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업보다 농민·농업·농촌 규제개선이 우선한다”

 
‘관피아’척결·무분별한 농지개발 우려 등 여론 높아

“규제완화 조건으로 지원대책 축소 안될 말”…“영세농도 관련규제 있다”



대기업이 세계와 경쟁하다가 지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 없다. 경쟁력을 키우도록 자유를 줘야 한다.”
지난 2007년 당시 유력한 대권후보로 언론의 관심대상이던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갖고 밝힌 ‘규제개혁’ 필요성이다.

다양한 산업분야를 세분화한 것은 아니지만, 박대통령은 농업분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도시용지의 비중이 전 국토의 5.6%로 1인당 36평밖에 되지 않는다. 국토이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헌법이 규정하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유연하게 해석해 도시용지를 2배로 늘리는 토지규제개혁을 추진하겠다.”

최근 농식품부는 ‘규제개혁’에 총력을 쏟고 있다. 현 이동필장관이 ‘규제개혁 장관’으로 불릴 만큼 연구원시절부터 농업·농촌 현장중심의 규제개혁 문제를 다뤄왔던 점을 감안하면, 여느 농업정책보다 신뢰성을 보탤 수 있는 대목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박근혜대통령이 처음 규제개혁을 얘기했을 때 내용, 나름 의도하고 있는 규제개혁의 의미,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사안 등을 분석해보면 무한정 믿음을 가질 만도 아니다. 규제개혁의 실제 내용들을 살펴보면, 수출지향적인 농식품기업 중심의 문턱 낮추기가 걱정된다. 농지소유 허용자격을 낮추는 등의 농지규제 완화에 따른 농업기반보호 실패도 염려된다.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다지만 이것이 곧 장기적 농업발전과 어떻게 접목될 것인지 분석도 필요하다. 우려점을 점검해본다.



 경자유전(생산기반)의 ‘사문화’…“농촌 살리고, 농업은 고사”

2007년 국회의원이던 박대통령은 규제개혁 의지를 피력하면서, 농지가 대폭 줄어드는데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는 여론에 대해 “독일 등 유럽의 지방에 가면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보존돼 있고, 많은 농가들은 숙박업, 관광업 등으로 소득을 올린다. 농촌을 살리는 길은 1차 산업인 농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광이나 레저산업 등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장에서의 규제 발굴을 위해 농식품부가 총력을 쏟는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의중에 농업분야의 규제개혁은 ‘농지개발’이라는 등식을 갖고 있다면, 규제개혁의 이면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농지규제 완화 방안으로 우선 농지소유 허용자격을 현행 공공단체, 학교, 농업생산단체, 농업연구기관(비영리)에서, 농업연구를 위한 바이오·벤처기업 부설연구소 등을 추가했다. 기업들의 농지소유에 골을 터준 것이다.

또한 농산물가공처리시설 건축규모도 현행 1만㎡(3천평규모)에서 1만5천㎡(4천500평)이하로 확대했다. 여기에 농산물처리시설 내의 판매장 설치도 허용했다. 농식품기업의 지원사업을 염두했다는 지적이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용도로 농지를 사용할 수 있는 기간도 3~5년에서 5~7년으로 늘리고, 대상지역도 확대할 방침이다. 박대통령이 ‘암덩어리’규제로 까지 극한 표현으로 예를 든, 농업 목적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게 한 농지규제와 산지규제 등은 개발을 촉구하는 의지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이를 종합하면 특별한 농지, 즉 정부가 얘기한 ‘집단화된 우량농지와 간척지’를 제외하면 웬만한 농지는 민간개발이 허용된다는 뜻이 된다.  
이동필 장관의 ‘농촌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는 궁극적으로 ‘멋진 농촌풍경’을 언급했던 박 대통령의 의중과 맥이 같다. 하지만 농민이 주인인 농산업 발전대책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식품가공산업 ‘손톱 밑 가시’만 뺀다”

개혁대상으로 거론되는 농식품분야 규제는 농업인 지원, 농산물 안전, 식품산업 육성, 농촌지역 개발, 식량안보 등으로 크게 분류된다. 물론 이를 제외한 다양한 분야도 존재한다.

예서 정부가 우선 지목하고 강조하는 것이 농식품기업에 대한 중복규제 철폐이다. 농식품산업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 창의적 경제활동 등이 규제완화의 이유란 설명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검토과제도 홍보했다. 한약재 생산자 가공·유통 진출을 허용하고, 전통주시장 참여대상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강구되고 있다.

귀농·귀촌의 편의성을 도모한다는 취지의 규제 개혁도 농식품 사업 참여요건을 완화하고, GAP(우수농산물관리)기준을 완화한다는 등의 내용이 강조되고 있다.
귀농 활성화를 위한다지만 해석여하에 따라, 귀농을 빌미로 한 민간사업자들의 창업을 권장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정부의 지원으로 생산비를 낮춘 식품가공공장이 득세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농가의 농외소득이나 농작물의 안정된 출하가 담보된다면 좋을 일이나, 일반 창업인들의 ‘치고 빠지는’ 사업행태가 돼선 안 될 일이다.

최근 농식품부의 ‘분야별 규제발굴 현장 간담회’의 내용이나 추진계획 또한 식품·외식산업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추진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농업 경쟁력 제고’라기 보다 ‘식품기업 경쟁력제고’를 위해 규제를 푸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관피아 근절 병행해야”

“역대 정부의 예산 퍼붓기식 농촌 살리기 정책은 결국 농가 부채의 증가와 도덕적 해이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이렇듯 정부가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 ‘불필요한 예산’이란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농촌·농업·농민을 살리기 위해 지원대책을 줄이고 규제를 풀어주는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돈다. ‘자생력을 잃은 농촌에 자생력을 저해하는 규제를 풀겠다’는 게 정부의 규제개혁 이유중 하나다.

규제개혁의 의도가 어긋난 부분이다. 농학계 한 교수는 “농촌·농업·농민은 자생력을 가질 수 없는 구조로 돼 있고, 역사적으로 농사는 국가가 짓는 것임이 명확하게 확인돼왔다”면서 “여러 농업선진국들의 농업보조정책과 생산기반보호정책, 농업에 대한 국민적 공통인식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한한 국가적 지원과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간 쌓여온 규제들로 생겨난 ‘관피아’를 먼저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다. 현직 관료가 좁고 엄격한 규제를 만들고, 이를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 ‘전관(前官)’이 관련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려앉아왔던 그간의 폐해를 먼저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피아의 밥그룻’을 먼저 혁파해야 한다는 목소리인 것이다.

얼마전 정부통계로 발표된 농식품부 고위 간부 출신 공공기관·관련협회 취업인사, 즉 관피아는 42명으로 확인됐다.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농업관련 사기업(말단세포)에 취직한 관료출신까지 합치면 관피아 조직은 상당한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규제개혁이 농업현장을 강조해온 이동필장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농업 발전과 거리가 떨어진 사례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제도적 허점을 고치고 규정을 다루는 관료들의 마음가짐을 개선하는 일이다. ‘봐주기’식 허가제나 합격처리, 지원사업 등은 모든 제도를 함몰시킨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