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농사지으려고 하겠어? 우리 없으면 끝이지”

    

농촌 ‘해바라기 노인’ 대부분… 복지제도 비현실적

경제·의료·정신상담 등 ‘사각지대’ 비일비재



▲ 매년 여름에 열리는 농어촌 집 고쳐주기 운동 희망家꾸기를 통해 대학생들이 농어촌 독거노인들의 주거환경을 개선을 하고 있다.
“농사 누가 짓겠어”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현장 취재를 가면 고령의 농업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귀농 귀촌 활성화처럼 정부가 여러 방면에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농식품부의 농촌개발 복지증진 예산은 제자리고, 여전히 농어촌 삶의 여건은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농어촌에서 농업인들의 삶의 질은 주거, 교통, 보건의료 등 농어촌복지와 관련된 많은 분야에서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열악한 농어촌 공공서비스 실태

경북 고령군 강정리에서 홀로 살았던 곽춘매 할머니(82). 곽 할머니는 살림살이라고 해 봐야 중고 냉장고와 낡은 텔레비전이 전부일 정도로 생활이 단출하다.
곽 할머니의 하루 일과는 집에서 도보로 5분정도 떨어진 마을회관에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혼자 살다 보니 입맛이 없어 아침식사를 거르기가 일쑤고, 마을회관에 가서 마을주민들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점심으로 겨우 하루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고 오후 4~5시쯤 마을회관을 나서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일찍 잠이 든다. 텔레비전 시청이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다. 예전에는 마을일이라도 소소하게 거들었지만 몇년 전 치매초기 진단을 받고 난 이후부터는 시골집을 비워놓고 대구의 아들집 근처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곽 할머니의 자식들은 “최근에 시골을 내려가보면 안보이는 어른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그나마 있는 어른들도 아프면 자식들이 내려와야 움직일 수 있거나 아예 시골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어촌서비스 기준 달성 정도 점검·평가 결과를 살펴보면 전국 138개 농어촌 시·군 중 최저주거기준 비율이 90%를 넘어선 지자체는 38곳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도농복합시가 27곳, 군지역은 11곳이었다.

도시가스 보급률이 50% 안에 든 지자체 역시 32곳에 지나지 않았고, 68개 시·군에는 읍지역에 조차 도시가스 보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농어촌 상수도 보급률이 75% 이상 기준을 달성한 곳은 32곳, 하수도 보급률을 만족한 지자체는 18곳에 불과했다.
이밖에도 모든 주요 과목의 1차 의료 진료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은 97개 시·군이었으며, 도농복합시 중에는 50곳, 군 중에는 47곳에서 이 기준을 달성하고 있었다.

농어촌 노인 빈곤율…도시와 2배 차이

2012년 통계에 의하면 농어업 종사자의 소득은 도시근로자 소득의 57%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농산물개방, 농어촌고령화 등으로 인해 농업인들의 소득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것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농어촌과 대도시의 빈곤율은 2배 이상 차이가 나고 소득불평등도 더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역별 소득분배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11년 군 단위 농어촌 지역의 빈곤율은 경상소득 기준으로 9.76%로 나타났다. 같은 해 서울, 광역시, 도농복합지 등과 중소도시의 빈곤율인 4.07%와 4.34%의 2배 이상이다.

경상소득은 임금·사업소득과 사적이전소득을 합친 시장소득에 국민연금과 국민기초생활보장지원금 등 공적이전소득을 더한 소득을 뜻한다. 농어촌 노인들의 고용빈곤율도 도시노인들에 비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복지패널(2005-2011)의 다차원적 빈곤개념을 활용한 도시·농촌 간 빈곤 격차에 대한 연구에서는 도시노인의 고용 빈곤율은 7%인 것에 반해 농어촌노인은 22.9%로 3배 이상 높아 농어촌노인의 일자리 부재가 경제적인 빈곤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어촌 노인들이 일을 해도 도시노인들에 비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낮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한 농업인은 “농어촌의 젊은 사람들도 마을 노인들에게 용돈벌이라도 시켜주려고 때가 되면 부르기도 하지만 같은 임금에 일손이 느려 안타까운 상황도 있다”면서 “시군이나 나라에서 농어촌 노인들에게 지원해 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재의 본인부담금 상한제를 농어촌거주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면제하거나 연 50만원 미만으로 낮추거나, 기초노령연금제도의 단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복지 인프라 강화로 자살 예방 가능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들도 예외는 아니며, 도시보다는 농어촌에서 더 심각한 상황이다.
통계청의 2012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충청북도의 65세 이상 노인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05.2명으로 인구가 적은 세종특별자치시 109.2명을 제외하고 전국 17개 시도에서 가장 높았다. 농어촌인구가 많은 충청남도 역시 96.8명을 기록했다. 반면 대도시인 서울은 54.1명, 광주는 56.0명을 기록해 노인의 자살률이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우리나라 농가 경영주 평균 연령이 UN의 고령인구 기준인 65세를 넘어설 정도로 농어촌의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서 농어촌 노인들은 빈곤, 질병, 외로움이라는 3중고를 겪는다.

일각에서는 농어촌의 보건, 복지 인프라가 서울, 광주와 같은 대도시보다 훨씬 취약함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2012년도에 발간한 ‘지역사회 보건복지 자원이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보고서에서는 시군구의 지역사회정신보건센터와 같은 보건복지 인프라 구죽 정도가 노인자살률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9년과 2010년 전국에서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고됐던 충남, 강원, 충청 지역의 복지 인프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열악했으며, 자살률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한 충남 청양, 예산과 태안, 강원 영월과 고성, 충북 괴산 등은 일반 지역주민들이 이용하는 지역사회복지기관들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지자체의 복지예산이 낮고 정신과 의원이나 보건센터 등 정신보건 인프라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농어촌 노인의 자살률이 높다는 뜻이다.

농어촌 노인 생활안정 대책 필요한 때

현재 농어촌에서는 농가 경영주의 평균연령이 65세를 넘기고 있고, 농촌 고령화가 전체 인구의 고령화보다 무려 3배 이상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농어촌의 고령화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고, 농촌 노인의 빈곤이나 자살 역시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농어촌 소득과 고용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먼저 농어촌 노인들을 위해서는 현재 기초노령연금의 급여수준이 낮은만큼 정부에서 7월부터 추진하는 기초연금제도를 활용하고, 농어촌의 경우에는 소득하위 70%와 같은 상한제도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초노령연금은 소득이나 재산이 부족한 노인들에게 매월 일정 금액의 연금을 지원하는 제도로 7월부터 기초연금제도로 바뀐다. 기초연금제도를 통해 상위 30% 제외한 65세 이상 거의 모든 노인은 최대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특히 경제적 빈곤이 반드시 자살을 초래한다는 확신은 없지만 농어촌 노인들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도 무엇보다 이들의 안정된 일자리를 창출해 소득화를 시켜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역사회복지관이 없는 지역보다 있는 지역의 자살률이 더 낮다는 보고서 결과도 있는 만큼 농어촌 노인들의 정신적 고통을 해소시킬 수 있는 시스템도 요구된다.

이밖에도 국회에서는 최근 노인복지법이 개정돼 이목을 끌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박민수 의원이 발의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에는 농어촌 지역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할 순회방문상담원을 두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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