 협상능력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나름 협상여지가 있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를 감안할 때 협상을 일찍 포기하겠다는 정부의 적극성 결여가 못마땅하다는 게 농민들 반응인 것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내논 쌀 산업 정책도 농민들을 분노하게 한다. 농식품부가 지난 20일 설명회를 통해 발표한 쌀산업대책에 따르면 향후 관세화가 결정되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모든 FTA(TPP)에서 쌀은 양허대상에서 제외토록 노력하겠다는 전제조건을 깔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외 수급균형 유지를 위해 쌀 수요기반유지와 생산기반 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 계획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이외에 쌀 수입보험제도 도입 등의 농가 소득안정장치를 도입하고, 생산규모의 규모화·조직화를 통한 쌀 생산비 절감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대책도 수반키로 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기존 양곡정책에서 추가된 게 없는데다, 수입개방으로 당장 시장교란이 우려되는 시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대책이라고 꼬집고 있다. 쌀 경쟁력제고를 위한 기간을 확보하겠다며 관세화를 유예해왔던 지난 20년의 양곡정책을 재탕하는 수준이란 지적이다. 쌀 가격의 하락을 유도해 가격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정책 목표가 당초 실현 불가능했음에도, 쌀 산업과 쌀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책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는 사례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거세다.

정부의 의도대로 쌀 시장이 개방될 경우 당장의 부작용이 초래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당장 400% 관세를 매겨 수입쌀을 받아들인다해도 TPP와 한중FTA 등 무역협정 협상과정에서 쌀 관세인하에 대한 압박이 가해질 것이고, 2~3년 안에 관세가 무너지는 재앙이 따를 것”이라며 “이뿐 아니라 쌀농가들의 품목전환으로 타작물의 공급과잉도 수반될 소지가 크다”고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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