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역사를 간직한 불교문화의 보고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 남산은 불교 왕국 신라의 옛 영화를 느껴볼 수 있는 서라벌의 진산이다. 금오봉과 고위봉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km, 남북 길이 10km에 달하는 지역에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거북 모양을 이루고 있어 ‘금오산’으로도 불리며 곳곳에 산재해 있는 석불과 석탑들은 불국(佛國)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노년기 화강암 지형에서 볼 수 있는 토르가 발달해 기암괴석을 이루는데 수많은 골짜기와 능선에 산재해 있는 바위와 나무들에 담겨있는 설화들은 남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만들었고 마애불이나 탑으로 형상화됐다.


▲ 해송숲
신라 천년의 역사를 함께 한 산


남산은 골짜기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여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이 산 주변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라 시조 박혁거세거서간의 탄강(誕降)설화가 담겨있는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奈乙神宮), 왕릉이 즐비하며, 도성(都城)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 등이 있어 가히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라 할 수 있다.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석탑(石塔)과 석불(石佛)로서 특히 마애불(磨崖佛)이 많다. 이처럼 많은 유물들이 돌로 만들어진 데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산에 있는 불교유적의 가치는 자연과의 조화와 다양성에 있다. 편편한 바위가 있으면 불상을 새기고, 반반한 터가 있으면 절을 세우고, 높은 봉이 있으면 탑을 세우되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조성하였다. 비록 바위 속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어도 바위가 불상을 새기기에 적절하지 않으면 불상을 새기지 않았으며, 절을 세워도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운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의 부처를 찾아냈다고 표현한다. 

 화강암 바위에 얽힌 전설과 소나무숲의 어우러짐

▲ 용장사지 삼층석탑
남산의 숲은 노년기 화강암 위에 형성되었기에 대부분 소나무숲이고 그나마 사방조림의 흔적인 리기다소나무가 덮인 곳도 많다. 소나무숲의 높이도 토심에 따른 차이가 분명하여 사면 하부에서는 키가 크나 능선 가까이 올라가면 야트막하다. 계곡부에는 부분적으로 해송이 자라고 있다.

용장계곡에서 고위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소나무와 달리 검은 줄기에 거칠게 뻗은 가지, 억센 느낌이 나는 솔잎을 가진 해송숲이 있다. 소나무가 간혹 섞여 있는 해송 숲은 좌우로 꺾여 아름다운 느낌의 숲길을 제공하고 있다. 계곡에 들어앉은 관음사에서는 대나무숲과 감나무가 어우러진 독특한 모습을 즐길 수 있으며 큰곰바위를 볼 수 있다.
고갯마루인 열반재에 오르는 길에 굴참나무잎보다 훨씬 크고 측맥이 뚜렷한 잎을 가진 나도밤나무를 볼 수 있다. 열반재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의 한 각간의 외동딸이 뭇남성들의 유혹에 시달리다 세속을 벗어나고파 찾아든 곳이 열반곡인데 갱의암에 올라 금빛 옷을 다 벗어버리고 잿빛 옷으로 갈아입었으나 꽃같이 피어 난 살향기를 감출 수는 없어 여러 맹수들이 길을 막고 으르렁 거렸다. 고양이, 개, 여우, 산돼지, 작은 곰, 뱀, 귀신 등을 지나 드디어 관음사의 큰곰을 만나고 뒷산의 들소, 이무기, 독수리, 거북, 용 등을 지나 요암에 이르니 처녀의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이때 서쪽 산등성이에서 지팡이를 짚고 오는 할머니를 만났으니 이 바위는 깨우친 사람을 극락으로 안내하는 지장보살이었다. 그리하여 처녀는 영원히 열반에 사는 몸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삼존마애불과 사면불이 한 눈에 보이는 칠불암

▲ 신선암 마애보살상
신선이 된 듯 구름 속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 해발 494미터의 고위봉에 도착한 후 칠불암으로 향한다. 대부분 평탄한 신갈나무 숲길을 걷다가 소나무숲길로 바뀌고 금오봉과 칠불암 갈림길에서 칠불암으로 향하면 엉덩이를 엎어 놓은 듯한 커다란 바위를 지난다.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지나 바위를 돌면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바위 속에 들어앉아 있다. 그 아래 칠불암에는 커다란 사각형 바위에 새겨진 사면불과 그 뒤의 삼존마애불이 칠불을 형성하고 그 왼쪽 앞에 자그마한 탑이 있다. 하얀 수피가 근육질로 발달한 커다란 개서어나무가 우측에 소나무 두 그루가 앞에서 솔향을 풍기며 칠불을 지키고 서 있다.

금오봉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나무뿌리가 계단처럼 드러난 길을 걷기도 하고 두 개의 바위에 한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문을 지나기도 한다. 노간주나무가 기둥을 이루기도 한 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여러 그루 자라는 이영재를 지나면 주변의 숲이 황폐했던 이곳 산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아까시나무는 죽어 줄기를 앙상하게 드러내 놓고 있으며 큰 나무는 대부분 리기다소나무들로 구성돼 있다.

남산 제일의 명소, 용장사지 삼층석탑

▲ 칠불과 개서어나무
금오봉이 700미터 남은 지점에서 용장사지로 내려가면 수관 위로 삼층석탑이 보인다. 200여 미터가 넘는 높은 바위 봉우리를 다듬어 하층 기단으로 하고 그 위에 상층기단을 쌓고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얹어 삼층석탑을 쌓았다. 높이 4.5미터에 불과하지만 탑의 아래쪽은 절벽처럼 꺼져 용장계곡을 한눈에 드러나게 하고 주변의 숲이 없어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 사면이 노출되어 있어 실제 크기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더구나 직선인 듯 곡선인 탑신의 선들이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여 일말의 여운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담으려는 듯한 고매한 품격에 커다란 소나무마저도 기가 죽어 야트막하게 엎드려 기도하는 듯하다. 조선 초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쓰며 머물렀던 곳이라 잘 알려진 이곳은 역시 남산 제일의 명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4시가 지난 시각 우리는 금오봉을 포기하고 멀지만 남산의 긴 능선을 따라 닦아놓은 임도를 따라 5킬로미터 가까이 걸어 어둑어둑해진 후에 포석정 주차장에 도달, 서둘러 신경주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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